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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윗의 도피 생활(2) 하나님과의 관계(삼상23:1~24:22)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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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힘든 도피생활이 이어진다. 사면초가의 어려움에 빠진 다윗의 긴박감이 잘 드러나는 본문, 가는 데마다 사울이 따라온다. 사울이 미처 오지 못해도 신고자들 때문에 피할 곳이 없다. 물론 비극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추격자 사울에게 잡힐 뻔한 위기가 스릴있게 전개되는 것은 맞지만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과 하나님의 관계가 빛이 난다.

 

하나님과 밀월관계였다

23장 1~13절의 내용은 도피생활 중에 있었던 여느 에피소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일라 지역이 블레셋에 의해 공격당하고, 주민들은 타작마당을 습격당해 애써 수고한 농산물을 빼앗긴 다. 그 사실을 안 다윗은 자기 몸 하나 피신하기도 바쁜 때였지만 그일라 백성을 불쌍히 여겨 블레셋을 공격하려 한다. 당연히 다윗의 사람들은 반대했다.

 

그들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었다 (3절).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과 싸우고, 그 전투에서 이겨서 그일라 주민을 구한다. 다윗의 호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지랖 때문일까? 아니다. 이게 진정한 지도자의 마음이다.

 

다윗은 마치 이미 왕이 된 것 같다. 왕은 백성을 책임지는 자리, 자기가 희생되더라도 백성을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인데 다윗은 왕의 품성을 잃은 사울과 달랐다. 자기 살자고 백성들의 위기를 모른 체하는 사람이 아니다. 왕감이란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왕다운 자질을 보여준 것, 기름 부음을 받은 후 그는 왕다운 품성으로 바뀌었다. 점점 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진짜 빛나는 것은 다윗과 하나님의 관계다. 밀접했다. 다윗은 하나님께 계속 묻고 하나님은 그때마다 응답하신다(2절).

 

사람들이 말이 되는 소리냐고 난리를 치자 또 묻는다(4절). 이게 중요하다. 하나님은 승리를 약속하신다.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4절). 그일라 백성들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다윗을 팔아넘길 것 같은 분위기가 생기자 다윗은 또 묻고, 하나님은 대답하기를 반복하신다 (11~12절).

 

소통이 너무 잘 되고 있다. 밀월관계를 즐기는 것처럼 묻고 대답하고 묻고 대답하고… 질문이 은밀하고 심각하지만 하나님은 전혀 숨기시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만큼 영적 민감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다윗이 그만큼 힘들었으니까 절박했으니까 그런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나? 아니라면 절박하지 않은 것인가?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점검해야 한다. 흔히 가장 어렵고 힘든 때 더 기도했고, 그때는 간증도 많았고, 체험도 많았다고 한다. 맞다. 우리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다윗의 노래가 쫓기던 시절 하나님과 나눴던 깊은 밀회의 한 모습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보호하신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도 두려웠지만 피신하는 곳마다 그 지역 사람들의 밀고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해준 그일라 주민들마저 배은망덕하게도 다윗을 사울에게 넘기려 한다. 그래서 그일라에서 피하여 십광야로 달아난다. 십 주민들도 다윗을 사울에게 또 밀고한다.

 

다윗이 마온 황무지 아라바로 피하자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사울이 다윗을 바짝 추격한다(26절). 절체절명의 위기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사면초가, 아마 다음한 절까지만 추격이 더 계속되었다면 다윗은 잡혔을 것 같다.

 

그 긴박한 순간 하나님이 블레셋을 움직이셨다.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27절). 사울은 급하게 돌아섰다. 급한 불부터 꺼야 했기에 일단 다윗 추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철천지 원수인 블레셋이 다윗을 도우려고 한 건 아니지만 다윗은 블레셋 덕분에 살아남는다.

 

서부 영화의 능숙한 추격대처럼 숨돌릴 틈도 없이 다윗을 몰아붙인 사울,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추격자는 사울이고 도망자는 다윗인데 희한하게 위축되고 축소되는 것은 사울이고 다윗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것 같지만 이제 사울을 이을 왕으로 인정받고 있다(17절).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키우는 방식, 그렇다면 어렵고 힘들 때 당하고만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을 듯하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견딘다면 그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롬1:17)고 할 때의 그 믿음일 것이다.

사울이 집요하게 추격하지만 다윗은 안전하다. 하나님이 보호자이시기 때문이다(14절). 보호 방법은 직접적일 때도 있고 간접적일 때도 있고, 다양하다. 절체절명의 위기 때는 블레셋의 침입이라는 방법으로 보호하셨다. 국제정세를 이용하신 것이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덕분에 살아남아 왕의 자리에 오른다.

 

우리도 하나님의 보호 대상, 어떤 상황도 우리를 흔들 수 없음을 믿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롬8:31~37).

바울이 논리적으로 설명했다면 다윗은 시로 표현한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2).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27:1~3). 두 사람이 같은 고백을 했다. 우리의 고백도 이래야 한다.

 

하나님께 맡겼다

다윗은 이번에는 엔게디 광야로 달아난다. 사울은 여기도 따라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전이 일어난다. 다윗이 모든 상황을 종결지을만한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엔게디 광야의 한 동굴에 숨어 있는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마침 용변이 급했던 사울이 군사 3000명을 거느리고 왔지만 혼자 그 굴속에 들어왔다.

 

뒷일을 보기 위해 무장을 해제한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겉옷을 벗었다. 부하들은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며 사울의 목숨을 취하라고 한다. 이번 기회 놓치면 우린 다 죽는다고 난리다.

 

그런데 안 그래도 의문투성이었는데 드디어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구나 그럴 법도 한데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는다. 외롭고 두렵고 지긋지긋한 광야로의 도피생활을 끝낼 절호의 찬스 임에도 불구하고 겉옷 자락만 가만히 벤다.

 

이런 일이 벌어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나가는 사울을 다윗은 뒤에서 부른다(24:10). 사울의 벤 옷자락을 보이며 자기가 이처럼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한다.

 

사울이 감동하고 소리 높여 운다(16~17). 그리고 심지어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20절) 그런다. 진심이었을 까? 아마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사람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 말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다 담은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속지 말아야 한다. 다윗은 말은 받되 현명하게도 사울 가까이는 가지 않았다. 잘한 거다. 여기서 다윗의 도피생활이 끝나지도 않았다. 사울이 죽을 때까지 도피생활은 계속됐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용기가 없어서였나? 겁먹었기 때문이었나? 아니다. 전쟁영웅 아닌가? 다윗은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이기 때문 이라 했다. 잘한 거다. 어느 사회에서나 권위에 대한 인정은 필요하다. 그래야 질서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통치력이 형편없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니 하나님께 맡긴 것, 이게 신앙인의 자세다. 신앙은 맡김(trust) 아닌가.

 

미래를 위해서도 잘한 일이었다. 만일 그때 죽였다면 지긋지긋한 도피생활을 끝낼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왕을 죽인 쿠데타, 그 꼬리표가 계속 따라붙었을 것이다. 그래서는 통일왕국을 이룰 수 없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왕으로서 세움을 받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순간을 잘 참은 것, 그것 때문에 나중에 다른 지파는 물론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까지 유다 지파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따랐다. 정당성이 미래를 위한 자산, 눈앞의 이익만 좇지 말아야 한다.

 

이런 다윗의 결정은 그저 한 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평소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같다. 평소 신앙이 중요하다. 평소에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을 인정하고 신뢰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이다. 모든 결정을 자기가 다 한다. 하나님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게 신앙인의 마땅한 자세다.

이희우 목사 신기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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