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드라마나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은 마음에 큰 위로를 받는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극복한 주인공들이 마침내 큰 행복으로 보상받는 것을 마치 시청자들이나 관객들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행복으로 투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은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잠자는 백설공주를 깨워 결혼한 왕자가 왕이 되어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게 됐다면, 백설공주에 관한한 해피엔딩이 아닐 수 있다. 알렉산더대왕이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날 때에는 해피엔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30대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는 알렉산더의 죽음과 그의 죽음 이후 제국이 세 조각으로 찢어지는 역사적 비극까지 영화가 계속된다면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 당나라 측천무후가 자신의 아들과 딸을 포함한 약 90명에 달하는 왕족들을 죽이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해피엔딩을 이뤘지만, 무려 3,000명에 달하는 남창들과 놀아나다가 측근들의 돌아섬으로 인하여 15년 만에 본의 아니게 황제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던 역사는 본인에게 있어서는 해피엔딩이 아닐 것이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것을 경량화하고, 사거리를 확대하고, 추적이 어려운 이
성경에는 사람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예수님 이전의 구원의 문제, 인간의 불순종을 미리 아신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설치한 이유, 네피림의 정체, 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 사탄의 배반의 죄의 출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 및 사울왕의 구원의 여부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때때로 지명도 높은 신학자들의 견해를 빌려서 나름대로 해석을 하곤 하지만, 그 신학자들 역시 유한한 인간의 한 사람에 불과하므로 그들의 주장이 곧 바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역사상 가장 머리가 비상한 위대한 신학자로 평가받는 ‘어거스틴(Augustinus)’ 조차도 성경에는 사람의 머리로 풀 수 없는 난제들이 많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난제들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겸손케 하시려고 성경에 신비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므로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을 자의적으로 해석해놓고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단정 짓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것이다. 히브리서 6장에 이미 받은 구원도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듯한 구절이 있어서, 신학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최고의 전략가 아히도벨의 전략을 물리치고, 위장 잠입한 후새의 거짓전략을 수용함으로써 압살롬과 그의 추종자들은 쿠데타에 실패하였다. 반란에 실패한 압살롬은 반란괴수로서의 책임을 죽음으로써 마감해야하는 극단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제 아무리 악한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아들인지라, 자식에 대한 인정을 과감하게 끊지 못한 다윗은, 요압을 비롯한 자신의 부하들에게 반란은 진압하되 압살롬을 죽이지는 말라고 명령했다.그런데 군사령관 요압의 생각은 다윗의 그것과 달랐다. 다윗왕의 말년을 불행하게 만들고 다윗왕국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 모든 사건들의 진원지가 압살롬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를 살려두면 안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압살롬이 패전하여 도주하다가 풍성한 머리카락으로 인하여 나뭇가지에 걸려 대롱거릴 때 요압은 창으로 그의 심장을 찔러 죽였다. 아들의 죽음이 알려지자 다윗은“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는 비가로 울부짖으며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그의 울부짖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적당한 선에서 그쳐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의 울부짖음은 요압이 왕궁에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요
민주주의의 핵심요소 중의 하나인‘다수결주의’의 단점을 논할 때 으레 등장하는 단어가 중우정치(ochlocracy, Mobocracy)라는 단어다.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라고 개념 지을 수 있다. 플라톤은 다수의 난폭한 민중들이 이끄는 정치라는 뜻으로‘폭민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적으로 부족한 다수의 빈민들이 이끄는 정치라는 뜻으로 ‘빈민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플라톤은‘배의 비유’에서 선주, 선원, 키의 조종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선주’를 민주정체의 주인인 민중 ‘선원’은 민중 선동가인 현실정치인 ,‘키의 조종’은 나라의 경영을 의미한다.민중을 상징하는 ‘선주’를 “덩치나 힘에서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지만, 약간 귀가 멀고 눈도 어두운 근시안이라, 항해와 관련한 다른 것들에 대해 아는 수준도 평범하다”라고 평가한다. 반면에 민중선동가를 포함한 현실정치인을 상징하는 ‘선원’은 “점잖은 선주를 최면제나 술 또는 그 밖의 다른 것으로 세뇌함으로써 판단이성을 마비시킨 다음, 배 안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서 실질적으로 배를 지휘하는”존재들이라고 비판한다.그런데 항해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들은 선원이
며칠 전 TV를 보다가 정말 봐서는 안 되는 장면을 보았다. 전라도 전주에서 새벽 5시쯤 산책을 가던 70세 노인을 20세 청년이 무차별 폭행하는 장면이다. 서로 길을 가다가 어깨가 조금 부딪쳤는데, 청년이 기분 나쁘다고 술김에 3분 이상이나 방어능력이 없는 어르신을 폭행한 것이다. 그 청년은 정말 비겁하다. 자신보다 확실하게 약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약자 앞에서 갑질하고, 조금 강한 사람 앞에서는 비굴해지는 사회는 저주 받은 사회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병든 영혼에서 비롯된다. 육신은 마음의 지배를 받고 마음은 영의 지배를 받는다. 성령을 거부하고 악령에 사로잡혀 살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는 패륜으로 치닫는다. 창궐하는 동성애의 패륜도, 별 거리낌도 없이 벌어지는 불륜도, 싸이코패쓰적인 묻지마 살인도, 부자관계를 망각한 경영권다툼도, 악랄하게 조교를 괴롭히는 어느 교수의 행패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빚어지고 있다. 기독교를 비방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모든 악한 행동들 역시 그 근원이 악한 마귀의 영에 있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성령으로 다시 회복되어야, 이 사회가 다시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으리라.
