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통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를 보면서 나라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국민이 되어서 내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하겠지만 그냥 흔히 하는 말대로 나라 걱정이 아니라 지금의 이 나라를 덮고 있는 코로나19라고 하는 신종 바이러스의 악한 기운 때문이다. 중국 우환으로부터 침투한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공포로, 특히 대구에서 소위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신천지에 의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지난 2월 24일 오후 5시를 기점으로 확진환자가 833명을 넘어섰으니 오늘밤 얼마나 더 늘어날지 심히 두렵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분의 창조주 되심과 섭리, 그리고 심판주 되심을 믿는다. 또한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며 절대 주권자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 또한 성경에 기반을 둔 신앙이다. 그런 맥락에서 ‘온역’, ‘전염병’의 문제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많이 사용한 이야기로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는 죄인들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전염병으로 징벌하실 때, 정말 무고한 백성들
나는 지난해 가을에 안검하수수술(처진 눈꺼풀을 쌍꺼풀을 만들어 끌어올리는 수술)을 했다. 50대가 될 무렵부터 서서히 처지기 시작한 눈꺼풀이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처지고 미관상으로도 피곤하고 졸린 것처럼 보여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라는 염려 섞인 말을 듣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그대로 두면 시력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의사의 권고를 받고 수술을 결심한 것이다. 수술을 받고 부기가 어느 정도 빠진 후 사람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반응을 받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목사님 젊어지셨네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30대 중반인 36살 즈음에 이미 그냥 젊어졌다는 정도가 아니라 회춘했다는 말을 들은 경험이 있다. 30대 초반에 발병한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오진해(여러 병원과 의사들이 진찰과 검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5년 넘게 치료를 못하고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간이나 신장 같은 장기의 기능이 떨어져 온몸이 붓고 혈색은 누렇고 근육은 힘을 잃어 공을 차도 70 노인이 차듯 힘이 없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피부는 거칠어졌다. 그렇다고 앓아눕거나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목회는 계속했다. 그러다가 제대로 약을 먹고 좋아지니 지방회 동료
1990년대생인 아들이 며칠 전에 요즈음 핫한 책이라며 한 권의 책을 선물하였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다. 80년대생인 저자가 대기업 인사팀에서 90년대생들을 경험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과 일하는 방법 등을 이해하고 잠재력을 끌어내 공존하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저자는 90년대생들을 이해하기 위한 그들의 특징을 “간단하게, 재미있게, 정직하게”라는 3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그와 유사한 3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은 복음을 간단하고 쉽게 전하셨다. 90년대생들은 기성세대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말을 줄여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줄임말은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더욱 진보한다. 낱말을 줄이다가 합성어로 그리고 초성으로 더 나아가 기호로 간단하게 줄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시험하는 율법사에게 십계명을 두 계명으로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인데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셨다(마 22:37~40). 또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쉽게 말씀하셨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이 가득합니다. 윤동주의 시구가 읊어지는 개천절 날 오후 시골에서 택배로 보내온 푸성귀가 있어서 바리바리 싸들고 근처에 사는 딸네를 갔다.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 과일이랑 아이들에게 필요한 간식거리가 될 만한 식료품을 이것저것 바구니에 담다보니 분량이 꽤나 많다. 양손에 들기에는 조금 많은 분량으로 늘어나 종량제 봉투 두 개와 꽤 묵직한 박스가 하나가 되었다. 딸내미네 아파트 주차장에 가서 전화를 했더니 고 3짜리 외손녀가 전화를 받는다. “엘림아 할아버지가 짐이 좀 많아서 그러는데 주차장으로 잠간 내려와 줄래?” “네” 한 참을 기다리니 둘째 외손자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다. 중3인데 몸무게 세 자리수로 표시되는 거구다. “할아버지 옷을 갈아입고 오느라고 늦었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것은 없는데, 할아버지는 엘림이가 내려 올 줄 알았는데 아론이가 나왔구나.” “네 할아버지, 누나가 저보고 할아버지 주차장에 오셨다고 가서 짐 받아오라고 해서 제가 왔어요. 이리 주세요.” 외손자와 짐을 나누어 들고 딸네 집에 가서 한 참을 있으려니 아이들 넷이 다 들어왔고 조금 더 있으려니 출근했던 딸 내외도 퇴근해서 왔다…
