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을 앞두고 우리교단이 대한민국 교회사에서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유일한 교단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온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때가 도래했다.
일제의 서슬이 시퍼렇던 1942년 6월 초 함경남도 원산 헌병대 심문실에서 한 일본 헌병이 “천황 폐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멸망하는가?”라고 물을 때 동아기독교회 5대 총회장인 이종근 목사는 “성경에 그렇게 명기(기록)돼 있다”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목사의 답변이 당시 전체 침례교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일제는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의 전신인 동아기독교회의 모든 재산을 몰수해 버렸고, 1944년 5월에는 일방적인 교단 폐쇄 명령을 내려 침례교인의 반발을 샀다. 우리교단 소속 목사 32명을 ‘불경죄’ 등의 죄목을 씌워 감옥으로 보냈다. 일왕에 대한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데 따른 혹독한 대가의 결과였다. 침례교회는 1940년에 이르러 울릉도 등 국내와 만주간도, 그리고 시베리아 등지에서 교세를 확장해 큰 부흥을 이뤄냈다.
그러나 일제의 간섭으로 갈수록 국내사정은 여의치 못해 ‘대한기독교회’의 ‘대한’이란 말이 빌미가 되어 ‘동아기독교회’(1921) ‘동아기독대’(1933) ‘동아기독교’(1940)로 교단 이름이 계속 바뀌었다.
한국침례교의 선구자이자 독립선교사인 펜윅(Malcolm C. Fenwick)은 끝내 일제에 직접 굴하지 않고 버티다 신사참배가 강요되던 1935년 원산 자택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곳에 안장됐다. 해방 뒤, 교회재건에 이어 1949년 교단명이 ‘대한기독교침례회’로 변경됐다.
한국의 장로교단 등 주요교단들은 일제의 탄압에 굴복해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단지 주기철, 손양원 목사 등 일부 목회자들만 개인적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했을 뿐이다. 영화 배급사 파이오니아21은 지난 2월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성탄절 특집으로 ‘KBS 1TV’에서 방영돼 1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일사각오 주기철’을 영화화해 오는 3월 17일 개봉한다고 밝혔다.
손양원 목사와 함께 한국 기독교 내에서 대표적 순교자로 꼽히는 주 목사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다 광복을 1년 앞두고 감옥에서 순교했다.
이를 보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야 하겠지만, 그래도 일제 강점기 시절, 신사참배를 거부한 우리교단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교회사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사실 주기철 목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한 일이 교회사와 세상 언론에 부각될수록 우리교단은 신앙의 선배들에게 진 사랑의 빚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교단 원로들이 한목소리로 “침례교단이 만들어 부른 찬송가(보훈찬미) 가사 가운데 하나님을 높이는 내용에 대해 꼬투리를 잡으면서 일제의 혹독한 탄압이 시작됐다”면서 “이에 굴하지 않았던 침례교단 선배 목사들의 일사각오(一死覺悟·죽으면 죽으리라) 신앙을 다시 한 번 되새길 때”라는 목소리가 전국의 침례교회에서부터 전해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우리교단 제105차 정기총회는 5월 10일을 신사참배 반대를 교단역사로 기억하자고 결의한 바 있다. 우리교단은 침례교의 신사참배 거부에 대한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교단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이와 함께 믿음의 선진들이 복음의 피로 지킨 우리교단이 이단·사이비 집단들이 침례교회를 사용함으로써 비슷한 이름 때문에 교단 이미지가 실추되는 등 선교 및 전도 활동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는 교단 총회차원에서 침례교회와 성도, 나아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침례교를 바로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 작은 첫걸음으로 모든 침례교인들이 앞장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유일한 교단’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캠페인을 전개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