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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축제 불허 ‘환영’

동성애는 반성경적인 죄악으로 성경 곳곳에 동성애에 대한 죄 인식과 이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존재한다. 성적 정체성은 하나님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으로 시작됐다. 중간의 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남자가 여자가 될 수 없고 여자 또한 남자가 될 수 없는 신의 영역에 속해 있다. 이것은 이미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된 부분이다. 하지만 구약과 신약의 여러 사건 중 동성애와 행음으로 인해 타락의 길을 걸었던 인간의 최후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으며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유럽이나 미국이 동성애를 합법화하며 제3의 성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의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뤄진 창조질서를 파괴해 이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시키는 심각한 상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에 대한 주요 교단과 교회들이 연합해 동성애를 인정하는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의 제정을 반대하며 반 동성애 운동을 펼쳐왔다. 교회의 끊임없는 요구와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우리의 사명으로 여길 정도로 교회 전체가 이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사활을 걸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학생인권조례 개정 움직임이나 국회의 법 제정 움직임을 모니터링하며 반성경적, 반윤리적 법안 제정에 우리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화축제란 그럴듯한 표현으로 우리에게 성적 정체성 혼란을 불러일으켰던 퀴어축제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고 해마다 서울을 비롯해 주요 도시에서 잇따라 열리며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해 서울시는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승인하며 ‘신체 과다 노출, 청소년보호법상 유해·음란물 판매 및 전시 등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서울시에 오는 6월 30일에서 7월 1일까지 퀴어문화축제를 위한 서울광장 승인을 요청했다. 그리고 서울시는 이들의 요청을 불허했다. 사용승인을 심사하는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같은 날 사용신청을 요청한 CTS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의 개최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시민위원회는 △공익을 목적으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행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집회 신고를 마친 행사 △공연과 전시회 등 문화·예술행사 △어린이·청소년 관련 행사 △그밖의 공익적 행사를 우선순위로 두고 결정해왔다.


동성애는 죄악임과 동시에 이들 또한 우리가 가르치고 반드시 되돌려야 할 잃어버린 영혼이다. 동성애자에게 분명한 성적 정체성을 심어주며 이들이 되돌아 올 수 있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가르쳐야 하며 문제의식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또한 퀴어문화축제나 동성애 관련 법령 제정 등에도 계속적으로 반성경적, 반윤리적, 반인권적인 문제 등을 알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협력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점점 성적 표현의 다양성과 자유로움은 윤리·도덕적인 입장에서도 심각한 우려를 낳기에 충분한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의 장소 사용 결정에 건강하고 건전한 문화 형성에 모두의 뜻이 모아졌으며 그동안의 한국교회의 지속적인 투쟁의 결실이라 믿으며 타지역에서도 경각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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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