절대적 지도력을 행사했던 모세가 죽은 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가 가나안 입국과 정착을 하는데 첫 번째 관문이었던 여리고 전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큰 전투였고 사건이었다. 그 여리고 전투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돌고 또 도는 칠일간의 워킹 후에 제사장의 나팔 소리를 신호로 온 백성의 함성으로 그 성이 무너졌다는 기적이다. 그런데 여리고 전투에서 그것과 양극적으로 비교되는 또 다른 사건이 바로 아이성 패배의 사건이며, 이 패배의 원인이 바로 ‘아간’ ([עָכָן] 아칸-Akan 은 ‘괴롭히는 자, 근심이나 두통거리’를 의미한다).이라는 한 사람이 탐욕으로 시날산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 되는 금덩이를 탐내어 자기의 소유로 감춘 것이었다. 이 아간의 사건은 그가 감춘 금, 은 시세의 가치나 아간의 목숨에 관한 문제보다 거룩한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완수해야 할 소명과 존재감이 개인의 사사로운 탐욕으로 인하여 좌절될 수 있다는 자각과 여운을 남긴다. 동시에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호흡처럼 붙어 다니는 소유욕에 대한 집착이…
나는 가끔 명품과 명문가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때로는 교회 지체들이나 또 아내까지도 우리 목사님은 명품 좋아하고 명문가 좋아해라고 말할 때면 어의가 없어진다. 아무리 살펴봐도 내 소지품들은 그냥 평범하고 명품이라고 굳이 내세울 만한 것은 명함케이스 하나다. 평생에 명품이란걸 가져본 적이 없어서 나는 분명히 명품 애호가는 아니다. 물론 명품을 구입할 경제적 여력이 있지도 않고 명품을 구입하는데 돈을 쓰고 싶지않다. 그리고 나는 명문가 자식도 아니고 명문가가 되보려 한 적도 없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런 오해를 받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평소에 명품과 명문가 애찬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명품이란 무엇일까? 한 물건이 명품으로 인정받는 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이것은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구촌에 사는 어떤 민족도 이 물건에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을 소장해도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용도가 이와 같던지 비슷해도 언제나 비교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물건을 명품이라고 할 때 공감이라는 필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어릴 때 어른들이
“여보 저거 임신한 것 같지 않아요?” 예배당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아내가 놀란 듯 외친 말이다. 그 고양이는 동네 혼자 살고 있는 어느 할머니가 기르는 고양이인데 먹이가 부족한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시골인 이곳은 음식 찌꺼기를 두엄 칸에 버리거나 한 쪽에 구덩이를 파고 버리는데 교회 정원 한편에 있는 구덩이에도 자주 찾아오는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눈에 부른 배가 보인 것이다. 마침 집에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연어 통조림이 몇 개 있었는데 그것을 주자는 말에 캔을 따서 주었더니 허겁지겁 먹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집에는 안 가고 마당 한 구석으로 가 퍼질러 누워버렸고 결국 연어 통조림을 먹는 며칠 동안 집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딸아이가 고양이 준다며 사료를 사왔고 고양이는 그것을 얻어먹으며 제 집인 양 현관 앞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했고, 그 소문을 들은 주인 할머니는 목사님 댁에서 잘 얻어먹고 살라 하며 찾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택 뒤꼍에 있는 심야 보일러 저수통 근처에서 아주 작게 ‘낑’하는 소리가 들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보니 고양이 새끼 네 마리가 거기에 있었다. 그 소식을 전해
산상수훈의 내용 중 마태복음 6장에서, 주님께서 당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며 의식과 형식에 치우쳐 오직 사람들이 보아주기를 바라고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사거리나 길거리에서 구제를 하거나 기도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경계를 시키시는 한편,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외식과 위선으로 단정하시고 본받거나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려는 그러한 행동에 대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더욱 실감하게 하시려고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2,5,16)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까 그들이 행하는 그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일이 틀림없는데, 하나님께 받을 상보다, 먼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려고 하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보다 사람을 먼저, 그리고 사람을 더 의식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이 되어버려서 하나님이 따로 갚아 주셔야 할 상이 없다는 것이다. 주님이 직접 하신 이 말씀을 주님의 임재 앞에서 생각해 보면, 오늘 이 시대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전반적인 면에서의 모습을 생각해 보지…
