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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안으로-2

유수영 목사와 함께하는 창세기 여행 23
(창세기 6장 1절 ~7장 16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3)

 

6장 13절부터 하나님께서 본격적인 홍수 심판을 예고하고 계십니다. 13절은 온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는 하나님 의지를 여실히 보여주는데요,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면 손가락만 까딱해도 죄지은 사람만 골라서 죽이실 수 있을 텐데, 왜 하필 홍수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신 걸까요? 노아는 왜 힘들게 방주까지 만들어 살아남아야 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성경에서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전능하신 존재로 여깁니다. 엄청난 힘과 능력이 있으시기에 지구 같은 별을 단숨에 사라지게 할 수도 있고, 하늘과 땅을 뒤바꿔버릴 수도 있으며 생명을 마음대로 살리고 죽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게 됩니다.


‘전능하다’라는 단어가 ‘못 하는 일이 없다’라는 뜻이니 무리가 아니죠. 하나님께서 못 하시는 일이 없는 것은 당연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것이 핵심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이 정한 질서에 따라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질서에 갇혀 있다면 신이 아니잖아?’라고 되물으실 수도 있지만, 질서에 갇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질서를 갖춰 일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질서를 체험하면서 하나님 존재를 알게 하시려고요.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심판의 날이 밝았습니다. 노아 부부를 비롯해 세 아들과 며느리까지 8명이 방주에 올랐고 들짐승과 날짐승, 곤충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종류대로 방주에 올라탔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방주에 올라탄 후 하나님께서 직접 문을 닫았습니다(창 7:16). 문을 닫았다는 표현은 방주와 관련된 이후의 모든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많은 사람 중 노아 가족을 택한 점, 더 많은 사람을 태우지 않은 점, 일 년가량의 홍수 기간을 버텨야 하는 방주 설계의 신뢰도, 나아가 홍수 심판 이후 닥칠 모든 환경 변화가 오롯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책임도 지신다는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닫으면 아무도 열 수 없고, 열면 아무도 닫을 수 없으니까요.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창 7:9~10)

 

성경을 유심히 읽어보면 노아와 모든 동물이 방주에 탄 이후 7일이 지난 후에야 홍수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일주일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조금 필요합니다. 땅에서 물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고 검은 먹구름이 엄청난 폭우를 뿌리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노아 가족이 아슬아슬하게 방주에 오르고 문이 닫혔다면 어땠을까요? 방주 밖에선 예언이 현실이 됐음을 뒤늦게 알고 나도 좀 타게 해 달라고 몰려든 사람으로 가득했겠고 방주에 탄 이들은 재앙에서 벗어난 기쁨과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탄식이 교차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방주에 들어간 후 7일이 지날 때까지 홍수 심판은 시작될 조짐이 보이지 않았고 방주 안과 밖의 사람 모두 해 오던 일상을 그대로 이어갔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방주 안엔 탄 이들을 밖에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방주 안에 타고는 있지만 홍수가 시작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평소와 다름없이 식사하고 잠을 자야 할 노아 가족은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아쉽게도 성경은 그들의 일주일에 대해 전혀 기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선택이 조건 없는 은혜였다면 노아가 보여준 순종 또한 조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순종에 이유를 붙이거나 내 판단을 덧붙이면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옥처럼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아가 보인 순종이 ‘하나님 명령 수행’이 아니라 ‘다가올 심판을 피하는 방법’에 불과했다면 홍수가 시작되기 전 방주 안에서 보낸 일주일은 지독한 번민과 후회, 갈등으로 뒤섞인 시간이었을 겁니다. 짓궂은 이웃들이 방주를 손으로 두드리며 이제 그만 나오라며 비웃었을 테고 방주 안에서는 혹시 심판이 오지 않아 다시 방주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겠죠. 차라리 재앙이 얼른 오기를 바라는 심정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여기까지 가지 않고 처음 주신 명령에 우직하게 순종한 노아였기에 첫 7일은 물론, 이후 시간도 이겨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해도 순종함으로 그 진리를 품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 은혜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입은 바로 그 은혜죠.

유수영 목사
제주함께하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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