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0 (금)

  • 맑음속초 12.4℃
  • 구름많음동두천 13.6℃
  • 구름많음파주 14.5℃
  • 구름많음대관령 7.5℃
  • -춘천 15.5℃
  • 구름조금북강릉 11.5℃
  • 맑음강릉 12.8℃
  • 맑음동해 12.5℃
  • 구름많음서울 15.1℃
  • 구름조금인천 13.5℃
  • 맑음수원 14.4℃
  • 구름많음영월 15.0℃
  • 구름조금대전 16.2℃
  • 흐림대구 13.7℃
  • 구름많음울산 11.3℃
  • 흐림광주 14.8℃
  • 흐림부산 11.3℃
  • 구름조금고창 14.0℃
  • 맑음제주 14.1℃
  • 맑음성산 16.3℃
  • 구름조금서귀포 17.1℃
  • 구름조금강화 12.3℃
  • 구름많음양평 13.4℃
  • 구름많음이천 14.9℃
  • 구름많음보은 13.3℃
  • 구름많음천안 15.7℃
  • 맑음부여 14.8℃
  • 구름많음금산 14.3℃
  • 흐림김해시 11.2℃
  • 흐림강진군 13.4℃
  • 흐림해남 13.9℃
  • 흐림고흥 11.1℃
  • 구름많음봉화 12.0℃
  • 구름많음문경 12.4℃
  • 구름많음구미 13.8℃
  • 구름많음경주시 13.9℃
  • 흐림거창 11.0℃
  • 흐림거제 11.0℃
  • 흐림남해 11.6℃
기상청 제공

특집

성령의 부흥사 김충기 목사 천국으로 이사하다


故 김충기 목사 약력 (1932. 6. 19 충남 부여 生)


목회 경력
1946. 박기양 목사 주례로 침례
1958~1961 반조원침례교회 담임
1958.10.18(음력) 박인애 사모와 결혼
1962~1966 함열침례교회 담임
1964.12. 함열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
1967~1976 대구중앙침례교회 담임
1976.2~2002.8 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
                     양수리수양관 원장
2002.8~ 강남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


학력
침례신학대학 목회대학원 졸업
미국 아리조나주 그랜드 캐니언대학교 명예신학박사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침례대학교 명예철학박사
침례신학대학교 명예신학박사


교단 경력
1989.9 기독교한국침례회 45대 총회장
1989.1 한국기독교부흥협회 제19대 회장
1991.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
1990.8 제16차 침례교세계대회 대회장
1991.1 전국기도원총연합회 총회장
국내선교회 회장, 사단법인 군복음화후원회 이사,
침례회보 사장, 침례신문 이사장 등 역임.
백운대침례교회, 분당꿈꾸는교회 등 국내외 다수의 지교회 설립




201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한국교회 부흥의 큰 별이자 꽃피는 침례교회를 이끌었던 김충기 목사(강남중앙 원로)가 주님 품에 안겼기 때문이다. 주님의 나심을 기뻐하는 성탄절에 김충기 목사의 천국으로의 이사는 침례교단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에 크나큰 슬픔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김 목사는 침례신학대학교 목회대학원을 졸업한 후 침신대를 비롯해 미국 그랜드캐니언 대학교와 텍사스의 댈러스침례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학위와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30대 젊은 시절에 반조원침례교회 함열침례교회, 대구중앙교회를 담임했으며 40여명의 성도들과 함께 강남중앙침례교회를 개척해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뤄낸 한국교회와 침례교단의 전설적인 부흥사였다. 김충기 목사의 부흥운동은 한국교회를 넘어 미국과 대만 등 기독교 전체에 끼친 공헌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지대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제45대 총회장은 물론이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 등 한국교회의 리더로서 영향력을 발휘한 그는 무엇보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는 성경말씀에 기초한 성령의 역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한국교회에 일깨워 많은 교회들이 말씀 중심, 성령중심의 교회로 거듭나게 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




◇ 평생의 좌우명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김충기 목사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충남 부여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교 집안에 시집와 시댁의 모진 박해에도 꿋꿋하게 신앙을 지켜온 어머니 밑에서 자란 김충기 목사는 이러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가정적인 어려움과 국가적인 식민치하의 고통 속에서도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강인성과 순수성을 키우며 성장하게 된다.


해방 후 발생한 동족상잔의 비극인 1950년 6·25 한국전쟁에서 청년 김충기 목사는 군에 입대해 공산당에 맞서 싸우는 도중 부상을 입어 야전병원에 옮겨졌다. 심각한 부상으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주님의 기적과도 같은 은혜를 경험하고 부상이 회복된 김충기 목사는 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께로 바치겠다고 서원하며 침례신학대학교 목회대학원을 졸업한 후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다. 자신의 좌우명과도 같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란 말씀을 평생 마음속에 새기게 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라고 한다.




◇ 성령과 함께한 최고의 부흥사 김충기 목사
1955년 충남 서천군에 있는 망월침례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한 김충기 목사는 그 이후로 반조원침례교회와 함열침례교회, 대구중앙침례교회 그리고 강남중앙침례교회 등 숱한 목회의 현장에서 탁월한 부흥사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며 부임해 가는 곳곳마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뤄냈다. 김충기 목사가 뛰어난 부흥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반조원침례교회 목회시절부터였다.


