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너도나도 없이 우울하고 화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동안 선택적이었던 비대면 예배는 필수가 됐고, 신자들끼리 자유롭게 소통하던 때가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할 지경이 돼 버렸다.
교회도 사회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유례없는 뉴노멀시대를 맞이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코로나 블루’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러한 신조어는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과 장기화에 따라 사회적 활동이 위축되고 감염의 우려가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에서 오는 우울증으로 ‘코로나 트라우마’라고도 한다.
코로나 블루의 대표적인 증상은 두통·소화불량·어지러움·두근거림·불면증 등이며, 불안하고 쉽게 놀라는 증상이 나타난다. 화가 자주 나고 짜증이 많아지며, 원하지 않는 기억들이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감퇴 되며, 정신이 멍하고 혼란스럽고, 눈물이 나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기운이 없고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코로나 블루시대는 목회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항상 사람을 대하는 직업인 목회자가 어느 순간부터 유튜브와 같은 SNS를 통하지 않고는 사역을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심방은 물론이고 소그룹모임조차 불가능하다.
인간은 사회적 유기체이다. 우리는 긴밀하게 결합된 여러 집단에 의지해 제 기능을 한다. 이러한 집단은 어머니와 아기의 원초적이고 화학적 유대부터 시작해 더 큰 단위의 가족을 지나 오늘날 대규모 민족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아주 최근까지도 세계에 혼자 남겨진 인간은 더없이 취약한 존재였고 문자 그대로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 남들과 연결된 상태는 우리의 자연적 상태이며 사실 우리가 욕망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자연적인 상태가 배제된 상황은 인간에게 굉장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 그나마 기술의 발전으로 대면 소통을 대체할 방안들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대응책일 뿐 소통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 조명하고 있는 목회자의 우울증은 코로나19로 인한 단절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원래는 과도한 업무와 개인사 등 그 원인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하재성 교수(고신대)의 “목회자의 우울증과 탈진: ‘거룩한’ 자기 착취의 성과”란 논문에 따르면 교회의 수적 성장을 위해 근무시간의 불분명, 사회적 페르소나의 과도한 남용 등의 자발적인 착취를 목회자 우울증과 탈진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또한 교인의 기대에 대해 ‘아니오’ 혹은 어떤 거절을 하지 못함으로써 증상은 더욱 악화된다고 주장했다. 하 교수는 “목회자의 우울과 탈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과잉의 활동을 멈추고 안식을 찾고 누려야 한다. 신뢰할 만한 사람들과의 담화를 회복하고, 전문적인 상담을 회피하지 않음으로써 성과사회의 폭력성으로부터 자신과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병은 시간이 지난다고 결코 스스로 치유되지 않는다. 즉 전문가의 적극적인 치료와 내 안에 사랑이 회복할 때 회복이 가능하다.
우울증에 빠진 목사가 스스로 나을 때까지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낫다고 하는 인식은 결코 해결 방안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총회가 앞장서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영육간 심각한 상태에 처해있는 목회자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