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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 양무리를 돌보고 화합하며 나아갑시다”

인터뷰 / 하늘비전교회 오관석 원로목사

 

● 목사님은 목회를 시작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 지금 67년 동안 목회하고 있습니다. 25살에 전도사가 돼 가지고 신학교에 입학해서 지금 92살이죠.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지금도 설교를 쉬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5번 예배를 드리는데 10시 예배에 내가 설교를 하죠. 성도들이 한 400~500명 참석하는데 지난 주간에는 시험에 대해서 설교를 했어요. 시험이 무엇이냐? 그러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시험은 실력을 검증하는 테스트를 말하죠. 그것이 세상의 시험이고, 교회의 시험은 뭐냐? 유혹을 말합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시험은 좋은 일 때문에 주님과 멀어지는 그 상태를 시험이라고 말합니다. 


설교 준비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말씀을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마태복음 5장을 설교 하기로 본문이 정해지면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님 당시에 나라의 형편이 어떻고 예수님의 형편은 어떻고, 따라다니는 제자들의 형편은 어떻고, 그런 것을 묵상을 해가지고 연극 제목을 만드는 것이죠. 그래가지고 그걸 이야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이 이러하고 저러하다는 식으로 영화처럼 이야기식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난 후 이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느냐, 지금 우리나라는 어떠하냐, 여기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실 것 같은가? 그런 것을 생각해 봐요. 이렇게 설교를 하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머릿속에 딱 기억이 박힌단 말이죠. 지금도 집사님들이 지난 주일에 설교한 말씀을 기억하고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해요.


● 하늘비전교회가 어떻게설립됐는지 궁금합니다.
= 1966년 3월 6일에 서울 남산에서 교회를 시작했죠. 옛날에는 남산에 중앙방송국이 있었어요. 그 중앙방송국 밑에 드라마 센터가 있어요, 그 드라마 센터가 토굴 속에 있었죠. 그래서 그 토굴을 장소로 얻어가지고 거기서부터 남산제일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러다가 1973년 신설동으로 새성전을 지어 이전을 했죠. 이름은 서울중앙침례교회라고 바꿨죠. 이때 주님께서 큰 은혜를 부어주셔서 교회가 날이 갈수록 성장을 했죠. 더 이상 몰려드는 성도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잠실에 새성전을 짓기로 해서 1985년 지금의 자리로 오게 됐습니다. 2010년도에는 교회명을 하늘비전교회라고 변경한 후 오늘에 이르게 됐죠.

 


● 하늘비전교회의 자랑할 만한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나요?
= 가장 큰 것은 바로 0시 예배, 그러니까 세계최초의 송구영신예배를 시작한 교회입니다. 왜 송구영신예배를 시작하게 됐느냐고 한다면, 사람들이 새해에는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며 새해인사를 하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첫 시간을 좋아한다고 말씀을 드렸죠. 새해의 첫 시간, 그러니까 0시 예배에 하나님 앞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라는 점을 일깨운 것이죠. 사실 0시 예배는 태성교회에 있을 때부터 시작했는데 서울에는 0시 예배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교회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0시 예배를 드리고 그 영향이 점점 널리 퍼져나가서 이제는 0시 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회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죠. 


철야예배도 서울에서는 흔치 않았어요. 그것도 우리가 시작을 하니까 한 2~3년 후에 순복음교회에서 철야예배를 하더라구요. 그러니 0시 예배와 철야예배는 우리교회가 근원이라 할 수 있죠.


또 하나 자랑할 만한 것이 전도만 하는 전도 전도사를 바로 우리 교회에서 시작을 했어요. 우리 교회에서 그때 매주 한 50명 이상씩 새신자가 모일 때였는데 여전도사들 한 20명 정도를 전도 전도사로 세워서 전도를 하도록 했어요. 그 전도 전도사는 신학교를 나왔거나 안 왔거나 상관없고 전도만 잘하면 되는 거였어요. 신학교를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전도사로 삼은 것 역시 우리 교회가 최초였죠. 어느 교회도 그렇게 과감하게 전도사를 세우지 못해요. 신학교를 나왔건 나오지 않았건 우리 교회에서 성장해가지고 아주 일을 무지막지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 정말 목사가 눈빛만 보내더라도 알아듣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뽑아서 전도 전도인를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 교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목사님은 지금까지 교단 총회장도 하시고 교단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굉장히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교단적으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 많죠. 가장 큰 것은 화합이라고 생각해요. 60년대에 우리 교단이 대전파와 포항파로 갈라졌다가 겨우 통합을 이뤘잖아요. 교단 분열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슬픈 역사예요. 나는 우리 후배들이 다시는 이러한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교단이 갈라져 있다가 통합 운동을 해가지고 서울침례교회에서 통합 총회를 열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김용해 목사님이 총회장을 하시고 내가 부총회장을 했죠. 그 후에 내가 총회장을 할 때 교단 교회 전체가 약 500개였어요. 총회장이 되기 직전에 계룡산에 가서 은혜를 받고 그때 성령에 불을 받아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부흥회를 하고 그러면서 교단을 통합 시켰어요. 대전이고 포항이고 가리지 않고 집회를 하니 뭐 하려고 쪼개져있냐 합해야 하지 않느냐 해서 지금처럼 하나가 될 수 있었죠. 지금은 뭐 그렇게 옛날처럼 서로 싸움하는 건 없잖아요. 갈등은 서로 있겠지만 그렇게 쩍 갈라져서 다투고 그러는 건 지금은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가슴 아픈 것은 자랑스러웠던 부산 침례병원을 그냥 다 뭉개버리고 만 것이라 할 수 있죠.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고 선교사들이 와서 만들어준 것을 유지 못하고 없어진 것이 천추에 한으로 남습니다. 교단 목사님들이 어떻게든지 해서 부산침례병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살려놨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겁니다. 신학교도 제대로 가야할 텐데 기도할 뿐입니다.

 


● 지금 코로나가 이제 3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하늘비전교회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었나요?
= 3년 동안 모임을 못하고 그랬는데 습관이 있잖아요. 3년 동안 모이는 것을 안하니까 내가 볼 때는 한 500명 이상 출석이 지금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코로나가 그렇게 있었는데도 새벽 기도를 그치지 않았거든요. 새벽에는 누가 와서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새벽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은 거죠. 내가 볼 때는 영적으로는 죽지 않은 것 같아요. 숫자적으로는 감소가 됐지만 철야기도도 하고 새벽 기도도 하니까 교인은 줄었을지 모르지만 아멘 소리는 옛날이랑 비슷한 상황입니다.


●후배 목사들에게 권면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 양무리의 형편을 잘 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언 27장 23절 말씀처럼 양무리를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가끔 들이받는 교인도 있는데 그런 교인들에게 마음을 두고 잘 쓰다듬으면 교회의 마지막 충성된 일꾼으로 성장하는 것이지요.
나는 청주에 상업학교를 나왔어요. 한 반에 50명정도 되는데 그중 30명 정도가 은행에 들어갔죠. 졸업 후에 나는 전도사 일을 하면서 사례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지점장이 됐죠. 그때 나하고는 천지차이였어요. 그런데 지금 동창들과 비교해 보면 세상것은 다 헛되고 헛된 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헛된 것이 아니기에 목회하는 내 모습이 가장 복된 인생이라는 것이죠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괴롭고 힘들지만 십자가를 붙들고 참아라는 것입니다. 그냥 힘들고 괴로워도 원망하지 말고 십자가를 붙들고 참으면 어떻든지 십자가 밑에 그늘 아래가 제일 살 만해질 것입니다.

대담 강형주 사장
정리 범영수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