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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희망, 소망을 청년에게 퍼주는 ‘카페 우물’

“우물은 물이 필요한 이들에게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퍼주는 곳입니다. 카페 우물과 베이커리 우물이 희망을 향해 이곳을 찾은 탈북 청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다시 세상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는 희망이 됐으면 합니다.”

 

선교적 사명의 길은 해외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역 중에 하나이다. 특히 자유를 찾아 이 땅을 찾은 탈북 청년들이 다시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세상을 향한 마음을 품는 사역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만의 특수한 사역 중에 하나이다. 우연히 시작된 탈북자 사역을 감당하며 탈북 청년들과 함께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카페 우물’과 ‘베이커리 우물’이었다. 작은 사업장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 탈북 청년과 남한 청년들이 함께 꿈을 키우며 새로운 자립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언니, 누나, 이모 그리고 엄마와 같은 존재가 바로 김조이 선교사이다.

 


우리홈의 시작
2010년 중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 청소년 2명을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 도왔던 김조이 선교사는 하나원을 나온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원룸에서 홀로 기거하던 김 선교사는 선뜻 이들과 함께 시작된 동거가 바로 우리홈의 시작이었다.


이들이 성장하고 대학에 진학하며 새로운 청소년, 청년들이 입소하면서 우리홈의 규모는 점점 커져갔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기에 우리홈 사역은 해외선교회와 전국여성선교연합회, 여러 교회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그리고 남자들을 위한 우리홈공간까지 확보한 상황에서 남녀탈북 청년들을 대학에 진학을 하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사회 진출도 이뤄졌다. 독립을 한 청년들도 우리홈 인근에 지내면서 우리홈은 이들에게는 본가이자 친정과 같은 곳이 됐다.


김조이 선교사는 “정서적으로 의지할 곳이 필요한 이들이었기에 우리홈은 이들에게는 편안한 안식처였다. 함께 모이고 자연스럽게 말씀을 나누는 일도 생기면서 신앙의 조언을 해주고 때로는 어려운 일들을 함께 해결해주는 곳이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는 상황으로 우리홈의 탈북 청년들을 위기를 겪는다. 우리홈에 있으면서 신앙을 배운 아이들이 교회를 찾아갔지만 교회 공동체에서 일어난 일들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교회의 문턱을 넘은 아이들에게는 한국교회의 청년들이 상황이 자신들에게는 낯선 이방인의 삶이었다. 급기야 주일 교회에 가지 않겠다는 청년들이 생기면서 김조이 선교사는 결국 이들과 함께 우리홈 거실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다. 이것이 우리하나교회의 시작이었다.

 


우리하나교회의 시작과 코로나 팬데믹
우리하나교회는 초대교회 공동체처럼 말씀을 사모하던 청년들을 통해 세워졌다. 우리홈 거실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복음의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초기, 외부활동이 극히 제한되는 상황에서 우리하나교회의 모임은 날로 풍성해졌다.


이 풍성함이 주변 민원으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청년들이 우리홈에 자주 방문하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이 곱지 않은 시선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김조이 선교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배 공간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거세게 몰아치던 시기였기에 공간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했다.


여러 공간들을 수소문하면서 정말 마음에 드는 공간이 나오기도 했지만 조건에 맞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예배 공간을 허가하지 않는 건물주들 때문이었다. 공간을 마련하면서 비즈니스 사역을 함께 진행하고자 했기에 당시 카페 공간과 함께 예배 공간까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를 허락해주는 건물주는 거의 없었다. 딱 한 군데 보증금 3000만 원의 공간이 나왔지만 문제는 자금이었다. 김 선교사는 기도하면서 보증금이 마련되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준비했다. 그리고 2주 만에 그 기도의 응답이 이뤄졌다. 십시일반 모아진 헌금 액수가 4000만 원이 된 것이다. 김 선교사는 “하나님께 우리하나교회와 이들과 함께 하심을 경험했던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배 공간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사회를 경험하는 일도 중요했기에 4000만 원의 후원금으로 공간을 준비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채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카페 우물은 우리홈 가족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뤄진 결정체였다. 모든 것이 이들을 통해 꾸며지고 채워졌다. 돕는 손길이 필요할 때는 어디서 우렁각시처럼 돕는 자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우리홈에 있던 청년 중에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청년은 이 과정을 함께 하면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모! 나는 하나님을 절대 안 믿는데 카페가 되는 걸 보니 하나님을 무시하지 못하겠어요.”


그렇게 2020년 8월 코로나 팬데믹이 창궐하며 고통의 시간에 우리홈 식구들은 카페 우물을 오픈하게 됐다.
카페를 오픈하고 소위 ‘오픈빨’을 기대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시기였기에 카페를 찾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김조이 선교사는 불안했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이 만든 이 기적의 공간이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확신으로 인내했고 그동안 전문적인 커피 교육을 받으며 준비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손님들의 발이 끊이지 않는 지역의 명소로 자리를 잡게 됐다.


이와 함께, 통일부의 창업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베이커리 우물을 오픈했다. 경영자적 마인드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 사업에 선정되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뜻으로 사업 선정을 받고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베이커리 우물은 카페 우물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해 매일 아침 신선한 재료로 청년들이 직접 빵을 굽고 만들어 매장에서 판매하며 카페 우물에도 공급하고 있다.


김조이 선교사는 우리홈과 우리하나교회 카페 우물, 베이커리 우물이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김 선교사는 “탈북 청년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숙제와도 같은 문제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좀 더 열고 바라보는 시선을 좀 더 낮춘다면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서 “우물은 계속 퍼주지 않으면 그 물이 썩듯이 우리홈과 우리하나교회가 계속해서 우물을 통해 청년들에게 복음을 퍼주는 역할을 하며 더 많은 우물로 이들을 품을 수 있는 사역들이 열려지기를 소망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송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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