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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척부터 성장까지 무릎의 기도로 함께 했던 ‘경산교회’

국내선교회 기금을 통해 안정적 재정 집행의 결실 맺어

 

화려함보다는 교회 기본 내세우며 성경중심의 사역 실천해

 

28년 동안 경북 경산지역에서 지역 복음화를 위해 매진해온 경산교회 정창도 목사는 침례교 국내선교회(회장 최춘식 목사) 전신인 기금위원회의 개척기금으로 전략 개척교회 중에 하나였다. 당시 침례교회가 없는 경산 지역에 맨 몸으로 뛰어든 정창도 목사. 신학교 졸업하고 결혼과 동시에 3개월만에 경산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이후 28년을 한결같이 교회와 성도들은 생각하며 목양일념을 전개했던 정창도 목사. 무작정 시작한 교회 개척과 목회의 노하우조차 없는 상황에서 정 목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기금위원회의 전략 개척으로 교회를 창립한 경산교회

신학교 4학년 시절부터 개척을 위해 기도했던 정창도 목사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교회를 개척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열정을 계속 품으며 낮이나 밤이나 시간이 될 때마다 기도의 재단을 쌓아왔다.

그런 와중 여의도교회(당시 한기만 목사)에서 추수감사절 헌금을 교회 개척 헌금으로 작정하고 3천만원의 개척기금을 기금위원회에 내놓고 교회 개척을 물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창도 목사는 이같은 소식을 알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심정으로 교회 개척에 대한 열정을 담아 신청을 하게 됐다. 지방회의 결의를 비롯해, 여러 서류를 준비하면서 정 목사는 하나님 꼭 주님의 원하시는 곳으로 부르시는 곳으로 인도하소서란 기도가 끊이지 않았다.

 

 

기금위원회는 침례교회가 없는 지역에 전략 개척이라는 명분으로 3개 지역을 선정했으며 경산지역에 정창도 목사를 선정하고 개척기금 9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198644일 경산교회는 그렇게 창립하게 됐다. 교회 전세 구하고 교회 성물을 마련하면서 부족하고 살림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주변의 도움으로 시작했다.

맨 땅에 헤딩이라는 말이 바로 정창도 목사의 개척 초기에 시절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말이라 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시행착오였다. 개척의 열정만을 가지고 무작정 전도하고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면서 어떤 체계를 갖추기 보다는 복음의 열정만이 살 길이라는 심정으로 성도를 돌보느라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다.

여의도교회를 모교회로 시작했던 정창도 목사는 여의도교회의 초청으로 말씀도 전했으며 교역자 수련회도 초청을 받아 직간접적으로 모교회의 기도와 후원을 받아왔다. 또한 개척부터 선교에 대한 마음을 품으며 신학교 동기로 당시 피지로 선교를 나갔던 이재경 선교사(현 해외선교회 회장)를 후원하기 시작했으며 국내 몇몇 미자립교회 후원에도 적잖이 신경을 쓰게 됐다.

 

 

경산교회의 성장 성장기금으로 이뤄냈다.

교회 개척 3년 만에 현 계양동 교회 부지를 구입하게 된다. 대지를 구입하면서 기금을 요청받아 1년 만에 건축을 진행하고 1991년 교회를 이전하게 됐다.

교회 이전 이후 2009년 비전센터를 건축하기 위해 세 번째 기금을 신청하고 비전센터를 건축하게 됐다. 경산교회가 성장하는 데는 국내선교회의 기금이 큰 몫을 담당했다. 교회가 창립했을 때도 교회가 건축하고 이전할 때도, 비전센터를 건축할 때도 국내선교회에 적잖은 기금을 후원받았다.

정창도 목사는 기금 후원을 받을 때는 철저한 서류 심사와 담보 확인을 하지만 무엇보다 교회 개척과 성장에 대한 열정을 본다면서 은행권에서 대출받는 것은 물론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지만 족쇄를 차는 기분이다.

하지만 국내선교회 기금은 낮은 상환 이율과 함께 그 금액이 다시 기금으로 조성되고 운영되는 점이라 무엇보다 국내선교회가 적극적으로 교회 개척을 후원하고 성장을 돕는 기관임을 신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런 연유로 정창도 목사는 국내선교회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면 최근에는 국내선교회 이사장으로 선임, 국내선교회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며 침례교회의 부흥과 안정적인 성장을 돕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개척교회 세미나를 보다 우리 현실에 맞게 재조명하고 현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세미나로 만들기 위해 세미나를 전폭적으로 수정, 보완키로 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예배·봉사·교육·교제·전도 중심의 경산교회

교회의 기능 5가지인 예배·봉사·교육·교제·전도. 이를 교회 목회에 적용시키고 접목시키는 것이 바로 목회자가 걸어갈 뜻이라고 여긴 정창도 목사는 여러 목양 프로그램을 적용시키고 다양한 성경 공부 프로그램을 해왔지만 무엇보다 이 5가지의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목회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교회 성장에 매진하게 된다.

정 목사는 무작정 뛰어들었다. 신학교 시절 짧은 목회 실습을 하며 경험했던 부교역자 사역도 담임 목회자가 되면서 모든 것이 생소했다. 무경험이 용감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만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완벽하게 하진 못했지만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을 따라 28년을 한결같이 걸어왔다고 회고했다.

경산교회의 힘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아무 것도 모르고 나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낮아짐의 고백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교회가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기도가 제일 먼저 시작됐다.

기도가 없는 삶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정 목사도 자신의 목회 여정에서 기도를 잠시 쉬었을 때 왔던 시련과 고난을 기억하고 있다. 기도가 멈출 때, 말씀이 먹지 못했고 기도가 쉴 때, 교회 성장도 쉬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개척당시 경산은 침례교회도 없었고 침례교회라고 하면 이단이라고 매도하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었다. 그럼에도 경산교회를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부르시고 사용하시고 인도하셨던 그 세미한 음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음성은 오늘도 지금도 계속 여전히 내 귀전에 맴돌고 무릎으로 그 분에게 다가갈 때마다 위로하시며 힘을 주시고 계신다고 정 목사는 기도의 위대한 힘을 힘주어 말했다.

25만명의 경산지역 인구의 10%를 복음의 군대로 삼고자 비전을 품은 경산교회.

교회 개척이후 28년 동안의 기나긴 목회 여정 속에 한시도 내려놓지 않았던 기도의 제단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 싶다.

나의 가족보다, 우리 성도를 먼저 생각했던 경산교회. 나의 편안하고 안락함보다 어려운 성도들, 목숨을 걸고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먼저 생각하고 기도했던 정창도 목사의 간구가 반드시 경산지역 복음화의 초석이 될 것이라 기대를 모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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