최근 들어 매일 순간순간 습관처럼 읊조리듯 묵상하는 말씀이 요엘서 2장28절 말씀인데 이 말씀이 왜 나를 이렇게 매료시키는가?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들은 이상을 볼 것이며”라는 이 짧은 두 문장은 내 가슴을 뛰게 한다. 늙은이들이 꿈을 꾸며 살아가는 세상, 젊은이들이 이상을 바라보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신나는 세상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최근 우리네 삶들을 돌아보면 너무 많은 자조적인 말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늙은이와 젊은이들의 꿈과 비전을 억압하는 용어들이다. 이런 말이 있다. “당신 참 젊어 보인다 라고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은 이미 늙은 것을 기억하라.”고 했지만 늙은이가 되는 기준이 머리털의 희고 검음의 차이인가? 하지만 그 기준은 꿈을 꾸지 못하고 “과거만 회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늙은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이상을 잃어버린 순간 그들은 이미 정상적 젊은이라고 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적 현상이다. 이 현상에 그리스도인들이 무비판적으로 무임승차하고 있지 않은지 묻고 싶다. 늙은이를 꿈꾸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늦둥이로 저희 가정에 주신 아들이 올해 열여덟 살 고등학교 2학년이 됐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던히 잘 자라 주던 아이가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학교생활을 힘들어하고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에게는 말을 못하고 제 형에게 전학을 시켜 달라고 하면서 그간의 힘들었던 고층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기숙사형 학교로 어렵게 전학을 시켜줬다. 소수의 학생을 강도 높게 교육하는 규율이 엄격한 학교라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다짐받고 해 줬는데 이번에는 다시 원래 학교로 역 전학을 시켜 달라는 것이다. 철없는 아이의 생각이라지만 어디 세상일이 어떻게 제 마음대로 된단 말인가? 오늘은 부끄럽지만 곤히 잠자고 있는 아들의 방에 들었다가 책상 위에 써 놓고 하나님 앞에 떼를 쓰며 기도한 기도문이 있어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한 페이지를 올려본다.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저를 다시 OO고등학교로 올 수 있도록 간곡히 요청드리면서 다짐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너무 멀리 돌아온 시간이 아쉽고 후회가 들어 자꾸 눈물이 납니다. 제가 처음 우리 학교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부모님 연세가 지긋하시기에 제가 열심히 공부해 자립해서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싶은…
이웃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로부터 추천사를 써 달라는 전화가 왔다. 목회 초년생이던 전도사 때 만난 친구인데 서로 주고 받는 것 없는데도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이다. 그동안 목회하면서 설교했던 원고를 정리해서 책으로 출판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나니 이 친구에게 있었던 일화가 생각이 난다. 내가 지역에서 기독교 연합회 대표회장을 하던 해에는 전국적으로 자치단체장 선거가 있었다. 선거철이 되면 음으로, 양으로 무슨 행사들이 많이 있는 법. 그 중 하나가 책을 출판하며 기념하는 소위 북 콘서트라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할라치면 종교계 각 단체장을 의례 끼워 넣기를 하는데 기독교계 대표회장인 내게 순서에 축사를 해 달라는 초청을 보내 왔다.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자동차를 운전해서 행사장으로 근처까지 갔는데 갑자기 가슴에 심한 통증으로 조여오고 호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모 대학의 체육관을 빌려 하는 행사인데 이미 군중들은 체육과 밖까지 몰려들었다. 간신히 체육관 주차장까지 도착하니 조금 호흡에 안정이 오고 통증이 가라앉는 듯 했다. 그래서 무사히 행사하는데 순서에 차질이 없도록 축사를 하고 자리에 돌아와 잠간 행사를 지켜보다가 양
매년 찬바람이 불어오면 우리 주변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 그리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는 나눔과 돌봄을 위해 언론매체들은 사회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나는 섬김, 나눔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이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내 어머니의 달비(딴머리) 머리다. 지금은 가난이 내게 위대한 선생이 되었지만 유아시절 아버지께서 친구에게 서준 과도한 빚보증 때문에 집과 모든 재산, 가재도구들이 집단리에 의해 모두 경매처분 되어 갑자기 가난이라는 것이 호환마마보다 무섭게 우리 식구들을 덮쳤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부모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게 했던 최후의 끈이 “내 어머니의 달비”였다. 까마득한 기억의 어린 날, 친정어머니께서 큰딸 시집보내면서 반닫이 느티나무 농 밑에 고이 넣어 주셨던 대장장이가 정성껏 만든 까만 가위를 새벽기도 드리고 와서 곱게 갈아 옆에 놓고 어머니께서는 그 일을 하실 때는 꼭, 잠에 취한 어린 나를 깨우셔서 앞에 앉히고 둥근 체경(거울)을 손으로 잡게 하고는 비녀를 뽑은 삼단 같고 칠흑 같은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앞으로 곱게 넘겨 빗으시고 당신의 머리카락을 조금씩 조금씩 여기저기를 잘라내셨다. 그리고 잘라낸 부분이 보이지 않게