물론 처음에는 다소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로지 기도와 말씀만을 붙잡고 버틴 김충기 목사에게 성령의 역사가 임해 부흥사로 쓰임 받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가 반조원침례교회에서 인도한 50일 부흥성회는 두 시간씩 이어지는 주일설교에 모든 성도들이 집중하며 말씀의 양식을 받아먹었고, 계속된 철야기도회에 지쳐 일상생활 중에 졸던 성도들 대부분이 밤에 잠을 자는 중에 방언이 임하고 성령의 진동으로 깨우는 사람이 없어도 새벽 4시 30분이 되면 모두 일어나 새벽기도에 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반조원침례교회의 부흥소식은 전국 각처에 퍼지게 됐고 그 이후로 김충기 목사는 여러 곳에 부흥사로 초청을 받으며 성령의 능력을 통해 전국교회를 부흥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부흥의 역사는 이후 김충기 목사가 부임했던 함열침례교회와 대구중앙침례교회에서도 이어졌고 김충기 목사가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서울 강남에 개척을 하려 할 때 대구지역 목회자들이 교단을 불문하고 떠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일화는 그의 부흥사로서의 능력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강남중앙침례교회 창립과 양수리수양관, 칠판설교의 개척자
김충기 목사는 1976년 2월 1일 40여명의 성도들과 강남 땅에 교회창립예배를 드리며 개척을 시작한다. 이것이 지금 침례교단의 중심교회로 맹활약하고 있는 강남중앙침례교회의 시작이다. 지금과는 달리 허허벌판이던 당시의 강남땅에서 김충기 목사는 자신의 주무기인 칠판설교를 통해 성경의 주요 내용들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면서 말씀 중심의 목회를 실시했다.


김충기 목사가 칠판에 한줄 한줄 메시지가 담긴 그림을 그리면 성도들의 기대감은 성전에 가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칠판에 한가득 그려진 그림을 보면 잘 짜여진 한 폭의 예술을 보는듯했다. 이렇게 성경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칠판설교와 김충기 목사의 성령충만 가득한 영성은 어김없이 부흥의 역사를 이뤄냈다.


마침내 개척 2년 9개월 만에 1120평의 대공사를 마치고 강남중앙침례교회의 성전 입당 예배를 드린. 김충기 목사는 교회개척과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부르짖고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국교회를 대표할만한 기도원을 세우길 소망했다.


개척 다음해인 1977년 기도원으로 적합한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1982년 8월 28일 양수리 수양관을 짓는다. 양수리수양관이 문을 열자 전국의 목회자와 사모, 평신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고자 구름 때처럼 모여들어 성령으로 불타올랐다.




◇ 김충기 목사가 산자에 남긴 선물 “화해와 화합”
지난 12월 28일 강남중앙침례교회 본당 은혜채플에서 드려진 천국환송예배는 김충기 목사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총회장으로 진행된 이날 예배는 강남중앙침례교회 성도들은 물론이고 교단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주님 품으로 떠난 김충기 목사를 추억했다. 축도를 맡은 지덕 목사(증경총회장)는 떨리는 목소리로 “형님 잘가시오”라고 거듭 외쳤고, 운구 행렬 맨 앞에 자리한 김충기 목사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목놓아 우는 성도들의 모습에 예배당 안은 온통 눈물바다로 휩싸였다.


이날 추도사는 2대 목사인 피영민 목사가, 설교를 맡은 최병락 3대 담임목사는 “김충기 목사님은 우리 눈앞에서 더 이상 뵐 수가 없지만 영으로 교제하고 목사님에 뿌려 놓으신 이 많은 흔적들은 아직도 살아서 우리를 향해 외치고 있다”며 “여기에 앉으신 모든 성도님 한 분 한 분이 바로 또 다른 김충기 목사님 제2 제3의 김충기 목사님이 돼서 그런 삶을 여러분의 삶으로 살아 낸다면 목사님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라며 성도들을 위로했다.


유가족 인사를 위해 대표로 단상에 오른 김성국 목사는 “아버님께서 세우시고 열정을 쏟아낸 이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지고 있는 모습에 얼마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르겠다”며 “이제 아버님이 천국에 입성하시는데 난 슬프지 않다. 다만 섭섭할 뿐이다. 더 이상 아버지 얼굴 뵐 수 없고 목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저 하늘나라에 소망이 있기 때문”이라며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어루만졌다.


김 목사는 또한 “아버님도 사람이다보니 혹시나 원로목사님으로 인해 마음이 아프셨거나 상처가 있으신 분들은 이번을 통해 이해해 주시고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이 장례식을 통해 서로 하나 되고 사랑하게 되길 바란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글·사진=이송우 부장·범영수 차장

Today's 오피니언

더보기


배너
배너

총회·기관

더보기
위기를 지혜로 극복하는 부활절 이 기쁨과 승리의 감격을 아직도 사망의 두려움에 매여 질병과 싸우고 있는 전 세계를 향해 함께 외칩시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승리를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겼음을 선포한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은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죽음이 우리를 이기지 못함을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라도 승리를 노래할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할 이유는 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생명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풍성한 생명이 우리 교단에 속한 모든 교회와 성도들 가운데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침례교 가족 여러분! 지난 몇 개월 동안 이 땅에 창궐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모두는 인간의 무기력함과 육체의 생명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력한 것인지를 경험했습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지만, 병을 치료하는 의료진도, 방역을 책임진 정부도 이 땅 그 어느 곳에도 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