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전략가 아히도벨의 전략을 물리치고, 위장 잠입한 후새의 거짓전략을 수용함으로써 압살롬과 그의 추종자들은 쿠데타에 실패하였다. 반란에 실패한 압살롬은 반란괴수로서의 책임을 죽음으로써 마감해야하는 극단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제 아무리 악한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아들인지라, 자식에 대한 인정을 과감하게 끊지 못한 다윗은, 요압을 비롯한 자신의 부하들에게 반란은 진압하되 압살롬을 죽이지는 말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군사령관 요압의 생각은 다윗의 그것과 달랐다. 다윗왕의 말년을 불행하게 만들고 다윗왕국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 모든 사건들의 진원지가 압살롬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를 살려두면 안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압살롬이 패전하여 도주하다가 풍성한 머리카락으로 인하여 나뭇가지에 걸려 대롱거릴 때 요압은 창으로 그의 심장을 찔러 죽였다. 아들의 죽음이 알려지자 다윗은“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는 비가로 울부짖으며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의 울부짖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적당한 선에서 그쳐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의 울부짖음은 요압이 왕궁에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요압은 분노했다. 말년에 판단력과 자제력을 상실한 다윗이 개인적인 정리에 집착하여 심기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 또한 또 다른 국가의 위험요소라고 생각한 요압은 왕에게 대들었다.
사무엘하19:6에 기록된 바와 같이“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라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 하였나이다”하는 말로 왕에게 자신의 서운함을 표현한 요압의 외침은 그 당시의 황당한 상황을 잘 함축하고 있다. 아무리 자신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죽임을 당하는 것이 국가의 안녕과 평화와 안보를 지키는 길이라면, 한 나라의 왕으로서 냉정하게 압살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상식수준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해괴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데모진압을 위한 물대포에 맞아 다쳤다고 요란을 떠는 데모주동자들은 자신들의 불법적인 시위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다. 불법시위하다가 다친 사람은 스스로 책임을 지면 그만이다.
선진화된 나라치고 죽창과 쇠파이프와 인화물질과 깨진 보도블록을 무기삼아 시위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폭력 없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위하는데 물대포를 쏘겠는가.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여 자신의 나라의 수도를 마비시키는 행동을 수없이 반복하는 포악한 시위에도 눈을 감는다면 그게 어디 공권력이라 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에게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 집회와 시위는 정해진 법과 규정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순간 그 효력을 상실한다. 자신들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왜 다른 사람들의 자유는 짓밟는가.
우리나라가 독재국가인가. 우리나라가 독재국가이면 북한의 김 씨 정권은 도대체 무엇인가. 세계 어디를 가 봐도 우리나라만큼 자유가 많은 나라도 별로 없다. 불법시위를 벌이고도 엄정한 법의 제재를 받지 않고, 불법시위하다가 다쳐도 영웅대접 받는다는 사실이 우리나라가 자유가 충만한 나라임을 증명하고 있다.
일부 정치지도자들의 마인드는 더욱 심각하다. 공산혁명을 꿈꾸는 자를 옹호하고, 불법시위를 벌이다가 제풀에 다친 사람을 무슨 영웅취급하며, 다수의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한 사법기관을 향하여 삿대질하는 행동은 정상이 아니다.
마치 반란수괴 압살롬을 처단했더니 자신의 자식이 죽었다고 울부짖는 다윗의 노망과 진배없다. 아무리 자신의 자식이 죽었다 할지라도 압살롬은 나라의 안녕과 법통을 짓밟은 역모자가 아닌가. 무엇이 더 중요한가. 법치로 통치되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의 존립과 안녕과 안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는가.
