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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예, 본시 타고난 성품이 기런데 우짤끼라예!

“남편이 도무지 말을 안해요. 답답해서 못살겠어요!”

입을 꼭 다물고 사는 남편, 할 말이 있을 때도 아내 눈치 살피며 어렵게 이야기하는 남편, 그것마저 혼자 중얼거리듯 말해 버리는 남편, 연애할 때는 말없는 것이 착한 사람으로, 점잖은 사람으로, 가볍지 않고 중후한 멋으로 보여 지던 남편의 말없음이 정작 결혼해서는 이렇게 답답하고 복창 터지는 일인지 정말 몰랐다고 하소연하는 아내. 남편은 자신의 그러한 성품이 어린 시절 성장 과정에서 형성되었기보다는 타고난 성품이라고 믿고 있었고(제가예, 본시 타고난 성품이 기런데 우짤끼라예!) 아내 역시 남편의 과거를 이해하려하기 보다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남편의 문제를 바라보며 불편해서, 속상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인 것이다.


말없는 것도 속터지는데 게다가 바람까지 펴요. 주제에!” 사람들은 ? 이 사람이 이럴까?” “무슨 원인이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는다. 학자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삶을 통하여 어떤 모양이든지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즉 열매가 있으면 뿌리가 있는 법이다.

뿌리가 선한 것이면 열매도 선한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뿌리가 쓴 뿌리면 열매도 쓴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땅 속에 숨기어져 보이지 않는 쓴 뿌리는 보지 못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쓴 열매만 바라보고 그것만 제거하려고 애쓴다. 애쓴 보람으로 열매를 제거하고 나면 당분간은 편안한 것 같다.


왜냐하면 쓴 뿌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 용기를 내서 열매를 없애 보려고 일어서면 소용없는 짓이라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대로 나의 말은 들어주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에게는 신뢰도 사랑도 실종되고 만다. 얻어지는 것은 상대에 대한 미움과 분노와 억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뿐이다. 이런 사람이 어찌 자유 할 수 있겠으며 기쁨의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참 기쁨과 감사의 세계, 신령한 자유의 세계를 경험하기를 원하면 듣자! 잘 듣자!


인간은 잘 들어야 산다.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듣고 사람의 말도 잘 듣자! 설교자의 설교만 잘 듣고 배우자의 말은 듣지 않는 이율 배반적인 삶에서 이제는 졸업하자! 주님 말씀대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버려서는 안된다. 형제를 사랑함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남편은 그렇지 못했다. 아내와는 달리 하고 싶은 말 제대로 해본 적 없이 살았다.


 계모 밑에서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낸 남편. 계모의 가혹하리만치 혹독한 훈육으로 말미암아 남편은 착한 아이, 말 없는 아이, 얌전한 아이, 자기주장을 할 줄 모르는 내성적인 아이로 자랐고 무엇이든 예스맨으로 순종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특히 아버지와 새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들과도 마음껏 장난치며 놀지 못했다. 혹 놀다가도 배다른 동생이 울 때면 혹독하리만치 혼이 났다. 힘든 일 궂은일은 언제나 자신의 차지였고 맛있는 음식이나 간식은 언제나 동생들 차지였고 자신은 집밖으로 내쫓겼다.


늘 새엄마 앞에만 서면 두려움에 떨었고 어쩌다 아버지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보라고 해도 새엄마 눈치 때문에 늘 힘없이 할말 없어요.”했던 아이였다.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숨기고 늘 속으로 자신과의 대화에만 열중했던 남편은 청년이 되어서도 인간관계가 잘 되지 않았다. 늘 하고싶은 말은 입에서만 맴돌 뿐 표현하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오해도 하고 사귀기 힘든 친구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이러면 안되는데해 보지만 그것은 마음뿐 정작 표현해 보려면 잘되지 않고 자기도 모르게 자꾸 상대방의 안색을 살피게 되고 불안해진다. 어쩌다 용기를 내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이야기해 보려고 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속에도 없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후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릴 적 성장과정에서 형성되어진 위축된 자아가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은 모르고 있었고 자신이 우울하고 폐쇄적인 사람이 된 것도 상처받은 병든 자아로 말미암아 되어 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늘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친절하게 대해 주는 여성에게서는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는 자신이, 어린 시절 자신을 따뜻하게 해 주었던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말미암은 것일 줄 비로소 알고 참 많이도 울었다.


