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솔로몬 왕의 꿈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했다. 열왕기상 3장 9절에 보면 그때 솔로몬은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하고 구했다. 그의 이런 간구함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고 지혜와 총명뿐만이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주겠다고 하셨다.
솔로몬의 간구가 왜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을까?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다. 성경은 여러 면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전해준다. 신명기 32장 4절엔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라고 모세는 노래했다. 시편 33장 5절엔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하시는 것에는, 뜻과 일하심에는, 세계를 판단하고 심판하심에는 반드시 공의가 있다. 이런 하나님은 인간들에게도 공의가 있길 원하시는데 특히 재판관들에게 더욱 그렇다.
레위기 19장 15절엔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모든 재판관들이 올바르게 재판을 하는가? 오늘날 헌법과 민법과 형법 그리고 기타의 온갖 법이 만들어져 있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공의로운 재판과 판결이 있는지 매우 궁금하고 의문스럽다.
한때 검사로 재직하고 나중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 한 김용원 씨가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했다. 그 책의 어느 부분엔 판사들의 권력에 대해서 세분하여 피력했다. ‘모든 재판에서 어느 쪽을 이기게 해줄 것인가, 언제쯤기얼마만큼 이기게 해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 형사 재판에선 피의자를 구속할 것인가 불구속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 판결을 선고할 때 유죄냐 무죄냐를 결정하는 권력, 유죄일 때 실형을 선고할 것인가 집행 유예나 벌금을 선고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 실형을 선고할 때는 얼마만큼 때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 벌금을 선고할 때는 얼마만큼 내라고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 등등 수없이 많은 권력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판사들이 자칫하면 세고 큰 권력을 엿장수 마음대로의 식으로 남용할까봐 심히 우려했다.
이런 걸 볼 때 왜 솔로몬의 간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었지만 백성들을 재판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길 원했고, 주신 지혜로 공정하고 정의롭게 재판하길 원했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음이 분명하다.
어떤 목회자의 설교 중에 수준 높은 기도에 대해 말했다. “수준 높은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요. 또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힘써 기도하는 것입니다.”그가 말 한 수준 높은 기도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더욱 깊게 묵상해야 될 것이다. 여기엔 하나님 이름의 거룩함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길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위해서 힘써 기도함으로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