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캄보디아에서 이 글을 씁니다. 이번 방문이 네 번째인데,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지난 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던 국가라는 사실이지요. 1984년도에 개봉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화제가 됐던 영화 ‘킬링필드’(Killing Field)로 인해 세상에 많이 알려지고 관심을 끌었습니다. 캄보디아 내전을 취재하고 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뉴욕타임스 기자였던 ‘시드니 쉔버그’의 체험에 근거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국 영화인 ‘킬링 필드’를 보면서 소름 끼치는 전율을 느끼며 한 동안 가슴아파했던 기억이 내게는 아직도 새롭습니다. 과거 찬란했던 ‘앙코르(Ankor)왕국’의 신비한 유산을 간직한 나라이면서 동시에 근대사에 있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들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에 비견될 정도로 끔찍하기 그지 없는 야만적인 사건이 벌어진 곳으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극악무도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소름 끼치는 대 학살극을 벌임으로 피로 물들었던 ’킬링 필드‘가 바로 캄보디아입니다. 그래서 더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인 선교사들이 캄보디아에 첫 발을 들여 놓은 것은 1993
우리나라에는 각종 기념일들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매달 14일마다 지키는 비공식적인 기념일들이 있습니다. 매달 14일에 ‘ㅇㅇ데이’를 붙여서 기념하고 있는데, 1월은 ‘다이어리데이’, 2월은 ‘밸런타인데이’, 3월은 ‘화이트데이’, 4월은 ‘블랙데이’, 5월은 ‘로즈데이’, 6월은 키스데이’, 7월은 ‘실버데이’ 등 수식어도 매우 다양하기 이를데 없을 정도이며, 다분히 상업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지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날들을 기억하고 일종의 문화현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우리에겐 기독교 정신이나 가르침과는 동떨어진 허황된 개념으로만 비쳐지지만, 비신자들은 그런 날들에 의미를 붙여서 즐기고 서로 소통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우리의 과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분히 반기독교적 혹은 비상식적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배척만 하면 오히려 우리가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도 아닌데다 기독교적인 전통과 가치관에 입각한 어떤 기념일이나 다 같이 즐길 만한 축제일 같은 것도 없으므로 비신자들을 마냥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들에게 대안을 주지 못하면서 무조건 잘못이라고 지적만 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0장 3절에서 주님은 목자들이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는데,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목자는 각각 자기 양의 이름을 불러 인도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이 말씀이 저의 마음 깊은 곳에 비수처럼 꼽히는 경험을 했는데, 그 후로 이 부분이 저의 목회의 기본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양(교인)들의 이름을 외우게 되었으며 언제나 양들의 이름을 즐겁게 부르곤 했습니다. 목자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양들의 이름을 아는 것은 목자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자 목회에 매우 필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평생 세 교회를 섬기고 은퇴를 했는데, 제가 섬겼던 교회들의 유치부 어린아이들 이름도 다 알고 있어서 언제나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고 축복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제가 섬겼던 교회는 규모가 큰 교회가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목자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면 양들은 무척 좋아하고 감사해 하는데, 목자가 자기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특별한 능력이나 어떤 은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목자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양의 이름을 모르는 목자는 어떤 면에서 목자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근에 한 공당의 대표가 장애인들의 시위 문제를 비판하면서 장애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됐습니다. 이 정치인은 장애인들의 시위 방식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장애인들의 외침에 집중할 때에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위에서 장애인들의 요구는 이 사회의 구성원인 보통 사람들처럼 활동할 수 있도록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와 유사한 시위가 시작된 지 20여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보통 사람처럼 자유롭게 이동하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학문적으로 장애인 복지의 핵심은 ‘정상화(normalization)’와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이라는 아젠다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정상화라는 말은 쉽게 설명하면 장애인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사회통합은 장애로 인한 차별과 구분을 없애고 하나의 공동체에서 한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공동체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장애인을 품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교회가 무엇
