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의 강압적인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된 지 69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교회가 해마다 광복절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한국교회의 역사적 정통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많이 받았는데 그 비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광복절은 1945년 8월15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 패하여 항복하게 되고 이에 한반도가 일제의 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광복은 문자 그대로는 “빛을 되찾음”을 의미하고 국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인다. 또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은 1943년에 접어들면서부터 점차 연합군 측에 유리하게 되어, 그해 11월말에 미국, 영국, 중화민국 3국은 소위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1945년 5월에 나치 독일이 항복했고, 8월 8일에는 미국과 영국, 소비에트 연방이 모여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은 드디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했다. 한민족은 카이로 선언과 그것이 다시 확인된 포츠담 선언에 의해서, 그리고 한민족의 오랜 투쟁을 통한 민족의 극복에 의해서 일제의 학정으로부터 독립을 맞이했던 것이다.
해방소식을 듣자 반일인사들을 옥에 가두고 고문했던 친일경찰들은 도망하기 바빴으며, 일본군들은 미군에 의해 무장해제되는 9월 9일까지 시내를 돌아다니며 해방을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을 염려해 비행기로 경거방동을 삼가라는 건국준비위원회(건준) 명의의 삐라를 뿌리고 다녔다.
한편 건준은 8월 말까지 전국에 145개 지부를 두고 일본인 자본가와 지주로부터 재산과 토지를 접수해 조선인들에게 배분하는 것을 도와줬으며, 경찰들이 도망간 빈자리를 대신해 전국의 뜻있는 청년들을 모집해 치안대를 경성해 치안을 유지했다.
지방의 경우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 이념을 떠나서 지방의 유력한 유지들 및 지주들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서 건준에 활동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에 미소 양군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삼아 남북으로 갈라져 1945년 9월 한반도에 진출하게 된다. 남북한을 분할한 미소 양군은 점령 지역에 군정을 실시했다.
소련은 처음 조만식을 내세워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게 하고 군정하의 행정을 했으나, 이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소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 공산주의 정치 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한편 남한에 진주한 미군도 군정청을 설치하고 남한의 모든 행정을 담당했다.
미군정은 정치활동의 자유를 허용하여 모든 한국인 정당에 대한 절대 중립 태도를 언명 하였다. 그리하여 송진우 등의 ‘한국 민주당’, 안재홍 등의 ‘국민당’, 여운형 등의 ‘조선인민당’, 박헌영 등의 ‘조선 공산당’을 위시한 50여 개의 정당이 난립했다.
미국 본토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초대 임시정부 대통령인 이승만이 귀국하고, 중국과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김구를 비롯한 임정요원들도 귀국했으나 혼란은 여전했다. 사실 우리나라가 36년에 걸친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을 때 한국교회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삼일운동은 한국교회가 중심이 된 독립운동이었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가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이 적지 않았다. 결국 우리나라의 광복은 하나님께서 일제의 식민지 통치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을 들어주셔서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복절 되면 조국의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서들처럼 입에 웃음을 띠고 혀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씨를 뿌리러 나가야 한다. 복음의 씨를 뿌려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동포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기도의 씨를 뿌려서 나라의 번영을 도모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