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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우매자들(기적을 믿는가 서론 중에서)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라고 바울 사도는 질책했다. 사울 왕이나 엘리 제사장의 최후 그리고 가료 유다의 종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려고 힘썼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7)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했다(민12:3). 그러나 그는 므리바 물가에서 반석을 두 번이나 쳐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했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민20:10~12, 시106:33, 신32:51).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서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미20:8)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는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라(민20:10)고 말하면서 반석을 두 번 두드렸다.


우리는 무슨 능력이 있어 기적을 일으키겠는가? 하나님의 권세와 예수님의 이름 그리고 성령의 나타남에 능력이 있거늘 우리가 감히 하나님의 영광의 존전에 그림자를 드리우겠는가? 한때 하나님의 권능의 장중에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은사로 기적을 일으킨 종들이 종말의 실패에 예의주시하고 자신을 돌아보아 겸손과 사랑의 허리띠를 동여매야겠다. 명령을 받은 것을 다 행하고도 언제나 우리는 무익한 종(눅17:10)으로 자처해야만 한다.


필자는 지난 35년간 수많은 이단사설(異端邪說, heresy and heterodoxy)을 주장하는 빗나갈 추종자들이나 이단자들을 만나고 추적하고 연구한 결과, 그들이 매우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봤다. 빗나간 우매자들이고 이단자들은 한결같이 부의 축적, 곧 엄청난 물질의 유혹에 빠지는 탐욕, 교만과 오만과 독선, 범죄와 정욕에 빠지고 변질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마귀의 시험을 물리쳐 책망하고 이기셨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8)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메시아이고, 구세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언제나 자신을 인자(人子, Son of Man)라고 하며 낮추셨다.


윌리엄 브래함 목사는 왜 자신을 두 증인 중에 하나라고 하는 사설교리를 전개하며 극단적인 논쟁에 빠졌을까? 대부분의 이단자들은 정상적인 신학교육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받아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신비주의에서 사이비로, 나아가 이단자로 넘어가곤 한다.


신학생 시절에 나는 왜 이단자들이 생기는지 궁금해 여러 집단에 들어가 관찰한 바 있었다. 한 번은 계룡산의 오만한 이단자들을 만나 격론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한 주간이나 그의 회생을 믿고 장례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들이 강제로 장례식을 집행했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교회에서도 감람나무, 두 증인, 자칭 예수를 주장하며 등장한 이단자들이 출현하고 이슬처럼 사라졌다.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 살펴보자,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키며 나도 사람이라고 했다(행10:25~26).


그는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에게 ‘나 베드로의 이름으로 일어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높이고 그의 부활을 증거했기에 죽은 여성도 일으켰고, 심지어 베드로의 그림자가 덮여도 병자가 낫고 더러운 귀신도 떠나간 것이다(행5:15~16).

그러나 어찌 예수님을 제쳐놓고 무릎 꿇는 경배의 절을 낚아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일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행19:11~12)고 했는데, 바울이 1차 전도여행시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쳤을 때 사람들은 바나바를 쓰스(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은 헤메(헤르메스:제우스 주신의 대변자)라 하고, 쓰스 신당 제사장이 소와 화환을 가지고 와서 제사코자 했다.


그때 바울은 옷을 찢고 우리도 너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행14:15)이라고 하며 극구 말려 제사하지 못하게 했다. 인간이 뭔데 감히 오만스럽게 경배를 받을 수 있겠는가?
쿨만 여사는 병자들을 향해 “그 자리에서 일어서라”고 했다.


브리엘 국장은 바로 자기에게 향한 쿨만 여사의 지적임을 알아차리고 치유받기 위해 일어섰다. 그때까지 그는 의심하며 일어섰으나 그의 몸에 고압 전류 같은 일격의 흐름으로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됨을 느끼면서 놀랍게도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2명의 암 전문의가 그를 검진한 결과, 암의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휴스턴의 앤더슨 병원 암 연구소의 로웰 밀러 박사는 “명백히 말기 암을 앓았던 어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고 진술했다.
브리엘 국장은 그 후부터 살아계신 하나님께 그의 치유에 대해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신앙 간증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치유 기적으로 엘프리에다 스타우페를 자매의 만성 류마티스 관절염 치유 사건이 있다. 그녀는 관절염으로 인해 옷 입는 것이나 화장실 가는 것조차도 남의 도움 없이는 안될 정도였다. 해마다 증세는 더욱 더 악화되어 갔다.


1974년 로스앤젤레스의 슈라인 오디토리움 집회에 그녀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있는 사람은 통로 쪽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녀는 고통이 심해 움직일 수 없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뗐다. 그 순간 믿기지 않게 놀랍게도 그녀의 고통이 어깨로부터 허리, 무릎, 발목까지 온 전신에서 떠나갔다.


성녀로 불리울 만큼 쿨만 여사의 기적 역사는 놀라웠다. 하지만 그녀의 윤리적, 경제적 문제로 인해 결국 상처와 서글픈 여운을 남기고 주님 곁으로 갔다는 점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녀의 윤리적 문제는 이혼과 재혼 사이에 있었던 추문과 두 스텝의 배반 등이다.


경제적인 한 예를 들면,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헌금을 교회나 자선단체에 하나도 남겨 놓지 않고, 200만 달러가 넘는 부동산을 틴크 월커스 부부에게 물려줬다는 것 등이다.
종종 다윗이 실패를 들어 친한 사람의 편을 들고 옹호하거나 자신의 실수와 방종을 은폐하려는 것을 본다. 모든 사람은 다 약하기에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이지만, 회개치 않고 밀어붙이다가는 종국적으로 낭떠러지로 미끄러지게 된다.


길선주 목사는 시력이 좋지 않은 것을 감사했는데, 그 이유는 부흥회 중 여색을 살피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이성봉 목사는 늘 한 손을 주먹으로 꼭 쥐고 다녔는데, 그것은 언제나 예수님의 손을 잡고 다님을 명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래서 두 목사님은 끝까지 범죄하지 않고 영적, 윤리적 승리자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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