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우리나라는 거대한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고통의 신음을 내지르고 있다. 사태 초반 많은 국민들이 뜬금없는 비상계엄에 당황하고 분노했다. 물론 당시에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고유의 통치행위라며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긴 했지만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교회 또한 그랬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 2024년 12월 12일 전국 담임목사 120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에 67%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다. 비록 같은 시기 한국갤럽이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보다는 찬성 비율이 낮긴 했지만 3분의 2명이 탄핵을 찬성하며 대통령의 친위쿠데타(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집권한 정치 지도자가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으로 스스로 벌이는 쿠데타)를 비판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대통령이 이번 비상계엄을 일으킨 이유가 부정선거 음모론에 심취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이다. 그동안 부정선거 음모론을 끊임없이 밀어 부쳤던 세력은 이 기회를 틈타 강력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계엄군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99명의 중국인들 붙잡아 주일미군에게 인계했다는 가짜뉴스까지 퍼지며 점점 반응이 격화되더니 서울 서부지방법원 폭동까지 일어나는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광화문과 여의도로 나눠 진행되고 있는 탄핵 반대 집회는 모두 기독교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부지법 폭동으로 인해 구속된 인원들 대부분 어느 교회와 관련이 있다는 언론들의 보도는 교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함부로 그 영향력을 행사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안타까운 것은 좌우를 막론하고 어느 한 쪽에 서도록 강요하는 분위기까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한 쪽 편에도 들고 싶지 않은 이들 또한 충분히 존재할 수 있으나 이를 용납하지 않고 마치 홍위병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듯 사상검증을 하거나 관심 없는 유튜브 영상을 스팸 광고처럼 SNS로 뿌리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기도하자는 말조차 쉽게 꺼내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12월 초 겨울과 함께 불어닥친 사회적 한파가 누그러지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어떤 이들은 이제 교회가 일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미 일어나기만 했을 뿐 기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할망정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교회는 이미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잃어버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먼지에 불과하다.
과연 교회는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평화는 못 가져와도 조심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극한 정치적 갈등 속에 있는 기독시민을 위한 행동 지침을 발표했다. 기윤실은 자신의 주장을 폭력을 통해 관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혐오하거나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평화적으로 표현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할 것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도 이 나라의 한 구성원임을 기억할 것을 강조했다. 부디 이러한 지침들을 곱씹으며 서리 가득 낀 이 나라에 조금이나마 따스한 온기가 펼쳐지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