3. 필리핀 한인 선교의 새로운 과제 필리핀 한인 선교는 글로벌적 21세기 선교틀에 걸맞게 새로운 역할을 인식하고 새 옷을 입을 필요를 느끼고 있다. 필리핀은 눈총 받던 레드오션에서 미래 선교의 전략 요충지와 탁월한 세계 선교 자원 보유국으로 재인식되어 블루오션이 됐다. 더불어 다음과 같은 선교적 과제들을 가지고 있다. 1) 하드웨어적, 물질적 시혜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적인 본질에 주력해야 한다. 본질은 복음 전파와 제자 훈련을 통해 사람 세우는 일이다. - 건물보다 사람을 세우는 제자 양육 및 센딩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 본질적 목회의 건강한 시스템을 통해 예배, 교육, 전도, 선교, 치유 및 봉사를 강화하고 우수한 신앙 및 신학 교재와 커리큘럼 개발에 힘써야 한다. - 차세대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 선교에 무게 중심이 이동하며 이들을 제자와 지도자로 육성해야 한다. - 현지 교회 지도자들인 목회자 교사 리더 등의 교육 및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 2) 서민 빈민층 선교를 넘어서 필리핀 정재계 및 사회 주도층인 상류 엘리트 계층과 중산층 가문들의 복음전도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3) 단기 선교의 의미와 효율성이 깊이 연구돼야 한다. - 단기선교의 패러다임의
10. 세계 선교의 허브 필리핀 필리핀복음주의교회협의회(PCEC)는 2011년 필리핀 기독교인을 1100만명이라고 발표했다. 2014년 필리핀 통계청은 로마가톨릭 83%, 개신교 9%, 이슬람 5% 및 기타로 수치를 제공하고 있다. 개신교단 중에서 순복음교회 계통의 교회들이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활동적인 필리피노들의 정서에 부합해 더 많이 성장하고 있다. 미래 세계 선교가 필리핀으로 통하기 위해서 아래의 부분들이 고려돼야 한다. · 사람을 키우는 제자 양육 사역 집중함이 요청된다. · 평균 연령이 30대인 필리핀의 다음 세대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을 기독 지도자로 집중적, 지속적인 육성해야 한다. 인재양성 프로그램이나 장학생 제도 등을 통해 국내와 해외 선교사로 육성한다. · 목회자와 평신도 교육 및 훈련에 집중하고 특히 목회자 재교육 및 연장 교육을 통해 그들이 갖는 신학 부재를 해결한다. 더 나아가 필리핀 민족 복음화를 감당하도록 비전 제시와 훈련 및 코칭을 한다. 평신도가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QT나 성경공부 교리 공부반 등을 통해 훈련한다. V. 필리핀·한국선교연합회(필·한선협) 역사와 역할, 새로운 과제 1. 필·한선협의 역사 필·한선협은 1974년 4
3. 필리핀 한선협 50년 주년 역사 편찬, (은퇴)선교사 후생복지 연구, 선교사 묘지 1) 필리핀 한선협 50주년 역사 편찬 필리핀 한선협 선교 50주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간의 선교에 대한 평가와 피드백을 통해 필리핀 한선협의 미래 선교에 대한 방향성과 전망을 제시할 필요를 위해 50년간의 선교 역사 편찬이 필요하다. 2) (은퇴 및 시니어) 선교사의 후생 복지 선교사의 후생 복지에 대한 준비와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은퇴 및 시니어 선교사의 후생복지와 예우는 시급한 필요를 갖는다. 현재 늘어나고 있는 선교 1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은퇴 선교사의 후생복지와 정체성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케어가 필요하다. 시니어 선교사에 대한 의료 서비스 및 예우 서비스와 더불어 인간이자 선교사로의 존엄성을 유지하도록 주니어 선교사들의 도울 필요가 있다. 3) 선교사 묘지 한국의 양화진, 광주 양림동, 전주 선교사 묘원같은 선교사 묘지터의 조성은 현재 한인 선교사의 지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후대에 물려줄 유산이 될 것이다. 4. MK 선교 자원화 MK들의 교육 및 신앙적 케어와 이들의 연대를 통한 선교, 창업 및 취업을 통해 전문인 선교사로서 훈련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III. 필리핀 한인 선교 1. 한인 선교와 형태 초기 한국 선교사들이 필리핀에 들어왔을 때는 DAWN이란 선교 운동이 개척교회를 필리핀 전역에 펼치기 시작한 때이다. 이에 맞춰 한인 선교사들은 개척교회 및 신학교 세우기에 열심을 다했다. 이러한 개척 교회 설립 운동은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필리핀 현지 목회자들의 요청에 의해 새로운 사역으로 전환을 하게 된다. 이후 한인 선교사들은 NGO, 유치원 초중고학교 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그 외에도 음악사역, 문화사역, 체육선교, 군경 선교 사역 등으로 확대됐다. 현재 필리핀 한인 선교사의 사역 형태와 범위는 교회 건축, 신학교, 현지 학교 교사, 초중고대학교, 현지 주일 학교 교사 훈련, 현지 교회 협력, 피딩(급식), 고아원, 각종 구제, 장학생, 기관(경찰, 교도소, 군등) 제자 훈련, 캠퍼스, 어린이 선교, 기도원, 미디어, 컴퓨터, 각종 문화 사역(한글 교육, 작은 도서관, 방과후 교실 등), 직업 훈련원, 부족 선교, 문서 사역, 의료 사역, 무슬림 및 제3세계 권 생활 훈련 사역, 고아원, 농장, 한인 디아스포라, 코피노, 한센병 사역 등으로 아주 다양하다. 필리핀 한인 선교사들은 한국인 특유의 기질과
