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유권자들은 나라를 위해 일할 인물과 정당을 선택했고 그 결과 16년 만에 여소야대의 정국을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누구의 잘못이나 어느 한 정당의 패인에 집중하기보다도 지역구에서 승리한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낙마한 후보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20대 국회가 나라를 생각하고 국민을 위해, 지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로 자리매김 해 주기를 바란다. 20대 국회는 계파와 정쟁의 갈등, 민생과는 멀어진 반목들을 과감히 타파했으면 한다. 항상 국회의원들에게 기대했지만 그 기대에 부응한 일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이번 당선자들은 민심의 뜻을 잘 읽어 국회에서 변화의 바람, 쇄신의 바람이 불어오길 바란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주목했던 정당은 바로 기독자유당이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비례대표 후보를 내고 원내 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 기독자유당은 시작부터 지난 19대 총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우선 제19대 국회의원이 영입되고 동성애 반대와 무슬림 특히 IS의 국내 진출을 저지하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나서 한국교회의 큰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이 사실이다. 한기
1842년에 만들어진 오페라 ‘나부코’는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대작이다. 1842년 3월 9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의 초연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후 다음 시즌이 67회나 공연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전작 “하룻만의 임금님”이 하룻만에 실패로 끝난 후 실의와 절망에 빠졌던 베르디는 이 작품을 통해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이 작품의 제목 ‘나부코’는 ‘느부갓네살’의 이탈리아식 이름이다. 그 중 제3막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히브리 노예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곡으로, 베르디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의 시국적 상황과 같아 이탈리아 국민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곡이다.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고 잡혀간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잇는 대운하 공사와 각종 성벽 공사에 투입되어 고역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고역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밤이 되면 이들은 다시 끌려나와 병사들과 감독관들의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는 일에 노리개감이 되어야만 했다. 이 슬픔과 애환을 노래한 것이 시편
좀 식은 감이 있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의 천성에 가까운 냄비근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총선을 앞든 정치적 이유로 잠시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을 뿐, 수면 아래에서 진화를 끊임없이 거듭하고 있다. 곧 우리에게 현실이 될 미래를 향해서 말이다. 이제 그 기억에 다시 불을 지펴 보자. 약 한달 전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의 세기적인 대결이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전 세계의 눈을 순식간에 대한민국으로 끌어당긴 놀라운 대 사건이었다. 바둑과 알파고 그리고 이세돌의 홍보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도 계산 불가능한 홍보효과를 거두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5번의 대국이 열리는 동안 우리의 혼을 쏙 빼놓은 사건은 오늘만의 것으로 한정되기에는 그 폭발력이 너무 컸다. 그것은 장차 우리가 맞게 될 미래의 현실이 될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 보다는 두려운 충격으로 다가 온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때 비로소 ‘알파고’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AI(Artificial Intelligence), 즉 인공지능이라
기독교 신앙 정체성과 성경의 원리에 반하고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조장하는 차별금지법안 등은 국회에서 반드시 완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일부 차별금지법 옹호론자들과 기독교 안티 세력들은 한국교회 전체를 반인륜주의의 상징인 나치나 범죄 집단에 비유하며 연일 기독교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번에 치러진 4·13 총선에서 제20대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동성애 옹호·지지와 차별금지법안 찬성 여부가 기독교인들의 투표기준 가운데 하나가 됐다는 후문이다. 동성애 조장 우려가 있는 차별금지법의 ‘성적지향’ 조항과 관련해서는 독소조항이라며 기독교를 중심으로 “강력 반대”라는 의견에 맞서 사회적 합의 도출 과정이 필요하나 법률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중도적 입장,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에 무게를 둔 찬성 의견 등의 견해로 나뉘어 있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 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2016 침례교 목회자 부부 영적성장대회’가 4월 말에 열린다. 우리교단 총회(총회장 유영식 목사)는 오는 25일부터 28일까지 경상북도 경주 보문단지에 있는 켄싱턴 리조트에서 ‘2016년 침례교 목회자부부 영적성장대회’를 갖는다. 총회 105차 회기 임원들은 올해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전국목회자 부부 영적성장대회가 열리는 만큼 은혜롭게 치러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해마다 열리는 영적성장 대회는 개 교회 및 우리교단의 부흥과 목회자의 휴식과 영적 회복을 위하여 적잖게 기여해 왔다. 현재 총회는 전국 지방회 회장들과 총무들에게 개 교회 목회자들의 참석을 독려해 주기를 요청한 상태다. 영적성장대회 참가 신청방법은 지방회 별로 신청서를 작성한 뒤, 이메일(kbc6634@naver.com) 이나 총회 팩스(02-3666-7007)로 보내면 된다. 