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음악 장르 중에서도 특별히 오페라는 극과 음악의 접목이란 점에서 “이야기의 예술”이다. 바로크 초기에는 흔히 왕과 왕비나 영웅들의 사랑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운명에 시달리는 남자주인공이나 비운의 여주인공들의 사랑의 이야기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그렇다고 모든 오페라의 내용이 다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때로는 사회를 풍자하거나 철학적 혹은 종교적 심오함을 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계몽주의의 발발과 시민혁명 즈음에는 귀족을 풍자한 파격적인 내용의 오페라가 사회 혁신의 물고를 트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좋은 예이다. 낭만주의 시대를 지나며 사실주의 오페라(Verismo Opera)라고 하여 현실 속 인물들이 오페라 속 주인공으로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곧 범상치 않은 인간 삶의 극적인 이야기들이 무대 위에 오르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당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는 아마도 오페라 <카르멘>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학 속 활자로만 존재하던 주인공이 무대 위에서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유혹의 샘과 같은 두 눈을 빛내며 희뿌연 담배 연기 속에 춤을 춘다. 바로 집시 여인, 카르멘이다.
1875년 발표된 조르쥬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는 남자 주인공 돈 호세, 즉 군대 복무중인 잘생기고 반듯한 청년 하사관과 두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시골에 사는 아름답고 순결한 약혼녀 미카엘라와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자유와 유혹의 유전자를 지닌 카르멘이다.
제대 후 미카엘라와 결혼하여 어머니와 함께하는 행복한 삶을 꿈꾸던 호세는 우연히도 카르멘이 놓은 덧에 휘말리며 그녀의 탈출을 돕게 되고 그의 인생은 추락하기 시작한다. 악연이다. 탈출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감옥을 가게 되고, 출옥 후에도 카르멘의 유혹과 간청을 뿌리치지 못해 탈영을 시도한다. 마침내 호세는 사랑의 이름으로 그녀를 따라 산속 밀매업자의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미 호세에게 싫증난 카르멘의 부정한 마음은 투우사 에스카밀리오에게로 향한다. 급기야 에스카밀리오를 만나기 위해 투우장으로 향한 카르멘과 그런 그녀를 돌이키기 위한 눈물의 호세가 마주선다. 그러나 뜨거운 태양 아래 거만하게 이글거리는 카르멘의 완강한 거부는 호세로 하여금 분노 속에 준비한 칼로 그녀를 살해하게 한다.
살인자가 된 호세의 절규 속에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문학작품은 당연히 문학적 아름다움으로 이해해야한다. 그러나 호세의 비극적인 삶을 바라보며 한번 크리스천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고자 한다. 약혼녀인 미카엘라는 카르멘과 대조를 이루며 구원의 여인으로 등장하는데, 호세의 삶에서 중요한 두 번의 권면과 경고의 장면에 등장한다.
첫째로, 호세의 인생에서 위험이 엄습하기 직전, 그녀는 호세가 근무하는 부대로 찾아와 그의 어머니의 편지를 전하며 아름다운 미래의 청사진을 펼친다. 둘째로 미카엘라는 이미 밀매업자가 되어 산속에 숨어 망이나 보는 신세의 호세를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 부디 어머니가 계시는 일상으로 돌아올 것을 기도와 눈물로 호소한다. 필름을 돌려 본다.
미카엘라의 등장은 분명 위험에 대한 경고였으며, 재생의 기회였으며, 최악의 비극까지는 막을 수도 있는 최후통첩과도 같은 은혜의 순간이다. 그러나 헛된 욕망과 질투 속에 갇혀버린 호세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최악의 선택을 하고야 만다.
바로 죄악에 머무는 것! 돌아오지 않는 것!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크고 작은 선택과 결단의 순간은 많았을 것이다. 미카엘라의 등장처럼 우리의 삶 속에 울렸던 위험의 경고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깨닫지 못하거나 묵살해버린 주님의 경고는 얼마나 많았겠는가? 최악의 선택, “죄악에 머무는 것!”과 같은 순간은 없었겠는가?
특별히 올해 들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여러 사건들은 국가적 위기란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2014년, 그 봄의 상처는 아마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서 영원히 떠나지 못할 것이다. 임 병장의 총기난사 사건, 그 역시도 앞으로 아들을 군대 보낸 어머니들의 마음을 한시도 자유롭지 못하게 할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대한민국의 총체적 난국 앞에 서본다. 너무도 여러 번 놓쳤거나, 아니면 감히 묵살해 버린 주님의 경고는 없었는지 돌이켜 보면서, 오페라 <카르멘>을 통한 이런 저런 생각을 맺는다.
차수정 교수
침신대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