필리핀의 한인 선교 역사는 마닐라 한인연합교회가 시작된 1974년 4월 10일 부활절을 기점으로 본다면 5년 후 2,024년에는 50년의 역사에 이른다. 필리핀 선교는 이제 중장년의 시기에 접어 들었고 필리핀 복음화율도 이제 거의 10%선에 육박해 자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필리핀은 위험하고 못사는 나라로, 그동안 일부 필리핀 한인 선교사들의 부적절한 문제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필리핀과 필리피노에 대한 선교는 세계 선교의 영적인 측면에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 부정적인 인식 속에서도 연간 120만명의 관광객, 타국에 비해 월등히 많은 단기 선교팀, 그리고 10만의 교민들은 한국(교회)의 필리핀에 대한 애증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리핀 선교는 여전히 중요하고 미래 선교의 허브적 역할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 본 글은 50년 가까운 필리핀 한인 선교의 역사를 세세히 다룰 수 없는 한계 속에서도 5장에 걸쳐 필리핀 선교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룬다. 1장은 필리핀 개요: 지정학적인 위치 및 경제, 2장은 필리핀 초기 선교 역사, 3장은 주 필리핀 한인 선교, 4장은 필리핀 선교의 미래, 5장은 필리핀한국선교
가나중앙지방회 글로벌비전교회(김홍빈 목사)는 지난 8월 9~15일 말레이시아로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이 글은 말레이시아 단기선교에 동참한 서은선 자매의 간증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말레이시아 선교를 다녀온 서은선입니다. 처음에는 선교에 대한 기대감이 잘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선교여행의 메인 사역 중 하나였던 이란여성모임 사역을 준비하면서 기대감도 생기고 그 분들께 진짜 위로를 전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날짜가 다가올수록 팀원들의 마음과 저의 마음에도 불안한 마음보다는 하나님께서 일해주실 것에 대한 마음으로 가게 해주셨습니다.그 결과 말레이시아의 선교여행은 저에게 여태까지 갔던 많은 해외 선교여행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교여행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저희의 첫 사역이었던 이란 여성 모임에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실 저희가 준비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란 여성분들에게 마스크팩을 해드리는 것이었는데 현지인들 특성상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시간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빈틈없이 잘 채워주셨습니다. 마스크팩을 해드리는 대신 어깨를 주물러드리고 손마사지를…
다윗의 씻을 수 없는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나타났고, 뒤이어 베냐민 출신 세바도 반기를 들었다. 다윗에게는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온갖 수치와 모욕, 조롱이 뒤따랐다. 그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인고의 날들이었을 것이다. 사무엘하 21장을 보면, 그러한 혼란정국이 수습되고 다윗의 이스라엘 왕국이 다시금 안정을 되찾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었고 3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다윗은 다시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고, 백성들은 다윗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끝나지 않았다고 여기며 그를 향한 비난과 원성이 되살아났을 것이다. 비통한 심정으로 다윗이 주님께 나아가 기근의 원인을 구할 때, 3년이 지나서야 하나님은 사울이 흘린 피로 인한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다윗은 사울에게 죽임을 당한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그들의 요구대로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내어주고 기브온인들은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에서 그 일곱 명을 목매달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 바로 비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근의 원인을 알고 그 문제를 수습했음에도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때 등장하는 한 여인이 있다. 바로
“스포츠 정신과 기사도에 입각한 경기는 인간의 자질을 최고로 향상시킵니다. 그 이해와 존중 안에서, 선수들을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단합됩니다. 그것은 또한 평화의 정신 안에서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것을 돕습니다. 그것이 올림픽 성화가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이 연설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회사 중에 한 내용입니다. 평화와 스포츠 정신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녹아져 있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이 연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는 아직까지도 전 세계인들을 소름 돋게 만드는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였습니다. 연설문의 작성자는 나치의 선전부장 괴벨스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때 히틀러는 ‘평화의 사자’로서 한껏 쇼맨십을 발휘하며 우리민족의 자랑인 손기정 선수와도 악수를 했습니다. 히틀러의 거짓평화공세에 많은 이들이 “우리가 히틀러를 오해했다”라고 안심을 했지만 결국 3년 후에 저 끔찍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철저하게 나치의 기만술에 이용됐던 ‘베를린 올림픽’, 세계올림픽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베를린 올림픽’은 거짓평화공세의 장으로 스포츠가 이용될 수 있다는 교훈을 전 세계인들에게 뚜렷이 남겨줬던 것입니다.
