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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or 예수쟁이

오늘날에 그리스도인들의 대하여 비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부르고 인정하고 있는가?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불러주는 것이 좋겠는가? 사람들은 우리를 부를 때 교회에 다닌다 하여 교인이라 부르기도 하고,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 하여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기독교의 신앙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예수쟁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아집이 심한 집단이라는 의미로 개독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말을 볼 때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비쳐진 기독교가 이토록 부정적이었나를 생각해 보면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기독교인답게 살지 못했으면 이런 표현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우리 자신들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이 어떤 호칭으로 우리를 부르든, 그 안에는 그 이름이 담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인이라고 부를 때는 단순히 교회만 다닌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 다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윤리적 기준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술을 권하다가도 아참, 교회 다니지?”하고 더 이상 권하지 않기도 한다. 교인이라는 말 자체는 단순히 교회에 나간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윤리적 이상이 있음을 세상 사람들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는 것이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예수쟁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를 갖게 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예수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과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부정한 일들, 즉 죄에 대해서 가볍게 여길 때가 많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 다는 것이다. 다소 경직 될 정도로 죄에 대해서 멀리하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자신들과 다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말로 했더라도 아주 나쁜 의미로만 받아들일 것은 아닌 것 같다. “개독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 우리가 가장 듣기 싫은 호칭이 이 말일 것이다. 그러나 말을 뒤집어 보면 이 말에도 우리를 향한 의미가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답게 사회에 공헌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온갖 루머나 부정에 연루되기 때문에 개독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러니 정말 기독교인답게 사회에 빛과 소금된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이런 호칭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세상 사람들과는 확실하게 달라야 한다. 우리가 부르는 가장 적절한 호칭은 바로 성도가 아닌가싶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거룩이라는 기준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부른 것만 성도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별되는 모습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저 사람 제발, 교회다닌다는 말을 좀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서 성희롱과 성추행 등 적지 않게 언론에 노출되고 비난을 받고 있다. 성도라는 호칭에 맞지 않게 오히려 덕스럽지 못한 모스들을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과 구별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면 결국 자신만 욕먹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하나님까지 욕먹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세상 사람들끼리는 관대하다. 서로 잘못을 하더라도 이해해 준다. 그러나 성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수준으로 살면 안 된다. 적어도 세상 사람들보다는 한층 더 높은 윤리적 차원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나약해서 포기하더라도, 성도는 책임성 있게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구별된 삶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 주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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