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A교회 장로 몇 사람의 실명으로 된 유인물이 배달됐다. 전체적인 내용은 담임 목사가 여 성도를 성폭행 및 간통을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몇일 후 장로 중 한 사람이 전화하여 보내준 유인물 내용대로 신문에 실어줄 것을 요청해 왔다. 기사화를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를 떠나서 이와 같은 사건들이 기독교 안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데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왜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는가?
첫째로,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가지는 목회자일수록 성적인 유혹에 더 취약하다는 점이다. 둘째, 어리석은 모습으로서 “만약 나에게 정말로 관심을 가져준다면 나를 붙들어줘요”라고 요청하는 교인의 접근에 서로 신체적인 접촉을 하다가 좀 더 친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성적인 관계에 접어든 목회자들이다.
셋째, 잘못된 신학적 지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목회자인데, 우리는 서로 성관계를 가진 후에 둘 다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도 또 그런 삶이 반복될 수 있다.
넷째,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핑계로 삼는 목회자인데, ‘나의 결혼생활은 불행하다. 나의 아내는 성생활에 잘 응해주질 않는다’라고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유형은 배우자와 대화의 수준이 맞지 않아 결혼생활 밖에서 지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플라토닉 사랑의 관계로써 만나다가 선을 넘는 경우이다.
여섯째의 부류는 자신의 이성보다는 감정이 훨씬 앞서 나가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경우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모습과 역동성으로 성적인 경계선을 넘게 됨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 연구기관에서 목회자들이 성적인 금지구역에 접근하는 증상들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첫째, 배우자와 자녀들이 있는 집에 들어가는 것을 회피하기 위하여 밤늦게까지 일하게 될 때, 둘째, 귀가하는 길에 전화를 하거나 귀가시간이 일정치 않고 자주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빼먹게 될 때, 이외에 개인적인 경건생활을 유지하는 데 실패할 때이다.
위험한 증상들이 이와 같이 여러 부분에서 계속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목회자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을 합리화하게 되면 성적인 비행을 저지를 위험성은 그만큼 더 증가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가족들 앞에서 책임성 있는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 목회자는 다른 전문인들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적 지도자가 병들게 되면 그가 속한 시스템은 병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은 성경인물 속에서 성적 유혹에 직면해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자로서 행동했던 요셉과 신전의식을 잊어버리고 행동했던 다윗을 통하여 교훈을 받을 수 있다. 목회자의 개인적인 삶에서 전인격적인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앞부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적인 비행을 저지르는 목회자들은 성 중독의 역사를 갖고 있거나 성 충동에 취약한 인격 장애를 갖고 있으며, 또한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성인아이의 증상들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는 예방적인 차원에서 목회자 자신이 전문적인 상담을 받거나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인 내적치유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상담을 하게 될 때 목회자들이 자신의 이슈들을 인식하고 해결하지 못한 채 상담을 하게 될 때에는 내담자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부정적인 결과가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를 상상해야 한다.
목회자의 성적인 비행이 가져올 수도 있는 치명적인 결과들을 미리 생각할 때 치명적인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건전한 판단력이 생기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예방책은 이미 중독적인 상태에 깊이 빠져든 목회자에게나 윤리의식이 덜 발달된 목회자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교회로부터 사임당하거나 자신의 배우자로부터 이혼을 요구받고, 심지어는 자녀들과 이별해야 하며,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며, 재정적인 손실을 감수해야 하며, 더 나아가 세상 법정에 고소당할 수도 있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생각하여 잠시 잠깐의 쾌락적인 관계에 접어드는 것을 방지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