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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인생의 탈출 현장

하늘붓 가는대로 -144

권혁봉 목사
한우리교회 원로

인생은 어머니의 모태에서 존재하기 시작했으나 그 인생의 시발은 모태로부터의 탈출이다.
10개월이 아닌 장장 3년을 어머니 모태에만 남아서 살겠다 하면서 거기서부터 탈출하려 하지 않은 고집쟁이 인생이라면 어떨까.


그런 고집쟁이는 아무도 없다. 모태로부터의 탈출이란 의학적으로는 출산이다. 어머니는 출산했고 아이는 출생했다. 탈출은 못 있을 곳이기에 그곳을 피해 도망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지옥으로부터의 탈출은 말이 되지만 천국으로부터의 탈출은 말이 안 된다. 인간의 삶이란 탈출해야만 하는 땅에서 시작된다.


존재는 한 시점의 사건이지만 존재의 양태는 언제나 탈출이다. 탈출은 이동을 말한다.
인간은 식물적 존재가 아니라 동물적 존재이니 그 자리에 박힌 것이 아니라 맨 날 움직이는 존재다.
탈출은 발전을 향한 발 뛰어 놓음이지만 탈선과는 다르다. 탈선은 어느 시점이든 정상에서 벗어남이요, 정상의 부정(不定)이요, 파괴다.


출생한 영아는 태아(胎兒)의 자리에서 탈선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이고 배 속에서 세상 밖으로의 이동이다.
다 자란 청년이 되어서는 부모의 품안에서부터의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인간은 캥거루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은 부모로부터 탈출을 결혼이라고 한다.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마19:5) 사람은 출생으로 탈출하고 결혼으로 또 탈출한다. 탈출하지 않고 그 자리에만 머물려 하는 사람은 고인 물이 부패하듯 썩는다. 영적으로 탈출 이야기로 해본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죄인이었다. 아담과 하와의 죄된 유전자가 그대로 넘겨졌다. 그것을 죄의 전가(轉嫁)라 한다. 출생한 그 자리에 머물고만 있다면 그는 죄인의 자리에 남은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율법과 죄와 사망의 영역에 남은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부터의 탈출이 사죄(赦罪)요 칭의(稱義)요 성화(聖化)이다.


중생은 거듭남이니 한번 난 자리에 그냥 남으면 죽음의 자리이고 그래서 그 자리를 떠나야 하니 그것이 영적 탈출이요 거듭남이니 중생(重生)인 것이다.
중생은 죄와 사망의 세계에서 의와 생명의 세계로의 탈출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구약에서의 대탈출은 출애굽 사건이었다. 그것은 신약에서의 거듭남의 민족적 상징이었다. 출애굽하지 않고 마냥 애굽에 남는다는 것은 고통과 속박의 나날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작은 탈출을 시도한다. 갑갑한 도시생활에서 좀 더 자유롭고 신선한 자연을 향해 전원생활을 원한다.


도시 탈출! 해방감이 있다. 여행! 한국의 여류 여행가 한비야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고 외쳤다. 일로부터 탈출해방이다. 사람들은 평생의 삶을 탈출의 삶의 시도다.
가난으로부터 탈출, 빈곤으로부터 탈출, 질병으로부터 탈출, 인권 압박으로부터 탈출, 폭력으로부터 탈출 등 사람에게는 탈출 주변밖에 없다.


이것은 곧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탈출의 세목(細目)일 뿐이다.
리차드 바크(Richard Bach)의 “갈매기 꿈”에 나오는 조나단 리빙스톤 시갈은 나는 것의 자유와 특권을 모른채 오직 먹는 것만 생각하는 동료 갈매기들로부터 탈출하여 고공으로 날고 있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얼마나 탈출을 원하는가를 말해준다.


그러나 저들의 탈출의 결말은 무엇인가? 별수 없이 제자리에 떨어지는 탈출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보겠지만 결국 세상 안에 잔류하고 말았다. 온전한 탈출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의 큰 탈출이다. 그리스도인만이 참되고 큰 탈출자이다. 그것은 영적 탈출이다. 그 탈출을 지금 시작했고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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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