노래와 음악으로 풀어보는 성경이야기(291)전적으로 의뢰의 노래찬송가 중에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하는 노래가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찬송가의 선율은 인도의 민요에서 차용된 것이고, 가사를 쓴 작사자는 ‘썬다씽(Sundar Singh, 1889~1929)’이라고 한다. 썬다씽은 힌두교의 귀족계급에서 태어났지만, 그 당시 그 근처에 다닐 공립학교가 없어서 영국 사람들이 세운 사립 미션스쿨에 입학했다. 그는 성경공부시간마다 성경을 찢어버리는 등의 반항의 세월을 보내다가 14세 때 모친이 별세한 이후부터 급격히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도마에게 보이셨던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16세 때부터 이슬람국가인 아프가니스탄, 티벳 등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20세 때 사도요한 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정식 신학공부를 마친 이후, 실종된 40세가 될 때까지 티벳선교에 자신의 황금기를 아낌없이 바쳤다. 추운 겨울날 눈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힘들게 업고 가다가, 자신만 살겠다고 먼저 가버렸던 동행인이 오히려 먼저 눈 속에 얼어 죽어 있음을 발견했다는 일화는 대단히 유명하다. 젊
하나님을 빙자한 사기꾼의 노래몇 년 전 어떤 교회에 모 호텔 지배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찾아왔다. 깔끔한 양복차람에 키도 훤칠한 잘 생긴 남성이었다. 자기도 모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라고 했다. 용모단정하고 성실한 여자 청년을 소개해 주시면 취업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취업하기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명함까지 내밀며 정중하게 부탁하는 그 젊은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교회 담임목사는 당장 마음에 떠오르는 여자 청년을 소개했다. 그리고 곧 바로 그 청년의 집으로 연락을 취했다.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잠시 출타중인데 곧 돌아온다는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휴대폰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일단 부사역자를 청년의 집으로 보냈다. 그 동안 목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에 가서 그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 지배인은 없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소름이 돋은 그는 즉시 자칭 호텔 지배인에게 와서 따졌다. 낌새를 눈치 챈 그는 손쓸 틈도 없이 큰 걸음으로 도망 가버렸다. 유괴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그 사건을 접한 모든 교인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2014.3.21. 헌금하면 천국에 보내주겠다고 사기를 친 이모 여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불륜사건을 감추기 위하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까지 살인한 일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어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하셨다. 나단은 다윗이 저지른 범죄를 간접적으로 지적하기 위해서 예화를 활용한다. 많은 양과 소를 소유한 부자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가축을 잡는데, 자신의 양을 잡지 않고 겨우 한 마리의 양을 애지중지하는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 접대에 사용했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아내와 첩들을 거느린 다윗이 남의 아내를 빼앗았음을 고발한 예화이다. 몇 년 후 다윗은 또 하나의 예화와 접하게 된다. 드고아에서 온 여인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이다. 자신에게 아들 둘이 있었는데, 형제간에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다투다가 어느 날 형이 동생을 폭행치사 했고, 마을 사람들은 살인죄를 저지른 형마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상황이라 왕께 도움을 청하러 왔다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일어난 실화로 시작되었지만, 다윗이 여인의 큰 아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자신이 했던 이야기가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암논을 쳐 죽이고 외국으로 도망간 다윗왕의 아들 압살롬에 관한
오는 7월 16일, 서울광장이 음란과 죄악의 장소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한국교회 내에서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리는 동성애축제(퀴어축제)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시민위)는 지난 6월 15일 회의를 통해,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신청한 서울광장 사용 신청 안건을 수정, 가결했다. 시민위는 애초 조직위가 신청한 행사 기간(7월 12∼17일)을 7월 16일 토요일 하루로 줄이고, 신체 과다노출과 청소년보호법상 금지된 유해 음란물 판매·전시를 안 하는 조건으로 광장 사용 신청을 받아들였다. 시민위는 무대 설치 등 행사 준비 시간을 주기 위해 행사 전날인 7월 15일 오후부터 조직위가 광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동성애축제가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것은 2015년부터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오프라인 집회가 금지된 기간을 제외하고 불허된 적이 없이 매번 시민위를 통해 사용신청이 통과됐다. 지난 2019년 당시 서울시의 다수의 공무원들이 서울광장 동성애 축제를 반대하며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서 ‘서울광장은 시민의 건전한
