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은섭이는 미숙아로 태어났고 모든 것이 더디고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 너무 이뻐하고 사랑하는 아들인 것을 항상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는 엄마의 임신중독증은 산모가 위험한 병이라는 의사의 이야기를 엄마 뱃 속에서 들었는지 다음날 이 땅에 태어났고, 7살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7시간 가량의 ‘양쪽 고관절 수술’을 할 때도 의젓하게 잘 견뎌줬고, 8살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사시수술을 할 때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잘 버텨줬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수업을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학교에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치료를 다니고 돌봄어린이집에 다니면서도 항상 밝게 웃는 ‘미소천사’였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의 갑작스러운 뇌출혈은 어린 은섭이에게 충격이었지만, 매일 엄마가 깨어나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2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엄마를 보기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엄마와 함께 병원밥도 맛있게 먹었고, 엄마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습니다.
12년이라는 엄마의 빈자리를 아빠 혼자서 채워 줬지만 아들은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엄마를 걱정하는 아주 착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아들은 계속 일반중학교를 열심히 다녔고. 졸업하고 고등학교도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좀 피곤해하고 힘들어는 했습니다. 그러다가 은섭이 나이로 18살쯤부터 소변에서 피가 나오면서 힘들어했습니다.
병명은 엄마와 같은 ‘다낭신’이란 희귀난치병으로 신장에 생긴 물주머니들이 신장기능을 방해하고 점점 신장기능을 상실해 투석을 해야 하는 무서운 병에 걸립니다. 여러 번 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에 상태가 안좋아 거의 한 달 넘게 힘든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지만 아들은 의젓하게 잘 감당했습니다.
이제는 아들 나이 24살, 대학교 4학년으로 배재대학교 기독교사회복지학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주고 절망하고 고통 가운데 방황하는 이들을 섬기는 재단(은혜불꽃장학재단)’에 대한 꿈을 꾸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여전히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군가가 옆에서 옷도 입혀주고 밥도 먹여주고 씻겨주고 휠체어에 앉혀주고 소변도 도움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섬기려는 착한 마음이 있는 리얼 크리스천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목사인 아빠보다도 더 믿음이 좋고 더 어른스러워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지치고 힘들었던 상황들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아들의 태어남과 함께 찾아온 ‘중증뇌병변장애아’ 란 꼬리표가 붙어서 어딜 가든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대부분 사람들은 혀를 차거나 위아래로 훑어보는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들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괜찮다.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룰 것이다!”라고 말하고 또 말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란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속히 아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혼자 앉고, 걸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꿈속에서 뛰어다니는 아들을 본 적은 있었지만 아들은 여전히 휠체어에 앉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기대하며 이 땅이 아니면 저 천국에서는 마음껏 뛰어다니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아들을 위로합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 오래 전부터(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18살 고등학생 때부터 아들을 주시기를 기도함) 기도했고, 아들이 태어나서는 함께 바다에도, 수영장에도, 대중목욕탕에도, 산에도, 스케이트장에도 항상 아들을 안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때로 조금 높은 산에 오르면서 온몸은 땀으로 젖었지만 좋아하는 아들을 보면서 기뻐할 수 있었고 평범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됐습니다. 감사할 일이 있어 감사하기보다는 지금 아들이 살아 있고 곁에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아들이 20살이 됐을 때, 물어봤습니다. “은섭이는 행복해?” 그 때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록 몸은 장애가 있어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아빠 아들로 태어나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들의 말은 모든 시름을 잊어버릴 만큼 고마웠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몸도 연약하고 장애 때문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아들과 여전히 요양병원에서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고 있는 아내를 보면,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저와 가족을 지켜주고 계시고 여전히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 감사합니다. 은혜불꽃교회 목사로 은섭이의 아빠로 살고 있는 것이 기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