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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의 하루-34 텃밭 이야기

김원남 목사 / 양광교회

현대인들 중에는 텃밭을 가지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 거기다가 농작물을 심고 가꾸 면서 알뜰하고 재미난 생활을 하길 원한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북이스라엘 왕 아합도 텃밭에 애착심이 많았던 인물이었다.
왕궁 가까이에 있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탐했던 이유는 그 곳을 자기 채소밭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왕상21:1~2).


그는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거나 돈으로 사겠다고 제안했지만 나봇이 거절하자 실의에 빠져 침상에 드러누워 식사까지 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처 이세벨이 불의한 방법으로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강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왕상 21:15~16).


하나님이 기획하신 에덴동산에는 텃밭이 있었을까? 강이 발원되어 동산을 적시고, 각종 실과나무가 있어서 임의로 따먹을 수 있었던 즐거움의 동산에 그런 밭이 필요했을 까? 창세기 2장 15절엔 “여호와 하나님이 그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전해준다.


아마도 대농(大農)은 아니었을 터이고 텃밭을 경작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나 상상해 봤다.
하나님께선 수많은 종류의 짐승과 새와 물고기를 지으셨지만 그것들에게 땅을 경작 하게 했다는 말씀은 없다. 오직 인간만이 에덴동산에서부터 땅을 경작하며 지키도록 탁 월하게 지으셨던 것이다.
텃밭을 경작해보면 여러 면으로 생각과 경험을 할 수 있다.


우선, 자기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돌보심이 어떠한지를 깨닫게 된다. 텃밭은 집에 붙어있거나 가까운 곳에 있기에 주인이 수시로 살펴볼 수 있다.
농작물이 시들어 가면 즉시 물을 줄 수 있고, 병충해가 생기면 빨리 발견하고 예방하 거나 돌봐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한 가나안 땅을 두고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봐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11:12)라고 했다.


텃밭을 가꾸는 이들처럼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들을 가까이 하시며 관심과 돌보심이늘 있음을 알려주는 말씀이다.
또, 텃밭을 경작하면서 예수님께서 천국을 농사와 관련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묵상해볼 수 있다.


마태복음 13장의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나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이다. 언젠가 목회자들과 등산을 하는 중에 누군가 말했다. “세 평이나 되는 땅에 상추를 심었 는데 심지도 않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뽑지 않았더라면 금방 잡초밭이 되었을 거예요.” 일행은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 말씀을 기억하며 그의 얘기를 흥미 있게 들은 적이 있었다(마13:15~16).


그리고 텃밭을 통해서 육체적인 노동을 하면 기쁨과 보람도 있게 된다. 전도서 2장 24절에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라고 했다.


적당한 육체적인 노동은 생활의 활기와 즐거움을 준다. 신혼 때에 탄광촌에서 교편 생활을 했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좋지 않은 환경은 자주 답답함과 삭막함을 안겨 줬다. 그런데 학교에서 실습지를 텃밭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퇴근 후엔 아내와 거기서 농작물을 기르면서 정신적인 휴식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텃밭을 통해서 생활에 좀 더 윤택함을 얻을 수 있음을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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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