말씀과 기도의 축제인 ‘라이즈 업 뱁티스트’ 침례교 연합기도회는 지난 6월 3일 세종꿈의교회(안희묵 목사) 집회를 끝으로 12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100만 뱁티스트 전도운동과 함께한 이번 연합기도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교회와 성도들이 대면과 비대면으로 동시에 적극적인 참여로 말씀을 회복하고 기도로 은혜받은 집회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같은 연합기도회가 열릴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코로나19로 인해 제한적인 교회 사역 가운데 나온 돌파구였다. 교회의 모임이 제한을 받고 대면 모임이 사실상 통제되면서 대규모 집회를 치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온 대안이었다. 그리고 이 대안은 지난해 12일 동안의 연속된 집회를 통해 침례교회가 ‘기도하는 교단’ ‘말씀으로 충만한 교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대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특별히 2022년 ‘라이즈 업 뱁티스트’는 주요 지역의 거점교회를 선정하고 인근 지역에 속해 있는 침례교회가 함께 연합으로 참여하는 자리로 마련하자는 취지로 10개 교회에서 집회가 열렸다. 교단 안팎에서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이 말씀 증거자로 나서 침례교회와 한국교회를 위해 회개를 촉구하고 영혼 구령을 위해 교회 회복을 위해 한
2년 남짓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교회는 심각한 목회 사역의 타격을 입었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제되고 일상의 회복이 이뤄지면서 외관상으로는 정상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교회의 완전한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와 기아대책 등이 지앤컴리서치(대표 지용근)에 의뢰해 조사한 목회자와 교인들의 현장 예배 참석에 대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3명만이 현장 예배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지앤컴리서치는 또 목회자 981명과 교인 1500명에게 설문한 결과 28.3%만이 ‘곧바로 현장 예배에 참석했다’고 답했으며 57.8%는 ‘일정 기간 지켜본 후 현장 예배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지난 5월 첫째주부터 교회는 마스크 미착용자나 발열증상이 있는 자를 제외하고 모든 인원에 한해 예배당을 개방하고 교회 자체적으로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가운데 교회 사역을 정상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도 안되는 인원만이 현장 예배에 참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온라인 예배에 길들어진 성도들의 주일 예배에 대한 인식이 현장 대면 예배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면 예배 참석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그만큼 역사란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뛰어넘어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침례교의 역사는 영국의 비국교도운동 및 재침례파에 기원을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개혁 시기였던 16세기 당시 영국 국교회였던 성공회와 상충됐다. 침례교는 불세출의 설교가라 불리는 찰스 스펄전 목사(Charles Spurgeon)와 같은 설교가들을 배출하면서 점차 영국 전역으로 확장됐고, 그 세력은 장 칼뱅의 예정설을 극단적으로 해석해 선교가 필요 없다는 기존 영국인 선교사들에 반발, 세계침례회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를 세워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 선교사(William Carey)를 통해 전세계로 확산됐다. 한국 침례교의 기원은 1889년 12월 펜윅 선교사에 의해 함경남도 원산에 설립된 ‘대한기독교회’(1921년 ‘동아기독교회’로 교단명 변경)로 펜윅은 한국인의 특색에 맞춘 선교에 집중했으며, 도시보다 산간 및 해안가 선교에 집중
5월은 가정의 달인 만큼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다양한 행사와 집회들이 열린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5월 첫째 주일은 각 교회마다 예배의 열기가 뜨거웠다. 수많은 성도들이 주일 영상예배가 아닌 현장예배로 함께 했으며 특별히 어린이주일로 지키며 다음세대를 위한 섬김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와 함께 둘째 주는 목회자 주일로 준비하며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는 목회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침례교회에서 있어 5월은 가슴 아픈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달이다. 바로 일제 총독부에 의해 교단이 강제로 해체되고 재산을 몰수당한 일이다. 우리교단은 1889년 12월 8일 한반도 땅을 밟은 캐나다 선교사 말콤 펜윅의 선교로 시작됐다. 지금의 북한 원산에 본부를 두고 한반도 전역은 물론 해외선교에 주력하며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생명을 걸고 자비량으로 복음 전파 사역에 매진했다. 그러다가 1944년 5월 10일 일왕에 의해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교단이 해체되고 교회가 폐쇄를 당하며 수많은 지도자들이 투옥되는 좌절을 겪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말씀과 복음으로 세워진 침례교회의 정체성이자 성경적 신앙을 표방했던 선진들의 신앙고백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