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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침례교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 소천




미국 남침례교 소속의 복음전도자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99세의 일기로 주님 품에 안겼다. 


암과 폐렴 등의 질병을 앓아 온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 2월 2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시골마을 몬트리트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940년 플로리다 성경대학을 졸업하고 남침례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43년 일리노이주 휘튼대학을 졸업한 후 웨스턴스프링스 제일침례교회 목사로 시무했으며 국제십대선교회(YFC)에 참가하면서 복음전도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70여년간 전 세계 180여개국을 돌며 2억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947년 로스앤젤레스 전도대회를 통해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렸으며, 1954년 영국 런던 전도대회를 성황리에 치르면서 세계적인 부흥사로 떠올랐다.


그레이엄 목사는 국내에서도 1952년 한국전쟁 당시 방한해 서울과 부산에서 집회를 가졌고, 1956년에는 8만여명의 기독교인이 모인 가운데 복음 집회를 가졌다. 1973년과 1980년에도 한국에서 대규모 군중이 모인 가운데 설교를 했고 1984년 열린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 선교대회’에도 참석해 한국교회 부흥에 큰 힘을 보탰다.  그는 또 1992년과 1994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범영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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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