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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하늘붓 가는대로 –160 퇴(退)짜받은 목사의 체험

권혁봉 목사 / 한우리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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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짜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상납(上納)한 포목(布木)의 품질이 낮아서 (退)”()가 찍혀 도로 물려 나온 물건을 말하는데, 그것의 의미는 퇴(退)박 맞았다는 것이니, 이는 또 무엇을 주었건만 받는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물리침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로 본 퇴짜를 목사며 교수인 나는 내가 가르치는 현장에서 몇 번 당했던 체험이 있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밝힌다. 퇴짜 당한 심정이 어떨까? 언필칭 낙담스럽다고 하겠지! 그러나 나는 나의 강의가 거부당한다고 해서 놀라지 않았다. 그 첫째 이유는 당연히 거부당할 수 밖에 없는 성격의 진리 강의였기 때문이었고, 그 둘째는 좀 핑계스러울지 모르나 수강자들의 질()의 문제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첫째 퇴짜 체험은 어느 해 신학교에서 신학과와 기독교 교육학과의 학생들에게 조직신학을 강의하는데 신학과 학생은 매시간 아멘, 할렐루야로 응하는데 반해서 기독교 교육과 학생은 강의를 거부하더라는 것이다. 교과서 위주로 꼼꼼히 가르치는 것이 답답한 모양이었다.

 

다 같은 교재로 다 같은 선생 밑의 수강자들의 찬반 갈라짐은 수강자들의 질의 문제일 따름이다. 솔직히 신학과 학생은 더 성숙하고 영적인데 비해 기독교 교육학과생은 그만 못했다는 것이 사건의 이유였을 것이다. 내가 왜 당황할 것인가? 그래서 기왕에 설정된 과목이니 이번학기는 그냥 넘어가자 하고 다음 학기엔 너네들에게 나타나지 않으리했다.

 

실제로 다음 학기는 기독교 교육학과에 조직신학강의를 내가 거부했다. 아주 나중 기독교 교육과 학생이 목사가 되어 목회 현장에서 그때 자기들의 강의 거부가 잘못되었다고 고백을 하는데 이미 때는 늦었지 뭔가.

 

내 교수 평생에 서너 번 강의 거부가 있지만 여기 한 가지만 더 첨부하고 그친다. 서울 모 CBMC 모임에서 강사로 거의 1년을 매 새벽마다 고급 호텔에서 강의를 해왔는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소위 강남 장로들인가 싶은데, 그 모임의 회장은 시민의 한사람으로 있을 때 회장직을 맡았던 전 대통령이었다. 그때 나는 디모데전서를 중심으로 설교했었다.

 

목회서신에는 목사가 부자에게 따끔하게 일러줄 말씀이었었다(딤전 6:17~19). 나는 성경대로 설교했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율법과 복음을 갈라놓는 설교를 해오니 그들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목사님 그만 수고하세요.”하는 소리가 그들로부터 나오기 전에 내가 선수해서 물러섰고 그 뒤에 유명한 김모 목사가 와서 오랫동안 지도하다가 그도 자기 교회가 갈라져서 세상에 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요는 자기 가르침에 거부를 당하지 않기에 노심초사하는 저 후배의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는 노 목사의 심정이 있어서 퇴짜 경험을 지금 말하는 것이다.

바울 일행은 천하를 어지럽게 하고 전염병을 퍼트리는 자라고 거부당하지 않았냐(24:5).

 

예수님의 교훈은 또 어떤 대우를 받았던가. 그까짓 작은 목사의 입술에서 나오는 얄팍한 강의가 거부당하는 것이 그리도 두렵다면 유구무언(有口無言)하면 어떨까? 그러나 유구무언할 때는 이미 짖지 않는 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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