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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 포인트(역대상 29:26~30)

라이즈 업 뱁티스트 - 고명진 목사(수원중앙)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 분들이 섬기는 교회와 가정, 모든 삶, 특별히 지역사회에 모든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한 걸음 나아가 역사의 거룩한 흔적을 남기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행동과 일거수 일투족의 삶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거룩한 도전이 되고 닮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에서 여러분들을 자랑하기보다 동네 사람들이 여러분과 사는 것에 자랑스러워하며 긍지와 자부심이 생길 수 있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간철히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삶의 초점이 어떤 순간에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고 이미 구원받은 영혼이 주님을 닮아가는 일에 성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인격과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큰 영광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삶,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회상하게 될 때참 멋진 하나님의 삶으로 살았다고 회상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알파라고 말한다면 사람의 죽음은 오메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사람이 태어남은 순서가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그리고 손자 순서로 대를 이룹니다. 하지만 떠날 때는 꼭 순서대로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땅에 살면서 떠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모든 사람들은 이 땅이 와서 살지만 결국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공수레 공수거의 인생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길고 짧은 것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고난의 차이, 향락의 차이, 경제적인 수준의 차이, 학력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세상은 수많은 차이들이 존재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길을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석양의 그림자처럼 쉬 지나가는 인생,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루 밤이 경점같이 지나가는 것이 물거품같은 것이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내니라”(약4:14) 지붕 위에 올라가는 연기같은 것이 인생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활시위를 떠나는 화살처럼쉬 빨리 지나가는 것,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다고 그래서 별안간 한 번 숨 쉬는 사이에 지나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의 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내 앞에 두는 것을 ‘명패’라고 말한다면, 죽음 뒤에 내 삶에 대해 적어 놓은 것을 ‘비문’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이 끝난 뒤에 어떤 비문을 남기기를 원하십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살아 있을 때, 내 명패를 어떻게 둘 것인가? 어떤 명패를 세울 것인가에 대해 심히 고민하고 많은 에너지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합니다. 그런데 세운 명패대로 살지 못하고 떠난 뒤, 후대의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국민을 대표해서 한 나라의 국가 원수에 자리에 올랐어도 후대의 사람들은 그의 잘잘못을 여지없이 평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지금 내가 삶을 다 마치고 난 이후 내 삶을 어떻게 평가하실까 궁금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은 후에 이런 비문 앞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뭘 보시오!” 그리고 비문 뒤에는 세 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도 한 때는 거기에 있었소. 언젠가 당신도 여기 올꺼요. 죽을 준비나 하시오, 뭘 보시오.”

 

국립 현충원에 무명용사의 무덤에는 이런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 무한한 가능성을 묻노라” 무명용사는 전쟁에서 죽지만 않았다면 30년 40년의 삶을 살면서 나라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조국과 국민을 위해 산화하여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무명 용사의 새겨진 비문의 글은 우리의 마음에 큰 울림으로 나타납니다.

 

1848년 피지의 한 섬에서 선교 사명을 감당했던 닥터 존 게일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도 찾지 않았던 오지의 섬에서 24년 동안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를 기념해서 세운 교회에는 그를 위한 비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이 땅에 도착했을 때는 이곳에 한 명의 그리스도인도 없었다. 그리고 그가 이 곳을 떠났을 때는 이곳에 이방인은 한 명도 없었다.”

24년 동안 그의 전생애를 통해 세계적으로 가장 악명높은 식인종이 살던 섬 전체 주민을 복음화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행복한 인생, 어떤 인생입니까?

이 땅에 살아 있을 때, 호화로이 풍족함을 누리며 진수성찬에 고량진미를 먹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것에 목숨을 걸고 생명을 걸고 있습니다. 진정 행복한 인생은 이런 인생이 아닙니다.

