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교회와 신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교회의 생명은 복음적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복음이 왜곡되고 진리가 혼돈되어 참 진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특히 교회는 복음주의의 현 위치와 평가, 특징과 매력, 문제점, 나아갈 방향 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는 매우 역동적인 신앙운동이 전개되면서 다음 세기 동안에도 꾸준하게 성장해 나갈 전망이다. 1990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500곳의 개교회를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그중 89%가 복음주의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복음주의의 세계적인 부흥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지역은 거의 없을 정도다. 심지어 로마 카톨릭교회의 중심지로 여겨져 온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도 2025년이 되면 다양한 형태의 복음주의가 수적으로 지배적인 세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독교의 미래는 복음주의 운동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지성과 감성을 조화 시키면서 복음주의 운동에 기대로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복음주의를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 운동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신중한 반성과 함께 시작돼야만 한다. 복음주의는 서유럽에 있는 현대 교회 내에서 가장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세력들 중의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복음이 가져다주는 활력과 기쁨을 복음주의를 통하여 발견하게 됐다고 말한다. 점점 더 세속화되어 가는 이 시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데 있어서 복음전도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미래 교회의 생존과 발전은 복음을 선포하고자 하는 확고하고도 체계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한 때 변두리 운동으로 여겨졌던 복음주의 운동은 이제 주류 세력이 되어가고 있다. 복음주의는 더 이상 지역적인 현상이나 편협한 종파적인 풍조, 혹은 교회생활에 관계가 없는 것으로 치부될 수 없다. 계보와 역사를 안다는 것은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고 미래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그것은 반드시 그렇다. 이는 아무도 과거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주의가 정체성을 상실할 위기를 내재하고 있는 것과 신앙의 문제, 독단주의, 죄의식, 복음주의적 우상화에 관한 부분들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 영적인 실재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영적인 문제를 중요시하여 다룬다.
복음 전도만 강조하는 복음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회심 이후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는 신앙에 관해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죄의식과 관련된 설명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신학적 성경적으로 잘못된 죄의식이 낳는 병폐를 지적해야 한다. 영적 생활에서 육의 생활로 변질되어 죄를 짓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일상적 생활인 것을 허물을 드러내기 위한 비난만 일삼는다고 생각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곪아터진 부패한 부조리의 상처들이 사회에 폭로하고 그것들을 제거하고 책임자들을 몰아내려는 대 수술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대수술이 될 것인가?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미래의 무엇이 보이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진정 믿을 수 있는가? 문제 해결에 대한 어떤 희망이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생의 능력을 의식하는 눈먼 시대에 살고 있다.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는 영적 암흑의 그림자가 점점 우리의 주변을 엄습하고 있다. 교회와 기독교가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려면, 반드시 잘 못된 것을 치유하고 그동안 관행처럼 여겨왔던 모든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만 밝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