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연재 글을 접한 분들은 개신교 기준으로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이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스 선교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와 반대로 천주교 기준으로는 “성경직해광익”이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한국의 그리스도인이자 목사라면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역사적 지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존 로스와 천주교의 한글 성경 번역이 신약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구약 성경은 누가 최초로 번역했을까? 그 인물이 바로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다(1871. 12.30~1958. 6. 29 한국명 : 피득). 피터스 목사도 신약 성경을 번역한 존 로스와 마찬가지로 한글 성경 번역에 있어 공적이 큰 인물이다.
알렉산더 피터스의 본명은 ‘이삭 프룸킨’(Aisik Frumkin)이며, 1871년 러시아 제국, 지금의 우크라이나 드니프로(Dnipro)에서 태어났다. 이삭 프룸킨은 정통파 유대교(Orthodox Jew)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의 이름은 ‘루벤 프룸킨’(Reuben Frumkin)이고 어머니는 ‘레베카 카이다놉스키’(Rebecca Kaidanovsky)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히브리어를 배웠고, 히브리어로 된 기도문과 시편을 낭송하며 성장했다.
그가 자라났던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이 당시 러시아 제국을 ‘제정 러시아’라고도 하는데, 이 호칭들 모두 1917년 2월, 10월에 발생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러시아를 뜻한다. 두 차례의 혁명 이후 전제 군주국이었던 러시아 제국은 무너지고,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즉 ‘소련’이 탄생하게 됐다.
원래 1800년대 러시아의 자본주의는 괜찮은 성장세를 보였다. 1860년대부터 1900년까지 공업 생산량은 7배 이상 증가했는데 특히 대규모 공장제 공업과 중공업 분야에서 상당히 두드러진 발전을 보였다. 그 결과 러시아는 광물 채굴, 철강 생산, 운송, 제조 등의 분야에서 결코 서유럽에 뒤지지 않는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다 1870년대부터 자본가 그룹(부르주아)과 노동자 그룹의 갈등이 심화됐다. 노동시간도 줄어들고, 여자와 미성년자를 비롯한 노동자 보호법이 마련되기도 했지만, 자본가 그룹은 여전히 편법을 저지르고 있었고 여러 이유로 작업과 임금 상황도 노동자 그룹에 있어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 노동자들의 불만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황실과 귀족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기에, 러시아를 통치하던 로마노프 왕조에 대한 불신도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다. 이러한 가혹한 노동환경은 훗날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러시아가 공산화되는 가장 근본적인 밑바탕으로 작용하게 됐다.
당시 위와 같은 상황에서 1840년에 러시아에 들어온 공산주의는 러시아 지식인에게 많은 관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1869년 ‘미하일 바쿠닌(무정부주의 혁명가이자 철학자)’이 공산당 선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고 자본주의를 분석한 유용한 경제이론으로 공산주의가 소개되면서 이와 같은 관심은 더욱 증폭됐고, 농촌에서의 인민주의에서 도시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공산주의가 러시아 혁명가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경제와 정치, 사회적으로 혼돈의 시기 유대인들과 같은 특정한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과 핍박이 극심했고, 특히 포그롬(Pogrom)이라는 반유대주의 폭력과 약탈이 자행됐다. 이런 상황에서 23살의 젊은 이삭은 오랜 고민 끝에 1894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러시아 제국’을 떠나기로 결단했다.
그는 러시아 제국을 떠나 제일 먼저 이집트로 갔지만, 상황이 여의찮았고, 이후 인도에 가서 정착하려고 했지만, 인도에서의 삶 역시 녹록지 않았다.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찾고자 했던 그는 싱가포르로 거처를 옮겼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일본 규슈 현 나가사키까지 도착하게 된다. 일본 나가사키를 통해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 나가사키에서 이삭의 삶에 대변혁이 일어나게 된다.
(다음에 계속)
백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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