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토브’는 오바댜, 하박국, 학개를 제외한 구약의 모든 책에서 등장한다. 언어의 다양성 측면에서 ‘토브’는 매우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용어가 다방면에서 사용되는 만큼, 그 번역 또한 다양하다. ‘좋다, 아름답다, 선하다, 의롭다, 복되다, 행복하다, 기쁘다, 은혜롭다’ 등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언어의 특성을 살펴서 구약성경은 다양한 신앙의 표현으로 지혜, 언약,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또는 인간과의 관계 상황, 왕의 은총을 표현하는 의지, 사법적인 규칙과 제도, 경건성 등을 표현하는 글 속에서 친밀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토브’는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를 가장 깊고 풍부하게 표현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생태계에 대해 토브는 하나님의 존재를 내포한다. 하나님은 창조의 주체이며 동시에 창조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는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 존재는 역사의 시작이며 끝이다. 모든 존재는 그 주체가 허락해 발생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창 1:3). 창조의 세계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다. 창조가 존재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은 흘러간다. 성경에서 창조는 7일의 시간 구조로 표현한다. 이 구조는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신앙의 세계다. 그 신앙의 시선은 세계를 향해 매일매일 반복된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는 매일매일 아름답고 선하고 기쁘고 행복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니 ‘좋다’(토브).
생태계에 대해 토브는 하나님의 관심을 의미한다. 이 관심은 삶의 영역에서 언약과 약속으로 때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역할로 투영되지만, 전승된 신앙의 역사 안에서는 ‘질서’로 표현된다. 창조의 질서는 물과 물을 나누고 땅과 바다를 경계 짓는다. 이 질서가 무너지면 세상은 좋음(토브)의 상태에서 멀어지게 된다. 창조는 질서 있게 진행된다. 1~3일은 존재의 의미를 둔 공간을 창조하셨다면, 4~6일에는 존재를 빛나게 하도록 공간을 채우는 신비로 드러난다. 광명체는 하늘의 궁창에 있어야 땅을 비출 수 있다. 하늘에는 새가 있어야 하고 바다에는 바다 생물이 있어야 한다. 빛나는 존재는 자신의 자리가 있다.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해야만 그 존재는 아름답다. 그 질서있는 자리가 하나님의 의지를 밝혀주고 있다.
생태계에 대해 토브는 능동적인 하나님의 선한 의지를 내포한다. 그래서 최초의 창조는 능동적이며 동시에 명령형으로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창조가 능동의 상태라는 것은 창조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세계가 있게 하시고 세계가 드러나도록 명령하셨다. 그래서 세계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됐고,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 세계는 하나님에게서 왔으므로 선하다(토브). 그래서 하나님의 선함은 평화를 지향한다. 토브의 평화는 가득히 채워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토브는 언약의 세계에서 샬롬(평화)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창 26:29).
세계는 하나님의 선한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 선한 의지가 뒤틀리게 되면, 세계는 사라질 것이다. 뒤틀린 세계는 오염된 세계다. 그 세계는 자연의 상태를 아프게 한다. 자연환경은 상처가 나서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인간에게 되돌아오고, 인간도 눈물을 흘린다.
어떻게 그 눈물을 거둘 수 있을까? 창조는 선한 의지를 지지한다. 창조의 세계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곧 세계의 존재를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신앙 없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세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 선한 의지를 만나는 일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관심을 보이신다. 특히 6일째 창조가 일어난 뒤, 하나님은 ‘심히 좋았다’라고 하셨다(창 1:31). 6일째의 세계는 자연과 인간의 평화, 자연과 자연의 평화가 꽃피는 세계다. 이 세계가 무너지면 땅은 아프고, 땅의 모든 동물은 먹거리로 인하여 싸울 것이다(창 1:30). 지금 세계는 자연과의 전쟁 중이다. 이제 평화가 안착되어야 할 때가 됐다. 그것이 하나님 토브의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