자신이 바람둥인 것만 같아, 자기 속에 여자를 밝히는 더러운 피가 있는 것 같아 밤새워 울며이 더러운 피를 없애 달라고 기도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란다. 정말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고,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대상이 모두 돌아가신 어머니와 비슷한 분위기의 여성들이었다고 고백하며엄마를 부르며 운다. 어머니를 끌어안듯 자신의 팔을 얼싸안고엄마! 보고 싶어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엄마 아세요? 외로울 때마다, 혼자 울 때마다 정말 엄마가 보고 싶었어요, 엄마, 왜 나를 두고 먼저 가셨어요, 엄마.”


울부짓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 모두가 울었다. 끌어안고 울고 불쌍해서 울었다. 누구보다도 아내가 하염 없이운다. “우리남편! 어쩌면 좋아요! 외로워서, 괴로워서, 말하고 싶어도 말 할 대상이 없어서, 말못하고 살아온 남편인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말 안한다고구박하고,‘ 남들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병신이라고 소리 지르고 살았어요, 내가 나쁜 년이에요, 여보 날 용서해 주세요!”통곡하며 남편을 얼싸안고 운다.


부부가 서로 얼싸안고 얼마나 우는지 다른 모든 부부들이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심을 경험하며 하나로 살지 못했던 자신들의 모습이 생각나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서로 안고 그렇게도 하나님께 회개하며 울었다. 그리고 상대의 부족함이 내가 이해하고 쓰다듬고 채워주어야 할 부분임을 알지 못하고 비난과 불평의 조건으로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도 아리고 아파서 눈으로, 몸으로 용서를 빌며 울었다.


그리고 그동안 가슴에 묻어두고 지나왔던 숱한 말들을 토할 수 있도록 마당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모든 부부들이 이 남편을 도왔다. 돌아가신 어머니께, 저주하며 이를 갈았던 새어머니께, 무심했던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동안 참고 살았던 가슴의 모든 한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고함을 지르더니 벌떡 일어나서 옆에 있는 사람을 마구 때린다(손에 베개를 들려주었다). 베개가 걸레가 되도록 그렇게 미운 사람을 때리며 고함을 지르더니 기진하여 쓰러져서 운다.


정신을 차리고 나더니 실컷 때려준 계모를 부르며 새 엄마가 불쌍해요. 아이 달린 남자에게 시집와서 고생 많이 하셨어요. 내가 잘했으면 되는데, 내가 그렇게 못했어요. 괜히 새 엄마가 싫어서 새 엄마가 말시키면 난 대꾸도 안하고 인상만 쓰고 있었어요. 새엄마 몰래 배다른 나이 어린 동생들을 때리기도 하고 동네에서는 말썽만 피우고, 그런 내가 정말 미웠을 거예요, 새엄마가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왜 지금 드는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손가락질도 하고, 이모들은 와서너만 없으면 일이 없는 집안인데하며 혀를 차고, 얼마나 내가 미웠겠어요. 나만 없으면 아버지랑 잘 살텐데, 나 때문에 아버지랑 툭하면 싸우고, 그랬어요, 내가 정말 미웠을 꺼예요.”하며 또 꺼이꺼이 운다.


다른 남편들이 이 남편을 끌어안고 운다. 아내들도 그 아내를 끌어안고 운다. 부부 워크샵을 진행하다보면 참으로 자연스럽게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어 너무도 좋고 다른 부부의 모습을 통하여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너무도 좋다. 사랑하는 부부들이여! 배우자의 어린 시절, 어떻게 자랐는지, 어떤 부모, 어떤 형제들 속에서 어떠한 아픔을 갖고 살았는지 듣는 시간을 가져보라. 부부관계가 훨씬 더 풍성하고 행복해 질 것이다.

이희범 목사 / 지구촌가정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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