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쳐야 한다.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한 일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쫓으라.”고 베드로 사도는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위로하고 용기와 힘을 주는 말을 하기보다 사기를 저하시키는 비난만 쏟아 붓는 부정적인 말을 일삼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모든 일에 올바른 사리판단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사물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는 것이다. 인간의 판단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실 판단이고, 둘째는 가치 판단이다. ‘이 사람은 누구다’는 사실판단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다’는 가치판단이다. 사실판단은 쉽지만, 가치판단은 어렵다. 왜 가치판단이 어려운가? 판단자의 주관과 감정과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기준과 감정을 앞세워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성격상 확실한 사람이라서 바른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성격만 중요하고 남의 감정은 아무것도 아닌가? 바른 말이 꼭 좋은 말은 아니다. 자칫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좋은 말이란 상대에게 용기를 주고, 일어설 수 있는 말이 좋은 소리다.
또한 바른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이 정의로운 분이다. 공의로운 분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에 진리수호를 위해 성경적인 바른 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은혜로우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성경이나 하나님을 자기 유익한대로 괴변을 늘어놓으면 안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다. …기록하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으니 모든 무릎이 내게 끓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14:10~12)고 강하게 권면하고 있다.
요즘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교단과 기관을 자신의 잣대로 사정없이 재단하고 다닌다. 자기 눈 밖에 난 사람이 하나님의 눈 밖에 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더 좋아하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미워하고 천대하는 사람을 하나님에게는 귀할 수도 있다. 왜 자기 원수를 하나님의 원수로 오해하는가? 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라고 착각하는가? 이것은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판단기준과 판단척도를 냉정하고 예리하게 분석해 비판할 필요가 있다.
자신은 무엇이든지 진실하게 한다고 과대평가하는 모순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남에게 대해서는 준엄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자기에게 잘하고 음소하면 관대해지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정없이 깎아내리고 잘라낸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자신의 잘못은 덮어 두고, 남의 허물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자신의 부패는 거론하지 않고, 남의 부패만 소리 높여 공격한다.
이와 같은 사람은 편견에 노예가 되어 있다. 고정관념에 포로가 되어 교단과 기관고 교회전체를 허물어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선입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는 비전의 눈을 가졌으면 한다.
성경에서도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 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 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야4:11~12) 회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