신학대학 3학년 초쯤의 일이다. 어느 날 커피숍이었는지 식당이었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옆자리에 앉은 내 또래의 대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 내용이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한 것 같은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들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 흔히 쓰는 용어처럼 사용했기에 무슨 전문 학술용어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나는 내가 무식한 것처럼 느껴져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생 시절까지 내 또래에서 나보다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물 안 개구리의 오만함이었지만 말이다. 그 때부터 나는 사회과학 전문서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얼마나 세상에 대해 무지했는지를 알아 가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신학대학에 진학한 뒤로 학교와 교회 생활이 전부이다시피 했기에 학교공부와 성경공부, 신앙서적 읽기 외에는 눈 돌릴 틈(?)이 없었다. 1학년 때 서양문화사 교수(외래강사)가 침신대 학생들은 책은 많이 읽는 것 같은데 너무 기독교 서적만 읽는 것 같다며 다양한 독서를 권했었지만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지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졸업을 앞두고 학창시절을 그동안의 추억을 회고하는 자리에서 어느 해 수학여행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한다. 저녁에 숙소에서 아이들이 잠옷으로 갈아입고 함께 재미있게 어울려 노는 자리에서 짓궂은 한 아이가 서있는 한 아이의 바지를 잡아 내렸다. 소위 깝질을 벗긴 것이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그만 이 아이는 보여주기 부끄러운 부분까지 보여주고 말았다. 그 순간 아이들을 박수를 치며 웃었고 어떤 아이들은 “찍어, 찍어”를 외쳤고 동작 빠른 아이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다. 바지가 벗겨진 아이는 수치감 때문에 울어버렸고 반 아이들은 우르르 찍은 사진을 보느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 일은 담임 선생님이 그 방으로 들어와서 장난을 친 아이가 울고 있는 아이에게 사과하게 하고 사건은 일단 마무리가 됐다. 그때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장면을 상기시킨다. 그때 아이들이 “찍어, 찍어“를 외칠 때 큰 소리로 “안 돼 찍지 마라! 찍지 마라”라고 외친 두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이 찍힌 사진을 보려고 우르르 몰려들었을 때도 그 아이는 “지워, 빨리 지워”라고 외쳤다. 사과한 아이는 사과를 한 것이 아니다. 그 아이의 사과는 자신
나 혼자서 그 길을 가네 나 혼자서 가야 하네 누가 대신 가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가야 하네 나 혼자서 십자가 지네 나 혼자서 져야 하네 누가 대신 져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져야 하네 나 혼자서 죽어야 하네 나 혼자서 죽어야 하네 누가 대신 죽어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죽어야 하네 나 혼자서 심판대 서네 나 혼자서 서야 하네 누가 대신 서 줄 수 없네 나 혼자서 서야 하네 시인은 1908년 평북 박천 출생으로 평양 서문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을 떠나 경도여전과 동경 가정학원 연구과를 수료했다. 이후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와 선천보성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일제의 신사참배의 맞서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해방후 도미해 노스웨스턴대학과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를 수학했고 김동명 목사와 결혼 후 LA한인교회를 개척하며 왕성한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1997년 10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교회는 대면예배의 제한과 기타 모임 금지라는 철퇴를 맞았다. 다수가 모이는 시설이라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교회는 철저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어느 기관 못지 않는 철저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 옮겼다. 실제 신천지를 제외하고 종교시설 감염자 비율은 8.2%라는 최근 통계도 나오면서 정부는 “교회의 대면 예배를 통한 감염은 거의 없었다. 방역수칙을 준수한다면 대면예배 자체가 감염위험도가 높은 행위가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교회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감독은 여전하다. 매주일 시도공무원들의 교회 방문은 이제 일상적인 상황이다. 방역지침 점검을 내세우며 교회를 방문해 인원을 파악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점검하는 것에 대해 교회를 철저하게 이 지침을 준수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대면모임 비율은 수도권은 20%, 비수도권은 30%이며 예배 이외의 모든 모임은 일체 금지된 채로 1년의 시간이 지나왔다. 그동안 정부의 방역지침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소상공인과 주요 업종별 관계자들은 헌법소원과 소송, 시위, 공청회를 거치면서 해결책을 찾았다. 집단감염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이면 어김없이 정부 측의 대
교단발전협의회는 총회 회기 중점 사업을 함께 논의하고 현안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이다. 특별히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오는 2월 23일 열린다. 이날 교단의 발전과 코로나 극복을 위한 개교회와 지방회의 목소리를 청취할 수 있는 자리이기에 이번 모임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10차 회기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역은 바로 다음세대 부흥과 총회 규약 준수, 시대적 변화에 따른 기관의 혁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미 다음세대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안 제시는 미흡한 것이 현실이었다. 이번 회기도 다음세대육성위원회를 구성해 교단을 대표하고 다음세대 사역 중심의 기관, 단체들이 연합하고 있다. 이 위원회가 추구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다음세대를 이끌어갈 사역자를 양성하고 교회에서 다음세대가 정착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총회는 개교회의 교세보고서를 바탕으로 다음세대의 주역인 교회학교의 현황을 파악해 현 침례교회의 교회학교 상황을 분석하고 연구해서 대안을 찾고 이를 중점사업에 담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총회는 다음세대육성위원회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관련 기관과 단체, 교회
