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이면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졸업시즌이다. 졸업은 한자로 졸(卒) 업(業)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학생이 소정의 학업과정을 마치다”란 뜻으로 배우는 일을 마친다는 것이다. 그동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과정을 마치기까지 수고한 졸업생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성실하게 배우고 익힌 것들이 앞으로 새로운 삶의 큰 유익과 미지의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배움이라는 것은 특정의 시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계속돼야 한다. 그래서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한다.
한 과정을 마치면 다른 과정의 배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생들은 하고 싶은 일, 계획한 일, 목표한 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집중해야 한다. 공부에 집중하든, 운동에 집중하든, 연구에 집중하든, 원하는 일에 집중해야 기대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모두 다 집중한 사람들이다. 놀면서, 쉬면서, 실컷 자고, 게임하고 이런 상태로는 결코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작은 것이라도 이루려면 결단하고 노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고응척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오기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행여나 자기를 업신여기는 듯한 말을 들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일을 꼭 해내고야 마는 성미였는데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 무시를 당하곤 했다. 그가 열일곱 살에 장가를 들면서부터 더 공부를 멀리하자 주위 사람들이 “아내 곁을 안 떠나는 것을 보니까 공부 잘하기는 영 틀렸다.”라고 놀려댔다.
이런 말을 듣게 된 그는 곧장 도끼를 지고 뒷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베어다가 손수 토담집을 한 칸 만들었다. 한쪽 벽에 겨우 조그마한 구멍이 위아래로 뚫려 있을 뿐 나가고 들어갈 문도 없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집이었다.
위의 구멍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마련한 것이었고 밑에 구멍은 음식 등을 들이고 낼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었다. 그는 그 곳에 들어앉아 꼼짝 않고 공부에 열중하면서 1년 넘도록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온 집안 식구들과 이웃에서까지 음식을 장만해 놓고 나오기를 청했다.
그러나 그는 매번 “나를 식충이로 만들 작정이냐”하면서 거절했다. 친구가 보고 싶어서 찾아왔어도 토담 구멍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이제 얼굴을 봤으니 돌아가게. 각자 공부나 열심히 하는 게 좋겠네.”하고는 쫓아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그는 그렇게 해서 1561년 문과와 병과에 합격하여 군수, 현감, 부운 등을 역임하면서 많은 시와 서책 등을 남겼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욕구를 접어놓고 뒤로 미루고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다. 졸업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성경에서도 행 20:31에 여러분을 일깨워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이 말은 바울에게서 배운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학교는 배움의 터다.
사람들이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학문이나 지식 또는 기술을 배우는데 있다. 이것을 까먹지 않고 잘 기억할 때 학교에 다닌 보람이 있다. “기억하라”는 말은 모세가 40년간의 광야학교를 졸업하고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고별사에도 나오는 말이다.
학교에서 배운 여러 가지 학문과 지식과 기술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 더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지식과 교양이 많은 사람을 흔히 “배운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배운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배운 것을 잘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개발로 실력과 역량을 키우고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려는 큰 뜻을 품어야 한다. 졸업생들은 졸업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 시작이 좋은 결실을 거두려면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잘 기억하고, 사명을 발견하여 이에 충실하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쪼록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모든 졸업생들이 이와 같이 행하므로 교회와 나라와 사회에 꼭 필요한 훌륭한 인물들이 되어 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