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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침례교회와 성공회

침례교 역사-7

김용국 교수
침신대 신학과 (교회사)

침례교회는 영국 분리파 청교도들이 세운 교회이다. 영국침례교회는 그리스도가 전 인류의 죄를 위해 속죄했다고 믿는 일반침례교회와 택함 받은 사람만을 위해 속죄했다고 믿는 특수침례교회의 두 교회로 시작됐다.


일반침례교회는 1609년에, 특수침례교회는 1633년에 시작됐다. 일반침례교회의 창시자 존 스마이스(John Smyth, 1570~1612)는 성공회 목사였는데, 그는 성공회-청교도-분리파 청교도-침례교로 변화를 거치면서 침례교회를 창시하게 됐다.


이번에는 침례교회 출현의 먼 배경이 되는 성공회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성공회(영국국교회)는 영국 왕 헨리 8세(1509-1547)가 부인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로 가톨릭교회를 탈퇴해 개신교회가 된 교회이다. 가톨릭교회에서 결혼은 7성례 중 하나였으므로 결혼과 관련된 문제는 세속법원이 아닌 교회법원이 관장했으며, 국왕의 결혼은 교황청 법원이 직접 다뤘다. 캐서린은 원래 헨리의 형 아더 왕자의 부인이었다.


아더는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죽었고, 헨리는 정치적 이유로 형수와 결혼하게 됐다. 형수와의 결혼은 근친혼에 해당되어 교회법에 금지된 것이었으나, 영국과 스페인 왕가의 압력으로 승인됐다. 결혼은 그러나 불행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들은 일찍 죽고 오직 딸 메리만 살아남았다.


헨리는 왕위계승을 우려해 이혼을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찰스 5세는 이모 캐서린을 보호했고, 교황은 결국 이혼을 승인하지 못했다. 그러자 헨리는 가톨릭을 탈퇴하고 성공회를 설립했다.


헨리는 성공회 법원을 통해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볼린과 결혼하여 딸 엘리자베스를 낳았다. 헨리는 볼린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자 간음했다는 죄목으로 처형하고, 제인 세이모어라는 여인과 결혼해 에드워드라는 아들을 낳았다. 헨리의 성공회는 신학적 이유로 세워진 교회가 아니었기에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행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1547년 1월 헨리 8세가 죽고 그의 아들 에드워드 6세(1547-1553)가 왕위를 계승했다. 에드워드는 6년간 통치하는 동안 성공회를 급속하게 개신교적인 교회가 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의 누나이며 헨리 8세의 장녀인 메리가 1553년에 여왕으로 등극했다.


스페인 공주 캐서린의 딸인 메리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열렬한 가톨릭 신자로 성장했다. 그는 불타는 심정으로 성공회를 다시 가톨릭교회로 바꾸려했다. 메리 여왕(1553-1558)은 자신의 정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사형에 처하였다. 많은 개신교인들은 스위스 제네바를 비롯한 유럽대륙의 개신교 지역으로 피신했다. 메리는 5년간의 짧은 통치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계승했다.


앤 볼린의 딸 엘리자베스 1세(1558-1603)는 영국국교회를 다시 개신교회로 복원시킬 것을 천명했으며, 대륙으로 피난 간 성공회 지도자들은 영국으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특히 제네바로 피난 갔던 사람들은 그곳의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영향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성공회에 남아있는 가톨릭 잔재를 없애고, 성서적 교회로 정화하려 하였기 때문에 청교도(Puritans)라 불리었다.


청교도의 다수는 장로교주의를 선호했으나, 일부는 개교회의 자치를 인정하는 회중주의를 원했다.
엘리자베스는 급진적인 변화를 원치 않았다. 그는 성공회를 청교도의 요구를 약간 반영하는 수준의 절충적이고 중도적인 교회로 만들었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 청교도들은 엘리자베스의 정책에 순응해 성공회에 남아 있었으나, 소수는 성공회를 떠나 독자적인 교회를 세웠는데, 그들은 분리파 청교도라 불렸다. 침례교 창시자 존 스마이스는 이 분리파 청교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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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극복 “교회가 희망이다” 침례교 총회(총회장 윤재철 목사)는 지난 6월 18일 지구촌교회(최성은 목사) 분당채플에서 코로나19극복을 위한 목회자 세미나를 진행했다. “코로나19 이후 목회적 대응과 실제적 대안”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는 현장 참여 세미나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가 수도권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음에 따라 지역사회의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총회와 지구촌교회 측의 협의로 온라인 강의 대체했으며 이날 세미나는 전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실시간 온라인 강의로 제공했다. 윤재철 총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19가 지나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장기화로 인해 사역의 현장 가운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 총회가 함께 하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면서 “이번 세미나가 하나의 계기가 되고 우리 목회 환경에 작은 대안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최성은 목사(지구촌)가 “포스트 코로나 3,8 전략”이란 주제로 첫 강의를 시작했으며 유관재 목사(성광)가 “목회적 전망과 대응”, 최병락 목사(강남중앙)가 “새로운 목회 영성”이란 주제로 강의했다. 이어 지구촌교회의 주요 부서별 코로나 이후 적용 가능한 목회전략들을 발표했으며 김중식 목사(포항중앙)가 “변화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