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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이주민 선교, 함께하면 배가 됩니다”

2023년 12월 기준 법무부가 발표한 ‘연도별 인구대비 체류 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0만 여 명으로 전체 인구(5132만 여 명)의 약 5%를 차지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상황이기에 향후 외국인 이주민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가오는 선교지, 외국인 이주민들을 향한 한국교회의 관심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우리 침례교에도 약 20년 전부터 외국 이주민 선교를 위해 맨몸으로 뛰어든 백전노장이 있어 찾아가 그의 사역 스토리를 들어봤다.  

 


부르심 앞에서
박경규 목사는 어린시절 주일학교에서부터 대학생 시절에는 한국대학생선교회(당시 총재 김준곤 목사, 현 대표 박성민 목사, CCC)에서 순장으로, 교회에서는 청년회장을 비롯해 성가대, 교사 등 헌신된 주님의 일꾼으로 살아온 모태신앙의 전형이다. 이런 그가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은 30대를 넘기면서부터이다. CCC 순장 시절 선교사로의 콜링을 받았던 박 목사는 계속 사역에 대한 열망을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었다. 제약회사에서 근무한 지 10년, 지점장까지 오른 그였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기에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40대 중반에 한국침신대 신학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신학, 박 목사는 가장으로서의 책임 또한 짊어져야 했다. 당시 두 자녀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조금의 쉴 틈도 허락되지 않았다. 낮에는 노동현장에서 돈을 벌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의 시간, 박 목사는 매일을 기도했다. 


“주님 제가 이렇게 늦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저를 대체 어디에 쓰시려 하십니까?”


박 목사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이 바로 외국인 이주민 선교였다. 국내 목회를 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끊임없이 박 목사에게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주민들을 보여주시며 그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을 품게 하셨다. 화공기사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던 박 목사는 이 자격증을 통해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공장에는 95명의 외국인이 근무하고 있었고 박 목사는 다가온 선교지인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복음에 관심이 없던 외국인 근로자들이었지만 박 목사의 끈기 있는 전도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5~6명이 예수님을 믿고 함께 새벽기도를 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하지만 공장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행동이 눈에 가시였던 듯 하다. 당시 해당 공장은 어떤 심각한 인사 문제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들의 외출을 꺼리고 있었고 급기야 박 목사를 외출 절대 금지 통보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내가 목사인데 새벽기도를 가지 말라고 한다고 그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알겠다고 하고 계속 새벽기도에 다니다가 두 번째 걸려서 짤린 겁니다.”


이때부터 박 목사는 본격적으로 이주민 선교에 나서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신학을 막 시작했을 당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자녀들이 장성해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룬 것 또한 박 목사의 사역에 많은 힘을 보탰다.

 