최근 들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감소하던 와중에 터진 IM선교회 대규모 감염 사태는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한국교회의 실책이라 말할 수 있다. 혹자는 교회가 아닌 비인가 국제학교의 일을 왜 한국교회에 뒤집어씌우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IM선교회 대표가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교회를 대상으로 교회와 함께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대표 선교사가 코로나19 시국에서 교회들을 대상으로 했던 간증들이 알려지면서 비판의 화살은 더욱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본인이 이렇게 돌아다니고 아이들에 2000명씩 모이는데도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과학적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이라는 발언은 마치 음주운전자가 “내가 술을 마시고 여러 번 운전을 했지만 한 번도 사고가 난 적 없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격이나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그동안 본지는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어떻게든 힘이 되고자 했다. 교회를 상대로 한 방역지침의 형평성 문제 등에 동의하며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고자 힘썼다. 또한 방역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교회들의 소식과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섬김의 본이 되는 교회들의 이야기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19 국내 최초확진자가 나온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코로나 위기는 진형행이다. 바이러스 사태가 이렇게 길어지는 이유는 급속한 전파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어려움도 있지만 정부의 방역지침을 무시하고 위반하면서 집단감염 등의 확진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코로나 방역지침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은 코로나 경제 침체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으며 최근 코로나 이후 일자 리를 잃고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200만명을 돌파한 상황이라고 한다. 교회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 본연의 대면 사역은 거의 중단 되고 비대면 사역 중심으로 교회사역과 목회사역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계속 연장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으로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는 교회 폐쇄까지 고민할 정도로 목회의 위기 속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교단도 이러한 코로나19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새로운 목회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재정적 지원 보다 보다 실질적으로 비대면 사역을 돕고 실질적이며 장기적인 재정적 지원책도 마련하고 있다. 이에 교단을 대표하는 교회들이 함께 모여 지난해 각 교회별 성탄헌금을 모아 도움이
지난 한 주간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설상가상 갑작스런 폭설로 인해 퇴근길 발이 묶여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혹한은 비단 날씨 뿐만이 아니었다. 새해 벽두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와 희망과 기대가 가득하기도 했지만 안 좋은 소식들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했다. 확진자 수가 좀처럼 감소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와 관련된 확진 소식이 어김없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정부가 교회를 말살하려 한다며 방역지침을 무시한 채 항의집회를 열겠다는 어느 교회의 목회자를 비롯해 모 선교단체는 대규모 감염사태를 일으킨 후 앞에서는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시설 폐쇄 명령서를 부착하기 위해 센터를 방문한 방역당국 사람들과 몸싸움까지 하고 저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이 선교단체는 대표의 입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음모론이 자주 언급됐다는 제보까지 더해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 입양아가 양부모의 학대 끝에 죽음에 이른 사건도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필이면 현재 용의자로 지목된 양부모 모두 한국교회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어서 가뜩이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갈수록 악화되던 교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