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씻을 수 없는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나타났고, 뒤이어 베냐민 출신 세바도 반기를 들었다. 다윗에게는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온갖 수치와 모욕, 조롱이 뒤따랐다. 그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인고의 날들이었을 것이다. 사무엘하 21장을 보면, 그러한 혼란정국이 수습되고 다윗의 이스라엘 왕국이 다시금 안정을 되찾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었고 3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다윗은 다시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고, 백성들은 다윗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끝나지 않았다고 여기며 그를 향한 비난과 원성이 되살아났을 것이다.
비통한 심정으로 다윗이 주님께 나아가 기근의 원인을 구할 때, 3년이 지나서야 하나님은 사울이 흘린 피로 인한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다윗은 사울에게 죽임을 당한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그들의 요구대로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내어주고 기브온인들은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에서 그 일곱 명을 목매달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 바로 비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근의 원인을 알고 그 문제를 수습했음에도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때 등장하는 한 여인이 있다. 바로 리스바(Rizpah)다. 이 여인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했다.
사울의 후궁이었던 그녀를 이스라엘 군대장관 아브넬이 범했고 이후, 다윗에게 속한 여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3년 기근의 시기에 그녀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이 사울의 죄에 대한 연좌제로 죽임을 당하는 참담한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녀는 두 아들이 메 달린 곳에서 굵은 베를 펴고 무언의 항거, 탄원에 들어갔다. 그 기간은 무려 7개월 가까이 됐다. 그런데,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
기근의 원인이 제거되었을 때 바로 비가 올 것으로 기대했던 그 백성들은 다시금 다윗의 처사가 사울의 씨를 말리려는 하나의 술책이었다고 비난을 쏟아 부었을 것이다.
다윗에게는 또 다시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때, 다윗이 리스바의 탄원의 소식을 듣고 그녀의 두 아들의 시체를 사울의 뼈와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에 정성껏 장례를 치러줬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즉, 그때서야 비로소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나님의 마음이 다윗의 안위보다 정국의 안정보다 가련한 한 여인에게 향하셨던 것이다. 그 여인의 피끓는 심정이 하늘에 닿았다. 그래서 그 대의가 잠정보류된 것이다.
남북한의 관계가 난항을 겪다가 평창동계올림픽 북한선수단 참여 및 응원단, 예술단, 고위급대표단 참여를 기점으로 대화분위기가 조성되고 급기야, 지난 6일 대북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났다.
특사단은 돌아올 때 여섯 가지 남북합의조항을 가지고 왔는데, 그 첫 번째 항목이 4월에 남북정상회담 개최이다. 그 장소는 매우 파격적이게도 판문점 남측지역인 평화의 집으로 김정은이 남한 땅을 밟게 된다.
특사단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은 대미특사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고, 5월 중, 북미정상회담 개최라는 확약도 받아냈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남북관계 개선 및 북미정상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대북, 대미특사인 서훈 국정원장의 기내 인터뷰가 10일 유력일간지에 실렸다. 그의 답변은 매우 명료했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사울자손을 목매달은 다윗의 말처럼 설득력도 있었다. 어쩌면 그의 말이 난국을 타개할 대의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필자로 하여금 리스바를 보게 하셨다. 그로인해, 오늘날의 리스바가 누구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과연 오늘날 리스바는 누구인가? 저 북녘 땅에서 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는 가엾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아니겠는가. 특히, 오늘도 애절함으로 하늘을 향해 탄원하고 있는 저 북한지하성도들이 아니겠는가.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리스바로 보신다면 그들의 통곡과 탄원은 그 어떤 대의보다 앞설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의 대의보다 리스바의 탄원에 집중하셨던 것처럼. 얼마 전, 연세대쪽에 갔다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층 복도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그때 아래층에서 한 여인의 구슬픈 곡소리가 들려왔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한 맺힌 통곡이었다. 애잔함이 밀려들었다. 지금도 저 북녘땅에는 리스바들의 통곡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절규를 듣는다면 우리의 가슴은 다 녹아져 내릴 것이다. 날마다 하늘에 맞닿아있는 그들의 눈물과 탄원을 하나님은 결코 외면치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들의 심정과 통하며 이 땅의 리스바로 하나님 앞에 일어나자.
똑똑한 기도가 아닌,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는 말씀대로 그들의 아픔과 상통하며 주님께 나아가자. 진정, 우리 안에 ‘리스바탄원기도회’가 일어나야할 때이다. 꼭 기억하길 바란다. 다윗의 대의가 이루어졌지만 비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리스바의 무언의 항거는 결국, 훗날 연좌제 및 시체처분에 대한 이스라엘 율법을 바꾸게 만들었다.
다가오는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
다윗이 그렇게 오매불망하며 기다렸던 ‘비’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바로 ‘통일’이다. 이 통일은 어떤 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저 북녘 땅 리스바들의 탄원이 상달될 때 도래할 것이다.
정교진 소장
침례교통일리더십연구소 소장
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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