이번 대회는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꾀하고자 크게 목회자의 육체적·영적 휴식, 기도회, 특강, 체육대회 등의 순서로 진행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적성장 대회는 그동안 개 교회의 부흥과 발전, 그리고 교단성장을 위해 주야로 헌신하는 침례교 사역자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를 통해 서로 귀한 은혜의 시간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본지는 최근 들어 예산부족과 기자재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 침례신문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언론은 지금 모두 생존 위기에 처했다. 교계신문들은 현재 유로 정기구독자 및 발행부수 감소, 직원부족 및 열악한 근무환경, 광고주에 의한 편집권 갈등, 만성적자 등으로 허덕이고 있다. 한국교회의 부흥기와 함께 번성했던 교계언론이 이제는 더 이상 독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다 개 교회나 기독 단체들도 교회 내부의 민감한 치부를 외부에 드러내는 눈엣가시 정도로 여겨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특별히 한국교회의 각 주요 교단지나 초교파신문들의 경영은 예외 없이 구독헌금과 광고헌금에 의해 유지되는데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언론이나 개별 언론사의 난립 등으로 인해 더 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본지가 사실상 침례교단 유일한 기관지이자 정론지로서의 역할과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침례신문은 수 십 년간 신문구독료가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본지의 구독현황과 관련해 2015년 말 현재 유료 구독률은 17.4%이다. 다시 말해 82.6%가 구독료를 내지 않고 공짜로 신문을 보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장로교 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남을 찬양하는 날이다. 구약시대를 지나 율법으로 변질된 시기,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짧은 공생애를 살면서 인류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선포했다.율법의 세상이 아닌, 진리가 선포됐던 세상, 결국 종교지도자들 결탁한 공중권세 잡은 권력자들의 손에 의해 그 때 당시 가장 참혹한 형벌인 십자가형으로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여러 선지자와 자신의 예언대로 예수는 사흘 만에 부활했고 어둠의 권세를 이겨낸 승리자로 우리에게 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잡혀간 사실에 놀라 흩어졌던 제자들, 예루살렘의 입성을 열렬히 환영했던 히브리 백성들, 그를 십자가에 끝까지 못 박으라고 외쳤던 권세자들이 지금 이 세대에도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모든 핍박과 고난에서 온 세상의 구세주로, 승리자로 부활했다. 그 감격을, 그 기쁨을 2000년이 지난 오늘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성과 과학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단지 성경의 기록으로 역사적 사건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부활절에 대한 무덤덤한 생각들은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20여 년간 목회하다보니 지금까지 돌아가신 성도들의 수가 남아계신 성도들의 수에 거의 육박한다. 돌아가신 분들 중 몇 분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을 빼고는 대부분 급만성 질환으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단 한 분이 사고나 아무런 질병이 없었는데도 돌아가셨다. 물론 자살한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노쇠하여 몸에 아무런 기력이 남지 않아 돌아가신 것이다.그 분은 연세는 많으셨지만 평소 건강하고 총기도 좋으신 ㄱ집사님이셨는데 어느 날 주일 예배에 빠지셨다. 같이 살고 있는 딸이 연락해오기를 기운이 없다고 누워계신다는 것이다. 심방을 갔더니 “아이고 목사님! 뭐 하러 오셨슈. 아픈 데는 없는 디 그냥 기운이 없어서 들어 누었더니 더 기운이 없어져서 교회도 못 갔네유.”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딸의 말을 들으니 입맛 없다고 며칠 전부터 밥을 잘 안 드시더니 저렇게 들어 누우셨다며 어디가 편찮으신지 검진하려고 대학병원에 예약했단다. 며칠 후 병원에 다녀온 딸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몸은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단지 기운이 없을 뿐이어서 영양주사 한 병 맞고 왔다는 것이다. 다시 심방 가서 식사 잘 드시라고 말씀드리니 웃으면서 알았다고 걱정마시라고
봄비가 전국적으로 내리고 봄날이 겨울동안 가뭄 속에 척박했던 강원도 산골자기에도 찾아왔다. 교회 월력에 나타나 있는 2월 10일부터 시작된 사순절과 3월 20일 종려주일, 고난주간 시작과 그리고 3월 27일의 부활주일. 이렇게 새로운 봄날은 주님의 수난의 때와 함께 고난의 강을 건너야하는 것이다.사순절의 신학적 의미는 사순절은 초대교회의 가장 오래된 절기인 부활절기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부활절 전 7번째 주간의 수요일(참회의 수요일 혹은 재의 수요일)에 시작해 작“은 부활절”이라고 말할 수 있는 6번의 주일을 제외하고, 40일간 계속되기 때문에 사순절이라고 불린다. 간단히 말해 사순절은 침례와 회개를 통한 돌이킴의 기간이며 회개, 기도, 화해, 금식, 침례로 신앙성장을 도모하는 절기이다.4세기말에 이르러 부활절은 교회에서 거룩한 침례를 받기위한 가장 중요한 절기가 됐으며 초대교회는 이처럼 침례와 깊은 관계가 있는 부활절을 자연스럽게 준비하는 기간으로 사순절을 지키게 됐다. 다시 말해 초대교회는 부활절에 앞서 십자가의 수난을 명상하고 금식하며 회개하는 가운데 침례를 받는 교인들과 함께 감격스러운 부활 주일을 맞이했다. 이것이 사순절의 역사적 배경이다.예
아마 이 세상에서 에이브라함 링컨만큼 실패를 많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다. 우리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실패한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실패한 일을 계속 생각하면 다른 일을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는 성공할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성공과 승리를 생각하라. 그리고 실패를 통해서 배우라.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실패는 절대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더구나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했다면 그것은 절대로 수치가 아니다. 목표 없이 사는 것이 수치요, 도전 없이 사는 것이 수치요, 모험 없이 사는 것이 수치다. 목표가 없으면 지금 이 순간보다 나아질 수가 없다. 한 번의 실패가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실패한 적이 있고, 현재 실패하고 있다고 해서, 미래에도 실패할 것이라는 말은 있을 수가 없다. 우리가 하던 일을 포기하거나 가고 있는 길을 중단하기 전에는 결코 패배자는 아니다. 올리버웬델 홈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내게 만일 곤란한 문제가 닥쳐온다면 나는 그것을 피해가지 않을 것이다. 곤란한 문제는 그 자체 속에 해결책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