마식령스키장은 평창올림픽과 관련해서 가장 큰 핫 이슈이다. 남북 스키선수들의 공동훈련(1.31~2.1)장소이자, 북한에서 김정은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체육관광명승지’이다. 북한 노동신문에서도 마식령에 대해 계속해서 선전하고 있고 심지어는 영상홍보(1월 26일)까지 올려놓고 있다. 27일자는 “사랑넘치는 마식령”이란 제목으로 마식령 스키장에 대해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물론, 방점은 김정은 우상화이고 인민애가 남다른 ‘온정의 지도자’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인민에게 무엇을 한 가지 주어도 세상에서 제일 좋고 훌륭한 것을 마련해 주시려는 것이 우리 원수님의 뜻이다. 인민들에게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기 위해 마음 쓰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께서는 눈이 많이 내리고 스키주로를 형성하는데 적합한 지대인 마식령에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스키장을 건설할 것을 직접 발기하시고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었다.” “마식령스키장건설의 나날 공사장을 여러 차례 찾으시어 건설자들에게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시고 공사를 최단 기간 내에 다그쳐 끝낼 수 있는 대책들을 세워주시면서 인민들에게 흠 잡을데 없는 훌륭한 스키장을 안겨주시려 우리 원수님께서 바치신
평창동계올림픽 북한선수단 및 응원단 참여문제로 한국교회 안에서는 두 가지 주장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주 북한을 위해 중보하는 대표적인 단체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들렀을 때, 그 단체와 동역하는 한 선교사와 개인적으로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됐다. 그는 “주님이 큰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저에게만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큰 위기가 닥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지금 금식기도하고 있습니다.”라면서 평창올림픽에 대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면, 평화의 슬로건을 내세운 단체 리더는 “평창 땅을 통해 평화의 대로가 열리는 환상을 주님이 2010년대에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끊임없이 기도했고, 그 응답의 결과가 평창올림픽입니다. 평창은 ‘평화’가 ‘창성한다’라는 의미입니다.”라고 평창올림픽 북한참여에 대해 환영을 넘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주님의 뜻, 성령의 감동(영감), 예언들을 앞세운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은 우리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물론, 어느 한 쪽을 취한 이들은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하기에 마음을 쏟을 수 있어 한결 홀가분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성도들은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를 되내이며 마
이번 주에 케네스 배 선교사가 이끄는 북한관련 국제NGO단체 창립식에 다녀왔다. 캐네스 배 선교사는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로 2012년 11월 종교활동을 통한 정부 전복혐의로 북한에 체포되어 2013년 4월 국가전복음모죄로 노동교화형 15년형을 선고받은 이후, 735일간 형을 살다가 2014년 11월 9일에 풀려나 현재 국내에서 북한인권과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얼마 전, 배 선교사에 대한 영상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은 터라, 조금 흥분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동이 밀려왔고 필자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 것들이 있었다. 첫째는, 외국인 동역자들이 참여했는데, 어떤 선교사 가정은 배 선교사가 체포되기 전부터 중국에서 함께 했던 이들로 그가 체포되고 난 후에 다른 동역자들은 다 떠났으나 그 선교사 가정은 그곳을 지켰다는 것이다. 둘째는, 배 선교사의 멘토인 듯싶은 노년의 어느 한 목사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축도할 때 잠깐 모습을 비췄지만 그 기도 속에 주님을 향한, 북한영혼들을 향한, 배 선교사에 대한 애절함이 절절히 묻어나왔다. 이미 고인이 됐지만, 필자의 멘토였던 임 선교사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셋째는, 평창 동계올
교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예배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정부 지침으로 대면예배가 어려워지고 행정조치로 인해 예배당이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던 팬데믹이 극에 달했을 때 많은 교회들은 예배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배 회복을 위한 자유시민연대’(예자연)는 서울시장을 상대로 대면예배 금지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했고 최근 6월 10일 1심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대면예배 금지 처분은 교회가 음식점 등과는 달리 생산 필수시설이 아니라는 점에 근거해 집합을 금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회는 교인들의 심적 위안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증오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등 안정된 정신 건강을 지원하는 순기능이 있다”며 “장기간 시행된 거리두기 등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우울증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교회가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이 생산필수 시설에 비해 열등하거나 중요도가 덜하다고 볼 타당한 이유는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감염 예방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이를 통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비례의 원칙이나 평등원칙에 반해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그동안 교회 예
