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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자기 고백

하늘붓 가는대로 -142

권혁봉 목사
한우리교회 원로

세상에 자기를 본받으라고 자신 있게 큰소리 칠 사람은 그리 흔치 못할 것이다. 여간 자기 자신의 정체(正体)에 자신감이 서지 않고서는 도저히 토할 수 없는 발언일 것이다. “나를 본받으라”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빌3:17)


복음, 곧 그리스도를 모신 바울이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다가 멸망할 사람들을 생각하니 하늘로부터 오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하늘 시민권을 소유한 자로서 바울이 도저히 유구무언할 수 없어서 토설한 것이 “나를 본받으라”였다. 여기엔 복음 지닌 자기 본(本)을 말한 것이지 육의 복음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더 나아가서 빌립보 교인에게 명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니라”(빌4:9) 이런 바울을 바라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즉각적인 나의 인상(impression 혹은 image)이 “바울에 유사하거나 인접하거나 더 나아가서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슨 망령(?)된 생각인가. 혹 80이 넘은 노령에 치매는 아닌가. 나를 꼬집어 자문하니 자답이 나왔다. “그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복음에 쌓여있는 자아 발견이었다.


복음의 옷 속에 감춰져 있는 자아였다. 그 자아(自我)는 복음의 캡슐에 들어 있는 양약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나 예수는 모든 것이 됐다(I am nothing but Jesus is everything).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니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복음 때문에 내가 나 됐다. 복음의 옷을 입었기에 사람 앞에 큰소리치는 것이었다. 화한 속에 들어 있는 나무 조각으로 구성된 어설픈 구조물이 큰소리치는 것은 겉에 아름답게 장식된 꽃들 때문이다.

나는 구조물이고 그리스도 복음은 외부의 화환이었다. 나는 복음 화환이었다. 이제 나도 나 주위의 사람들에게 큰소리 칠 수 있었다.


“여기 내가 있소(I am here now). 나를 미워하는 자는 율법주의자요(The man who hates me is the one of the law). 나를 멀리하는 이는 복음 재미를 못 느끼는 반복음주의자요(The man who is not near me is the one who has not sweet taste of the gospel). 나를 아예 모르는 이는 불행한 사람이요(The man who does not know me is an unlucky man). 나를 사랑하는 이는 복음 사랑하는 이요(The man who loves me is the one who loves the gospel).”


내가 왜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나에게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나는 답한다. 그것은 내 속엔 그리스도요 내 밖에는 복음 옷을 입은 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날을 혹 오만하게 보지 말라. 하긴 그것도 자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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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