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도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교회가 부흥성장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더 높이’ ‘더 멀리’ ‘더 많이’ 교회건물을 쌓아왔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름을 만방에 알렸다.
초대교회 이후 교회는 점점 더 타락해 세속화 되어버렸다. 이에 하나님의 성령은 떠나고 교회는 더욱더 부패해 로마 가톨릭이 세워졌다. 이후 교황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라는 칭호를 사용해 하나님 자리에 앉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더욱 화려한 건물을 건축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죄 사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교황이 대리자의 권한으로 죄 사함을 줄 수 있다며 면죄부를 팔아먹었다.
교황은 그 돈으로 화려한 교회를 건축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유명한 바티칸대성당이다. 이후 하나님은 그들이 만든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교리가 하나였던 그들을 혼잡하게 하시므로 수많은 교회를 만들어 냈다. 그들이 바로 종교 개혁자들이며 오늘날의 개신교들이다. 종교 개혁자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능력으로 가톨릭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 모든 역사를 진행한 것이다.
바벨탑사건 이전에는 언어가 하나였으나 이후에 언어가 혼잡 해져서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듯이 1514년 종교개혁 이후에는 많은 교리가 만들어지고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따라서 종파가 다른 교회들은 서로간의 교리 차이로 인하여 싸우며 헐뜯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바벨탑을 건설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 이렇게 많은 바벨탑(교회)을 더 크게 건축하고 있다. 영혼이 깨어있는 자들은 판단해 보라. 자신들이 건설한 수천억 수백억 원을 들여 건설한 교회가 진리가 될 수 있을까? 하나님이 과연 사랑하실까? 과거 구약시대에서는 성전 중심 신앙생활이 됐기에 그것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성전을 건축하도록 했다.
그러나 주님이 이후 보이는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은 없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이 화려한 교회에 계신 줄로 착각한다. 하나님은 손으로 건축한 성전에 거하지 아니 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성도들의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축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외모를 중시하는 자들이 알고 있을까?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대형교회는 큰 일을 할 수 있다.
큰 힘을 가지고 있기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대형교회는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을 섬길 수 있다는 유익함도 있다. 그리고 대형교회는 한 번에 대규모의 단기 선교팀을 보내기에 해외선교의 한 축을 담당한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작고 아담한 소형교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성도 수 100명 정도의 교회는 자립할 수 있다. 자립할 수 있다는 말은 단독건물을 가지든 임대건물을 가지든 다른 교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서서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말이다. 또한 목회자의 사역방향에 크게 영향을 받겠지만 대체로 선교 지향적 교회라면 성도 수 100명의 교회는 단독 선교사 한 두 가정은 파송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체로 선교사 한 가정을 파송하려면 매당 200~300만원은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대형교회라 함은 작게는 5천명에서 많게는 10만 명 정도의 성도들이 출석하는 교회를 말한다. 대단한 규모와 위용과 성도를 자랑하며 한국 기독교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만들어진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에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들어와 생긴 기형의 교회(Mega Church), 대형교회에 많은 성도들이 모였다면, 또한 많은 선교 사명을 감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대형교회는 국내선교와 해외선교를 외면한 채 자신의 교회만 살을 찌우고 있다.
다 그렇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몇몇 교회들이 교회와 사회의 덕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논에 모를 심기 위해 먼저 못자리에서 약 40일 정도 자라난 모를 논에다 옮겨 심어야 많은 수학을 거둘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논에 옮겨 심은 모를 다시 못자리로 뽑아 옮기는 교회가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