오는 7월 16일, 서울광장이 음란과 죄악의 장소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한국교회 내에서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리는 동성애축제(퀴어축제)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시민위)는 지난 6월 15일 회의를 통해,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신청한 서울광장 사용 신청 안건을 수정, 가결했다. 시민위는 애초 조직위가 신청한 행사 기간(7월 12∼17일)을 7월 16일 토요일 하루로 줄이고, 신체 과다노출과 청소년보호법상 금지된 유해 음란물 판매·전시를 안 하는 조건으로 광장 사용 신청을 받아들였다. 시민위는 무대 설치 등 행사 준비 시간을 주기 위해 행사 전날인 7월 15일 오후부터 조직위가 광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동성애축제가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것은 2015년부터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오프라인 집회가 금지된 기간을 제외하고 불허된 적이 없이 매번 시민위를 통해 사용신청이 통과됐다. 지난 2019년 당시 서울시의 다수의 공무원들이 서울광장 동성애 축제를 반대하며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서 ‘서울광장은 시민의 건전한
말씀과 기도의 축제인 ‘라이즈 업 뱁티스트’ 침례교 연합기도회는 지난 6월 3일 세종꿈의교회(안희묵 목사) 집회를 끝으로 12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100만 뱁티스트 전도운동과 함께한 이번 연합기도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교회와 성도들이 대면과 비대면으로 동시에 적극적인 참여로 말씀을 회복하고 기도로 은혜받은 집회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같은 연합기도회가 열릴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코로나19로 인해 제한적인 교회 사역 가운데 나온 돌파구였다. 교회의 모임이 제한을 받고 대면 모임이 사실상 통제되면서 대규모 집회를 치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온 대안이었다. 그리고 이 대안은 지난해 12일 동안의 연속된 집회를 통해 침례교회가 ‘기도하는 교단’ ‘말씀으로 충만한 교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대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특별히 2022년 ‘라이즈 업 뱁티스트’는 주요 지역의 거점교회를 선정하고 인근 지역에 속해 있는 침례교회가 함께 연합으로 참여하는 자리로 마련하자는 취지로 10개 교회에서 집회가 열렸다. 교단 안팎에서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이 말씀 증거자로 나서 침례교회와 한국교회를 위해 회개를 촉구하고 영혼 구령을 위해 교회 회복을 위해 한
2년 남짓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교회는 심각한 목회 사역의 타격을 입었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제되고 일상의 회복이 이뤄지면서 외관상으로는 정상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교회의 완전한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와 기아대책 등이 지앤컴리서치(대표 지용근)에 의뢰해 조사한 목회자와 교인들의 현장 예배 참석에 대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3명만이 현장 예배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지앤컴리서치는 또 목회자 981명과 교인 1500명에게 설문한 결과 28.3%만이 ‘곧바로 현장 예배에 참석했다’고 답했으며 57.8%는 ‘일정 기간 지켜본 후 현장 예배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지난 5월 첫째주부터 교회는 마스크 미착용자나 발열증상이 있는 자를 제외하고 모든 인원에 한해 예배당을 개방하고 교회 자체적으로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가운데 교회 사역을 정상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도 안되는 인원만이 현장 예배에 참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온라인 예배에 길들어진 성도들의 주일 예배에 대한 인식이 현장 대면 예배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면 예배 참석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그만큼 역사란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뛰어넘어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침례교의 역사는 영국의 비국교도운동 및 재침례파에 기원을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개혁 시기였던 16세기 당시 영국 국교회였던 성공회와 상충됐다. 침례교는 불세출의 설교가라 불리는 찰스 스펄전 목사(Charles Spurgeon)와 같은 설교가들을 배출하면서 점차 영국 전역으로 확장됐고, 그 세력은 장 칼뱅의 예정설을 극단적으로 해석해 선교가 필요 없다는 기존 영국인 선교사들에 반발, 세계침례회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를 세워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 선교사(William Carey)를 통해 전세계로 확산됐다. 한국 침례교의 기원은 1889년 12월 펜윅 선교사에 의해 함경남도 원산에 설립된 ‘대한기독교회’(1921년 ‘동아기독교회’로 교단명 변경)로 펜윅은 한국인의 특색에 맞춘 선교에 집중했으며, 도시보다 산간 및 해안가 선교에 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