 

성경은 너로 말미암아 천하보다 귀하며 영혼이 얼마나 더 구원받았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어떻게 평가해 주시는가에 훨씬 더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상적 가치관과 똑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젠가는 결산의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 결산의 날에 우리가 주 앞에 의젓하게 설 수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자신이 거주하던 보스턴을 떠나 워싱턴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보스턴 시민에게 남긴 4가지 비전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역사의 무대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살았는가를 물었기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 님께서 물으시는 물음 앞에 우리가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모 일간지가 창간할 때 이런 광고가 실렸다고 합니다.

“그 어렵던 시절, 아빠는 무엇을 했나요?”

어느 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어떤 인생을 살고 이 앞에 왔느냐?”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출생이 알파라면 죽음은 오메가입니다.

비록 가난하게 아주 어려운 가운데 출생했지만, 힘들고 어려운 인생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 인생의 마지막 오메가 포인트에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삶으로 세상을 떠난다면 그는 멋진 인생입니다.

 

부유하고 넉넉한 환경에서 좋은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었습니다. 좋은 옷을 취했습니다. 호화호식하며 근사하게 살았 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이 없는 인생으로 마무리한다면 결코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침례교단의 소속된 모든 교회의 시니어들이 정말 주님 앞에 멋지고 근사한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제 주님 앞에 가야할 지 모르는 우리들이라면 우리 모두가 다 이러한 물음 앞에 멋지고 근사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오늘 함께 나눈 역대상 29장에 나오는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다윗의 인생 결산서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아버지 이새조차도 그가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치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 그리고 몇 구절이 지나면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이 다윗을 회상하며 설교하는 내용 가운데 다윗은 당시의 하나님의 뜻을 쫓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쫓아 섬기다가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다윗의 비문을 발견한 사람이 없습니다. 실제로 비문이 없을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는데 아무도 발견한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다윗의 비문이 발견된다면 그 비문에는 무엇이라고 써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상상력을 동원해 본다면, 하나님의 뜻을 쫓아 섬기다가 잠든 다윗이라고 쓰여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경영학의 아버지인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인생의 가장 보람있고 의미있게 사는 7가지를 제시했는데 그 첫 번째는 비전을 가져라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인정하라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후대의 사람이 너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주기를 바라는가를 생각하라였습니다. 이렇게 살면 우리의 인생이 결코 낭비하는 인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피터 드러커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을 인식하며 하나님이 늘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도 신앙인이라고 여겨집니다.

 

인생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먹구름이 덮이고 천둥번개가 휘몰아칩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며 어떨 때는 장대비가 쏟아 붓습니다. 위험한 협곡을 지나갈 때가 있고 험한 준령을 넘을 때가 있고 기암괴석이 인생의 길을 막을 수 있습니다. 도저히 걷기 힘들고 어려운 길, 인생 난관의 순간을 수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순간에도 영원을 준비하는 삶의 태도만 잃지 않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시선만 분명하게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 의연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 다. 이미 언급했지만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그 아버지조차 그가 왕이 될 것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기름을 붓겠다고 찾아온 사무엘 앞에 다윗을 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내가 그 막내 아들이 오기 전에는 먹지도 않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 막내 아들이 왔을 때, 비로소 사무엘은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그를 축복했습니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됐습니다. 그리고 40년을 통치하고 7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40년 가운데 오늘 역대상 29장이 그가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등 총 40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0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그의 삶을 다른 말로 바꾼다면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그는 왕으로 살아왔습니다. 지도력을 펼치며 살았습니다. 지도자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도자입니까?

 

수많은 지도력에 대한 정의는 3000여 가지가 넘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리더 십에 대한 정의는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바로 영향력입니다. 지도력은 영향력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다윗만큼 역사에 영향력을 위대하게 끼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족보에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명명합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초의 사람인 아담, 역사상 가장 오래산 므두셀라,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이 땅을 떠난 에녹과 엘리야.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다윗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바로 지도력의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폴 스토츠의 저서인 장애 물을 기회로 전환시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인생을 이야기하며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역경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3가지 반응이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 반응은 도망가는 사람이 있고 두 번째는 죽치고 앉아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는 사람이 있고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이겨 내며 정복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과연 몇 번째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저는 네 번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첫 번째 사람과 두 번째 사람, 세 번째 사람의 손을 모두 잡아같이 난관을 극복하고 위기를 뛰어넘는 사람이 바로 네 번째 사람입니다. 바로 다윗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이 짧은 시간에 다윗의 인생을 다 이야기할 수 없지만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자세히 묵상해 보십시오. 다윗이 왕이 되는 순간, 왕이 된 이후 수많은 아들의 반란과 주변의 침공 가운데에 서도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그는 언제나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사람이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적어도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아름다운 지도력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 니다. 이것이 다윗의 첫번째 인생 결산서입니다.

