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300여명을 태운 세월호가 바다로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이 처음엔 분노를 느꼈다. 혼자 탈출한 선장과 엉망으로 사고 수습을 하는 공무원을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는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다.
이 나라에서 애 키우기가 겁난다는 불안이다. 젊은 부모나 예비 부모는 물론 이미 자식 다 키워놓은 중년까지 불안에 떨고 있다. 주말에 아파트 어귀에 모인 주부들은 “이런 나라에서 외동은 절대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주부는 “며느리한테 적어도 둘은 낳아야 한다. 하나는 절대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다른 주부들도 모두 맞장구를 쳤다.
자식 한두 명 잃는 것이 예삿일로 여겨진 못 살던 시절에나 오갔을 대화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들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이런 불안감은 진도 사태 이전부터 누적되어 왔다. 아이들이 어이없이 죽어간 사건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7월 해병대 캠프에 간 고등학생 5명이 바다에 빠져 숨졌고, 올 2월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갔던 대학생 9명이 무너진 건물에 깔려 사망했다.
모두 우리나라에 사는 아이라면 일상적으로 거쳐 가는 행사에서 당한 일이라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아이들이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통학 차량 때문에 아이들이 숨지는 사고가 매년 반복되지만 아직도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고 아이를 태우는 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부모들은 ‘학교에서 가는 거니까 괜찮겠지’, ‘나라에서 인정한 시설인데 별일 없겠지’라고 하면서 믿고 보낼 수밖에 없다. 2012년 우리나라에서 안전사고로 숨진 만 12세이하 어린이는 326명이다. 교통사고로 131명, 익사 사고로 53명, 추락 사고로 36명이 숨졌다.
어린이 10만 명당 안전사고 사망률은 4.3명으로 영국(2.5명)이나 독일(2.6명) 같은 선진국과 비교가 안 되게 높다. 정부는 불과 한 달 전에 어린이 안전사고 사망자를 2017년까지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어린이 통학 차량을 신고하도록 하고, 어린이 놀이 시설을 주기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린이집이나 키즈카페가 문을 열 때부터 했어야 할 일을 이제야 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 자료까지 냈다. 캠프 사고가 나면 캠프를 점검하고, 키즈카페 사고가 나면, 키즈카페를 점검하는 정부를 국민이 믿을 수 있을까? 진도 사건이 터지자 정부가 학교에 한 일은 “수학여행 가지 마라”고 한 것뿐이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자녀 양육 불안 요소를 뿌리 뽑지 않으면 차라리 애를 안 낳는 것이 속 편하다는 국민이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아이 키우기가 겁나는 나라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대형사고 때마다 여론이 부글부글 끓다 좀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느냐 싶을 정도로 사고 이전으로 퇴행해버리는 집단기억상실증을 다시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자면 정부 당국은 말할 것도 없고 안전시설을 운영하는 기업, 단체들이 항상 머릿속에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볼트하나, 기둥하나라도 안정성에 충분한 여유를 두고 튼튼한 것을 써야 한다. 10~20년에 한 번쯤 발생할 확률의 상황이라도 그것이 큰 인명 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라면 끊임없는 대비 훈련으로 실황에선 지시, 토론 없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안전 분야에서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 숱한 분야에서 죽음을 부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형 사고는 많은 허점, 실책, 무책임이 겹쳐 터지는 것이다. 지금 재양 일보 직전의 임계점까지 가 있는 분야가 한두 곳이 아닐 것이다.
이따금 일어나는 고속철 사고를 겪으면서 KTX가 고속주행 시 탈선하는 일이 없을까 조마조마해지기도 한다. 영화 복합상영관 직원들은 만일의 사태 때 침착하게 관객을 대피시킬 수 있게 반복 훈련을 받긴 하는지 의문이다. 고층 건물에 소화시설은 제대로 달려 있고, 피난 안전구역은 설치돼 있는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