노주하 목사 / 찬양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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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이 돌아왔다. 참 빛인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해결하고 율법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으셨다.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셨다는 사실에 목자들은 물론 동방박사들까지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경배를 드렸다. 그리고 이때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함께 찬송을 드린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각 개교회들은 성탄트리를 장식하는 것은 물론 성탄절 칸타타를 연습하며 이 땅의 평화와 사방에 펼쳐질 복음의 은혜를 만끽한다. 교회뿐만 아니라 서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청 광장과 대한민국의 입법기관인 국회의사당에도 성탄트리가 세워지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 분단의 상흔이 씻기지 않은 한반도 문제와 지역, 세대, 남녀 갈등 등 어느 때보다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절실한 2018년의 성탄을 맞이하고 있다. 교회는 빛을 발해야 한다. 복음과 사랑의 빛을 온 세
로티 문 선교사는 미국 남침례교(SBC) 선교의 전설이다. 해마다 남침례교 교회들은 성탄절 헌금으로 로티 문 선교사의 이름을 딴 ‘로티 문 헌금’(Lottie Moon Offering)을 드린다. 로티 문 선교사(1840∼1912)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격변기의 중국에서 헌신적 선교를 했다. 그는 선교지에 나간 여성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영향력 있는’ 최초의 여성 선교사다. 7남매 중 넷째로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로티는 남북전쟁 전에 남부 아가씨에 걸맞은 교육과 귀족들이 누렸던 특혜를 받으며 자랐다. 로티 문이 1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믿음이 신실하신 어머니는 자녀들을 좋은 신앙인으로 키워냈다. 로티의 오빠 토머스와 언니 오리아나는 훌륭한 의사로, 막내 여동생 에드모나는 미 남침례교회가 파송한 최초의 독신여성 선교사 2명 중 1명이다. 로티의 사역은 1872년에 중국선교사로 파송된 동생 에드모나 선교사를 돕는 일부터 시작했다. 1873년, 로티 문은 중국 북부에 도착해 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교사 일보다는 로티는 중국 현지 담당자에게 전도와 교회개척 분야를 희망했으나 그 요청이 거절되자 그는 홀로 핑투로 가서 교회를 개척했
2018년 달력이 이제 한 장만 남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때다. 교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임재하심을 경험하며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교회는 또 상처로 힘들어 하는 자들과 아픔을 겪고 있는 자, 어려움이 해결할 조짐마저 보이지 않는 자를 향해 끊임없는 위로와 격려,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를 향해 손을 내미시고 어려운 자들을 일으켜 세워 세상 권력을 가진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애굽의 압제와 권력에서 해방시키셨고 재산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 드릴 예배에 대해서도 성경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죄인된 자들과 병든 자, 소외된 이웃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몸소 실천했다. 그러면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는 주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실천하기를 명령하셨다. 그 뜻에 맞게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많은 사랑을 나누며 실천했다.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입혔으며 어려움에 처한 자들, 순교의 순간을 맞이하려고 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냈다. 세상이 풍요롭다지만
매년 찬바람이 불어오면 우리 주변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 그리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는 나눔과 돌봄을 위해 언론매체들은 사회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나는 섬김, 나눔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이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내 어머니의 달비(딴머리) 머리다. 지금은 가난이 내게 위대한 선생이 되었지만 유아시절 아버지께서 친구에게 서준 과도한 빚보증 때문에 집과 모든 재산, 가재도구들이 집단리에 의해 모두 경매처분 되어 갑자기 가난이라는 것이 호환마마보다 무섭게 우리 식구들을 덮쳤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부모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게 했던 최후의 끈이 “내 어머니의 달비”였다. 까마득한 기억의 어린 날, 친정어머니께서 큰딸 시집보내면서 반닫이 느티나무 농 밑에 고이 넣어 주셨던 대장장이가 정성껏 만든 까만 가위를 새벽기도 드리고 와서 곱게 갈아 옆에 놓고 어머니께서는 그 일을 하실 때는 꼭, 잠에 취한 어린 나를 깨우셔서 앞에 앉히고 둥근 체경(거울)을 손으로 잡게 하고는 비녀를 뽑은 삼단 같고 칠흑 같은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앞으로 곱게 넘겨 빗으시고 당신의 머리카락을 조금씩 조금씩 여기저기를 잘라내셨다. 그리고 잘라낸 부분이 보이지 않게
아직도 건국일 하나 제대로 통일하지 못하고 둘로 나눠져 대립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길을 잃으며 방황과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주변국을 비롯한 세계는 급변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전쟁터 아닌 전쟁터를 만들며 나라 밖으로 진군하고 있는데 우리는 ‘정저지와’(井底之蛙), 즉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우물 안에서 ‘좌정관천’(坐井觀天)하고 있다. 좁디좁은 우물 안에 앉아 우물만큼의 하늘만을 보면서 하늘이 이러니저러니 한다. 자기 좁은 세계로 하늘을 보며 하늘을 말하는 개구리가 바다를 알리가 있겠는가? 아니 바다에 대한 생각 자체가 있겠는가? 최근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모습이 꼭 우물 안에 앉아 우물만큼의 하늘만 보고 서로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개구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청와대와 정부는 남북문제에 정권을 몰입하지만 남북문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고, 한반도와 세계를 위협한다는 북핵의 해결도 오리무중이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촉발된 한국 경제는 연일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이제 국민 대다수는 서서히 다가오게 될 경제 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들만의 정책을 찬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