두 번째 다윗의 인생 결산서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대상29:28)

여러분! 나이 많아 늙도록이라는 표현이 무엇입니까? 쉬운 말로 바꾸면 건강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나이가 많을 수 없습니 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는 장수의 복을 다윗은 누린 것입니다. 당시의 70세는 어마어마한 나이였습니다.

 

조선시대 왕의 평균 나이는 약 30세가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가 그리 오래된 시대가 아닙니다. 다윗의 시대는 무려 30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의 마지막은 불과 150여년 전의 시대였습니다. 오래 사는 것 또한 은혜이며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한 것이 쉽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바로 부하고 존귀한 것입니다. 부하면 존귀하기 어렵습니다. 존귀하면 부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둘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우리 삶에 진정한 본이 되는 삶이라 여겨집니다.

 

오늘 본문 29절입니다.

“다윗 왕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대상29:29) 이 말을 현대 용어로 바꾸면 거룩한 역사의 기록을 남긴 삶은 살았다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30절입니다.

“또 그의 왕 된 일과 그의 권세와 그와 이스라엘과 온 세상 모든 나라의 지난 날의 역사가 다기록되어 있느니라”(대상29:30) 29절의 역사를 거룩한 역사라고 말한다면 30절의 역사는 일반 세계의 역사를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와 함께 바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거룩한 역사가 함께 존재하고 함께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다 기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의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쉽게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조상 가운데 여러분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몇 명이나 있습니까? 혹시 5대조 할아버지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는 분이 이 자리에 있습니까?

 

우리는 별로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못합니다. 내 뿌리조차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다윗의 이야기가 300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다윗은 위대한 왕이고 위대한 성군이라는 사실을 다윗과 전혀 상관없는 대한민국의 우리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거룩한 역사를 남기고 열반 역사도 아름다운 역사를 남겼습니다.

 

다윗이 이러한 아름다운 인생에 오메가 포인트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저와 여러분들의 삶속에서 정말 하나님께서 인정하실만한 인생의 오메가 포인트였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서론이 좋고 아무리 본론이 화려해도 결론이 아름답지 못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면 정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는데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면 만약 지옥에 간다면, 비록 세상에서는 정말 어렵고 힘들게 살았지만,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며 살아왔지만, 어느 날 주님께 인정받는 영광스러운 천국에갈 수 있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70세, 80세가 되어 서도 골프를 친다면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골프는 혼자 못 쳐서 적어도 여러 사람과 쳐야 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돈도 필요합니다. 돈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까지 건강해야 합니다.

 

인생을 성공했다고 표현합니다. 80살, 90살, 100살까지 골프를 치는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그것을 적어도 성공한 인생이 아닙니다.

병상에 시름과 고통하는 중에 떠나더라도 내 옆에 있는 영혼을 구원하고 주님 앞에 인정받을 만한 하늘의 상급을 받고 떠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메가 포인트!

죽음의 순간에 정말 멋지고 가장 근사한 삶으로 후대의 사람들에게 적어도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삶이라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존귀함을 얻습니까?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5:33) 인생의 겸허함이 없이는 결코 존귀함을 얻어 내지 못합니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고 존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선한 삶으로, 겸손한 삶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존귀한 삶, 아름다운 삶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 기준으로 말하는 그런 높은 지위와 명성보다, 부귀와 재물보다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멋진 결산들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기 원합니다.

우리 침례교단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리=이송우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