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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현재-미래 잇다

역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유산(遺産)은 정체성과 자존심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어떠한 미래를 그려나갈 것인지 제시하는 청사진을 공유하는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현대 문명은 문자를 만들고 그들이 걸어온 길을 기록해 왔다. 이런 기록을 남기는 일, 역사를 남기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보존해 나갔던 국가나 민족들은 오늘날에도 문화 강대국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이러한 역사를 무시하고 기록하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직접 불살라버린 민족이나 나라는 현시대 그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거나,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금세 무너져 내려가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문화대혁명으로 오랜 시간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을 깡그리 불살라버렸던 중국의 현재 모습을 보면, 기록을 남기고 이를 후세에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이제는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지만 이렇다 할 내세울 것이 없어 남의 나라 문화를 항상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기는 모습은 “소국이라 부르기에는 땅이 넓고 대국이라기엔 속이 좁아서 중국이라 부른다”는 한 네티즌의 댓글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 침례교는 역사를 소중히 간직하며 후세에 전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의 노력도 있지만, 개교회까지 역사를 보존하고 알리는 일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과거를 기억하며 교회의 역사적 가치를 중요시여기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교회 개척부터 수많은 행사와 기념이 되는 안수식의 경우도 체계적으로 제대로 만들어 놓은 자료들이 없거나 또는 제대로 보관하지 못해 일부의 기억으로만 남겨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침례교회사를 다룬 책들 또한 50~60년대까지는 그나마 기록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후 역사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을 남긴다. 70년대 이후의 침례교회사를 다룬 책이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듣기는 했으나 몇몇 개교회를 중심으로 해당 교회의 역사를 다루는 것에 그쳐 과연 이것을 침례교회사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기에 침례신문은 역사를 기록하는 매우 중요한 사역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침례신문이 과거에 발행한 신문들을 들여다보면 큰 교회의 역사 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들의 이야기, 기관의 발전 과정, 총회가 진행했던 여러 사역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로 역사책을 출간하지 않더라도 이를 통해 침례교회가 어떻게 현재에 이르게 됐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중차대한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침례신문은 창간 70주년을 맞이하며 그동안 발행했던 종이신문을 디지털화하는 사업을 준비 중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쉽게 교단과 개교회의 역사를 검색할 수 있도록 아카이브 작업도 예비하고 있다. 아카이브 작업이 완료되면 많은 사람들이 무료로 교단과 개교회에 관련된 기사를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은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드는 일로 교단과 교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침례신문사가 보관하고 있는 신문들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기에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다. 특히 과거 신문 중에서 유실된 신문들도 있어 해당 광고에 실린 유실 신문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면 부디 침례신문사로 전달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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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