◇ 2019년은 펜윅 선교사 선교 130주년입니다. 어떻게 준비되고 있습니까?
= 박종철 총회장님은 내년 영적성장대회를 펜윅 선교 130주년 기념대회로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를 위해 한국침례교회사를 전공한 제게 기념대회를 위한 기획부분에 대해 자문을 구하셨습니다. 아마도 박사학위로는 보기 드물게 한국침례교회사를 다룬 논문이라 이에 대한 관심을 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펜윅과 동아기독교에 대해 연구한 논문을 바탕으로 그의 탁월한 선교정신을 통해 우리교단이 다시 한 번 부흥 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간략하게 설명드렸습니다.
◇ 우리 교단 내에 펜윅 선교사에 대해 연구하신 학자들이 많습니다. 목사님은 펜윅 선교사에 대해 어떤 연구를 하셨습니까?
= 기존의 학자들이 연구한 펜윅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펜윅의 선교정신, 신앙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제가 연구한 바 펜윅은 한국침례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선교사들 가운데 독보적인 선교사로서 그의 선교 활동 가치는 매우 뛰어나고 그의 한국선교 업적과 선교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펜윅은 한국침례교회사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사에서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침례교회 학자들에 의해 더 깊이 더 많이 연구되어야 할 선교사라고 봅니다. 백석대 민경배 석좌교수는 펜윅에 대해 “펜윅은 여러 경험을 통해 한국선교에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곧 전도는 외국선교사들에 의해서보다 본토인 한국사람 자신들의 증언에 의해서 진행돼야 그 수확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라며 “(펜윅 선교사는) 사라지지 않는 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펜윅에 대해 한국교회 역사학자가 평가한 것입니다. 이처럼 펜윅은 타교단의 역사학자가 최고로 평가한 선교사로서 우리 교단역사의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펜윅 선교사가 우리교단의 중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 펜윅 선교사는 한국에서 대한기독교회, 즉 현재의 기독교한국침례회의 모태가 되는 교단을 창설했습니다. 참고로 1906년 창설된 대한기독교회는 타 교단과 달리 펜윅과 그의 제자들이 만든 자생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한기독교회가 미남침례회와 제휴를 하고 지금의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변하면서 펜윅의 선교역사가 언젠가부터 흐려지기 시작했고 마치 우리 교단이 미남침례회에서 세운 교단으로 잘못알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기독교한국침례회의 모태는 펜윅이 그의 제자들과 창설한 대한기독교회가 모태입니다. 지금 우리 교단은 미남침례회와의 제휴 이후 교단의 역사와 제도 등 모든 것이 미 남침례회화 됐습니다.
◇ 펜윅은 어떤 선교사였습니까?
= 펜윅이 한국에 도착해 1935년 소천할 때까지 약 45년간 그의 한국에서의 선교행보를 보면 그가 어떤 선교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오직 한국을 선교하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배우던 가운데 한국인을 존중하는 선교사로서 철저한 한국과 한국인을 위한 선교사였습니다. 저는 그가 태평양을 건너오는 약 한 달 간 배 안에서 한국선교에 대한 결심과 계획을 세웠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러한 펜윅의 한국선교를 향한 항해는 진정 선교사로서 부르심을 받고 선교사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한국에 바치고자 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펜윅이 위대한 선교사로서 재조명 받고 교단에서 펜윅에 대한 연구와 그의 선교활동, 그리고 그의 선교정신을 다시 한 번 연구를 해 펜윅의 선교사상을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목사님의 논문 가운데 주된 내용이 우리교단의 원산사건과 미남침례회와의 제휴과정입니다. 어떻게 원산사건과 미 남침례회 제휴 과정을 연구하셨습니까?
= 원래 우리 교단의 항일, 그리고 신사참배 거부에 관한 연구를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교단에 항일의 역사나 신사참배 거부에 관한 자료가 전무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신사참배거부로 인한 우리교단의 항일역사를 연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전무해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산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은 선진 목회자들의 신사참배 거부활동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습니다.
결국 원산사건의 단초가 되는 1915년 일제의 포교규칙공포와 이어 달편지 사건, 그리고 교규계 제출 사건을 살펴보던 중 우리 교단이 오랜 시간 일제로부터 감시와 사찰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일제의 감사와 사찰을 받으며 고초를 겪은 교단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대부분 원산사건으로 인해 우리 교단이 겪은 최대의 위기였다고 알고 있으나 사실 이미 1915년 일제가 포교규칙을 공포하고 기독교를 탄압하고 말살하려는 종교정책으로부터 우리 교단의 위기가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이번 논문에 우리교단의 새로운 역사적 사료를 많이 발굴하신 것 같은데 그 사료발굴에 대한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사료 발굴이라기보다 기존의 한국침례교회에 관한 선배 학자들의 연구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자료를 수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증언을 취재하기도 했지만 주로 우리 교단 역사의 사건에서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 조심스럽게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원산사건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주요인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이 우연하게 수집되는 경우도 있었고 아주 오래된 우리 교단의 월간 회보 ‘달편지’ 원본을 수집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교단의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덧붙여 이처럼 역사적 자료와 사료수집 및 발굴은 지도 교수님이신 남병두 교수님의 사료, 자료 발굴의 방법에 대한 지도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 향후 연구 계획이 있으십니까?
= 앞으로도 많은 고증 자료를 입수해서 혹여 연구에 미비한 점은 없는지 더욱 보완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내년 펜윅 선교 130주년을 더욱 알차게 맞이해 침례교단의 100년을 이끌어갈 구심점을 마련하는데 주력하겠습니다. 신학교육에서도 한국침례교회에 대한 다양한 학습과 연구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현재 신학교 커리큘럼에는 전공선택으로 한국침례교회사가 배정되어 있어 비중이 큰 편이 아닙니다. 교단의 정체성 차원에서 이를 심도있게 고민하고 한국 침례교회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전개돼야 할 것입니다.
범영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