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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주님이 주신 말씀과 기도, 그리고 복음 전하는 일에 매진합니다!”

36년 한결같이 목양일념으로 순천 복음화에 매진한 순천교회 정대기 목사


순천 지역 첫 개척교회로 지역 침례교회 대들보 역할 감당해


전라남도 순천, 침례교회의 성장이 가장 취약한 지역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이 지역에 당시 신학교 4학년 정대기 전도사는 36년전인 19722, 순천시 풍덕동에 순천교회가 세우게 된다.

오직 침례교회가 없는 지역으로 가야 하는 마음과 신학교 시절,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에 응하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했던 순천교회의 개척은 생각 그 이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시련과 연단,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수백 번의 좌절과 고통을 겪으면서 오직 목양일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교회 개척부터 함께 해온 사모와 기도의 용사로 순천교회와 동거동락했던 성도들이 곁에 함께 했기 때문이다.

정대기 목사는 하나님께서 이곳에 가라 부르셨기에 갔으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했기에 그 부르심에 순종한 것 밖에 없다인간적인 이치와 방법을 따진다면 절대 교회를 개척할 수 없었을 것이며 목회자의 길을 걷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마음은 지금도 순천교회와 함께 한결같이 갖고 있는 마음이다고 전했다.

 

 열정으로 시작한 교회 개척 깊이가 없었던 시절

신학교 4학년 국내선교부 전략 개척 기금을 받아 순천에 순천교회를 개척한 정대기 목사는 15평 주택에서 1979228일 첫 예배를 드리게 된다.

당시 신학생 시절이었기에 주중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주말에 순천에 내려와 토요일에는 하루 종일 전도지를 돌리고 교회 주변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데 열정을 다 바쳤다.

하지만 그 열정도 뜻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위기를 겪게 된다. 학업으로 인해 목회에 전념하지 못한 상황과 침례교회에 대한 지역 인식, 또한 교회를 개척한 곳이 전세 주택이었기 때문에 언제라도 주인이 요구하면 교회를 비워줘야 하는 압박감이 갓 개척한 개척 전도사에게는 심각한 고민이었다.

결국 주택에서 나와 옆 공터 땅에 천막을 치고 3년 동안 천막교회 생활을 하게 된다. 전기도 수돗물도 화장실도 제대로 마련된 것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교회 성도들이 정착하기는 여간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 재정적 상황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 결국 국내선교회 개척기금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한 채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빈 손으로 천막교회를 접게 된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선교부 기금도 갚지 못하고 사채 빚도 쌓여 있고 결국 계약 중도금까지 다 날리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지. 교회는 말 그대로 풍전등화에 이르렀고 목회를 포기해야 하나라고 생각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일어났지. 그리고 뭐가 문제인지 기도하게 됐어. 그 때 정말 엎드려 기도하고 구한 것이 오늘의 순천교회의 초석이 될 줄 꿈에도 몰랐지.”

 

연단과 훈련을 통해 도약의 발판으로

정대기 목사부부는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국내선교부에 건축헌금과 침례병원에서 후원한 헌금을 가지고 덕암동에 다시 교회를 건축한다. 대지도 구입하고 건축도 하는 와중에 부채가 더 늘어난 정 목사는 사모가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는 생이별도 경험한다.

없는 성도에 사모조차 없으니 교회도 정 목사 생활도 엉망인 상황에서 정 목사는 이래선 안된다. 기도해야 한다. 같이 엎드려 부르짖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사모를 다시 순천으로 불러 그 날부터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예배당에 무릎 꿇고 기도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

또한 낮이나 밤에나 기도하는 일 외에는 복음 전도하며 예수를 전하는 전도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됐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무려 15년이나 흐르면서 하나 하나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교회 앞에 도로도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지역에 위치해 버스는 물론 택시조차 들어오기 꺼리는 교회에 찾아오는 영혼들이 생겼고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함께 기도의 단을 쌓으면서 교회 점점 부흥의 초석을 놓기 시작했다.

정 목사는 이때처럼 목회가 신나고 재미있고 보람된 일은 없었다. 말씀에 의지해 기도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불신자들을 전도하고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에 참 기쁨을 느꼈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직 교회 부흥을 위해 그리고 순천 지역의 영혼들만 생각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부흥의 반석위에 세워진 연향동 시대

교통이 취약한 덕암동 교회에서 1997, 순천교회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연향동에 대지를 구입하고 교회 이전을 준비하게 된다. 과거의 경험이 발목을 잡는 순간이 하필 이럴 때 작용한다. 정대기 목사는 원래 교회와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교회 형편도 잘 아는지라 교회 부지를 순천 외곽지역으로 알아보고 있었다. 이 일에 오히려 성도들이 반대하며 순천 중심지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바로 순천을 대표하는 교회라고 선포하고 순천하면 순천교회를 떠올리게 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성도들의 뜻에 따라 교회 부지를 구입하게 되지만 더 큰 복병이 다가올 것을 정대기 목사와 교회 성도들은 알지 못했다. 바로 IMF 구제 금융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뭐 다른 방법이 없었지. 전 성도들이 기도할 수밖에. 교회를 위해 가정을 위해 기도가 끊이지 않았지. 주변에선 교회가 빚더미에 앉을거라고 걱정했지만 우리는 귀 기울이지 않았어. 그게 다 사단 마귀 세력이 우리를 흔들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했지. 우리는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36524시간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어. 그게 바로 우리 교회의 진정한 힘이었지.”

숱한 어려움을 기도와 말씀, 그리고 전도를 통해 이겨낸 순천교회는 2004년도에 처음으로 3명의 안수집사와 7명의 권사를 세우는 뜻깊은 행사를 가졌으며 2006년도에는 침례교 호남제주연합회 체육대회를 전교회 성도들이 함께 섬기는 일도 감당하게 된다. 더욱이 지난 2013년에는 제103차 침례교 정기총회를 유치하고 전 성도들이 자원봉사하며 총회 준비부터 폐회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정대기 목사는 총회 대의원들 특히 대부분이 목회자이기 때문에 자칫 성도들이 마음에 상처는 받지 않을까 염려도 됐지만 오히려 정기총회를 개최했다는 자부심과 우리 교회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서 이 일을 계기로 교회 성도들이 더 돈독해지고 하나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창립 36주년을 맞은 순천교회는 최근 1명의 안수집사와 9명의 권사를 일꾼으로 세운 임직식을 가졌다. 영적으로 피폐해지고 어두운 시절에 복음의 군사를 세워나가는 순천교회. 오직 기도와 말씀 충만에 전념한 것이 교회 성장의 지름길이었다는 겸손함 속에서 순천교회의 50100년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정대기 목사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바로 순천교회 성도들과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자신을 따라 묵묵하게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는 자녀들이 전부라고 한다.

하지만 정 목사의 더 큰 자랑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건강함으로 목양일념을 감당한 것이지 않을까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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