“내가 그들의 편에 서겠다”
박 목사는 청주CCC회관을 주일마다 쓸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그곳을 근거지로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주중이 문제였다. 누군가 박 목사를 만나고 싶어해도 청주CCC회관은 주일에만 쓰기로 해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박 목사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2005년, 하나님은 다시 그에게 조치원으로 가는 길을 허락하셨고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조치원에는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모여 있었다. 이에 박 목사는 매일 그들에게 전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밥을 먹이며 인근 지역에 위치한 공장에 차로 태워주기도 했다. 교회에서 헌 옷을 수거해 작업복으로 쓸 수 있도록 주고, 아픈 사람은 병원에 데려갔으며, 공장에서 돈을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대신 사장을 찾아가 따지기도 하며 그들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어떤 사장은 “목사가 할 짓이 없어서 이런 일을 하느냐”며 욕을 하기도 했다. 이에 박 목사는 “당신들도 아들, 딸이 있지 않은가? 여러분 자녀들이 외국에 나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돈을 하나도 안 주면 누군가는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내가 그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며 지지 않고 반박하기도 했다. 박 목사는 나중에 보면 그 사장들도 대부분 어느 교회 장로고 안수집사였다며 후에 조금만 깎아달라고 부탁을 하기 위해 찾아 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달라지는 선교 패러다임
세월이 지나고 외국인 근로자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박 목사가 처음 이주민 사역을 시작했을 때와는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해진 것이다. 2015년 무렵부터는 박 목사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다시 발로 뛰어다녔다. 그렇게 그는 외국인 근로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또한 박 목사는 대안학교를 통해 청소년 외국인과 외국인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는 법무부의 국적 프로그램으로 한글과 우리나라의 문화 등 한국 사회의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여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돕거나 한국 사회에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으로 법무부의 수탁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박 목사는 교육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으로 학생들을 양육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법무부 프로그램을 수탁받은 것이기에 종교행위에 대해 엄격한 부분이 있지만 과거 공장에서 그러했듯 박 목사의 복음을 향한 열정, 이주민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아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역사
20년 가까운 시간, 박 목사의 사역은 어느 위치에 와 있을까? 사실 외국인 이주민 선교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애써 양육한 외국인 이주민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그 이후 그를 케어하는 것도 어렵고 어떻게 사는지 연락하는 것이 쉽지도 않기 때문이다. 박 목사의 경우 매주 30~50명 정도가 꾸준히 예배를 드리고 있고 46명에게 침례를 줬다. 그중 몇 명을 집사로 세우기도 했지만 그들도 본국으로 돌아갔다. 5~6명은 지금도 박 목사에게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묻기도 한다.


한번은 박 목사가 선교여행으로 필리핀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 박 목사가 양육했던 외국인 이주민이 살고 있었고 박 목사가 필리핀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필리핀의 경우 스페인 식민지 시절이 있었기에 가톨릭 교세가 강한 곳이다. 해당 외국인 이주민 또한 가문 전체가 가톨릭이었지만 박 목사의 전도로 거듭날 수 있었고 그 양육된 노동자를 통해 가문 전체가 개신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박 목사는 그에게 “목사가 돼 평생 복음을 위해 살라”고 권했지만, 그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목사의 사역이 시발점이 돼 필리핀의 한 가문이 주님께로 돌아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기에 지금도 박 목사의 헌신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꽃을 피우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주민 선교, 놓칠 수 없는 주님의 명령
박 목사는 우리 교단이 이주민 사역에 관심이 많이 부족하다며 안타까워했다. 타 교단에서는 박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기도 하고 어떻게 이주민 사역을 해야 할지 묻기도 하지만 침례교의 경우 그런 예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침례교는 어떻게 보면 이쪽에 눈을 감았다. 다른 교단에서는 우리를 선교사로 공식적으로 인정해 대우해주고 교회에서 도와주고 하지만 우리 교단은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고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호칭은 선교사라고 할지언정 그에 따른 지원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신의 경우 어느 정도 자생력이 있기 때문에 겨우 버틸 수 있었지만, 자신의 뒤를 이어 이 사역을 이어받을 사람들이 나타나기에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환경이라는 점이 박 목사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있다. 한국침신대에 사역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내기도 했지만 사례비를 알아서 채워야 하는 특성상 선뜻 나서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CCC의 경우 선교사 스스로 직접 후원자를 개발해 모금을 해야하는 것이 훈련 규정이기에 이 선교단체 출신인 박 목사에게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려웠다.

 


박 목사는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의 마지막 완성 부분”이라며 “주님이 예정하신 천국 백성을 속히 건져 구원할 수 있도록 교회와 교단이 모든 것을 초월해 후원하고 봉사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주님이 부어주신 사랑으로 가슴을 열어 그들을 품고 도우면 그들 또한 가슴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더 나아가 복음의 일꾼이 돼 자국의 선교사로 역파송할 수 있기에 이주민 선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땅끝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이 땅끝인 것이다.”


박 목사는 자신의 기도제목으로 자신이 그동안 사역하면서 만난 27개국 노동자들 중 1000명을 제자로 양육하고 자국에 역파송하며 세계선교에 불을 지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침례교 공동체 모두가 함께 기도해 주기를 박 목사는 꿈꾸고 있다.

조치원=범영수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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