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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후배

동물의 세계에서는 서열다툼을 한다. 수컷들이 모인 곳에서는 치열한데, 동물의 본능인가 보다. 이런 현상은 사람도 마찬가지이고, 체면문화 때문인지 서양보다 동양이 더한 것 같고, 목회자의 세계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비슷한 또래의 목회자들끼리 만나서, 서로 인사를 하고 좀 느긋하게 대화를 할라치면 이내 나오는 질문이 몇 학번인지 묻는다. 서로 공감대를 찾아서 대화의 폭을 넓히고 친근감을높이려는 뜻도 있지만, 은근히 서열을 확인해서 앞으로 관계에서 자리 찾기를 하려는 의도도 다분하다.


그때 여러 생각이 오간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뭐라고 하기는, 그냥 있는 대로 말하면 되지? 그건 그런데, 그냥 있는 대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좀 난처해진다.
서열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씩 웃으며 정중히 대답한다. 78학번입니다! 대체로, 상대는 내심 놀라는 눈치다. 내가 동안(童顔)인 편이고, 별로 학번이 빠르지 않은 줄 짐작하고 있는데, 78학번이라니... 하는 기색이다. 맞다. 1978년 학번이다. 그러나 일반대(공대) 학번이다.


또 ‘몇 년도에 졸업했어요?’ 묻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묻는 사람들은 대개 수도침례신학교 출신이다. 88년입니다, 대답한다. 역시 맞다. 1988년 2월에 수도침례신학교를 졸업했다. 교회에서 전임전도사 사역을 하면서 수도침례신학교를 다녔다.


또 ‘신대원 몇 학번이에요?’ 하고 물으면 나는 약간 꼬리를 내린다. 95학번이요! 침례신학대학원 1995년 입학학번으로, 15기다. 그러면 상대방은 서열다툼에서 우위를 차지한 듯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감을 살짝 내비친다.


대체로는 이 정도로 끝나지만, 학번을 따져서 은근히 누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도 미소를 띠며 질문을 던진다.
“몇 년도에 안수 받았어요?” 상대방은 약간 주춤한다. 난 1991년, 33살 때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사안수를 받고 4년 후에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대전에 내려가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와 목회를 했으니, 목사 안수를 받은 지 올해 21년이라, 또래에 비해서 학번은 늦지만, 목사안수로는 늦은 편이 아니다.
우리 늘푸른교회에서 26년 목회를 하고 있는데, 신대원 2학년 때인, 38살에 담임목사가 되어 16년째 담임목회를 하고 있고, 나이는 54세다.


그러니 무엇으로 선배 후배를 가려야 할까? 목회자 세계니까 목사안수 받은 때로? 신학교 학번으로? 신학대학원 학번으로? 박사과정으로? 목회 경력으로? 목회도 인생의 한 모습이니, 대학교 학번이나 세상 나이로? 얽히고설킨 것이 한두 가지여야지... 그때 대개는 자기에게 좀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도 기싸움이랄까? 어쨌든 한번 꿀리고(?) 들어가면 후배로 평생 자존심 상할 수 있으니까! 하하... 지금 이런저런 우스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재미있자고 하는 소리다.


사실 목회자들이 꼭 그러겠는가? 괜스레 그런 재미있는 생각이 스치고, 또래 관계에서 때로 약간 미묘하게 그럴 때가 없지 않다는 것이지!
오바바 미국 대통령보다 나이가 더 많고, 우리나라로 쳐도 안철수 대통령 후보의 형님이 아닌가! 그뿐인가? 영원을 가슴에 담고, 하늘의 법칙에 따라 저 천국의 삶을 살며 속세의 사람들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목회자가 아닌가?


100년 인생살이에서, 같은 길을 가는 동역자로서 서로 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자는 것이지, 선배 후배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먼저 시작하고 조금 나중에 시작했을 뿐이지. 영원한 선배 영원한 후배가 있는 것인가? 어허 둥둥 내 사랑~~ 얼쑤!


입원하신 아버님을 간병하고 수술대 오르실 때 서명하던 때에 쓴, 본인의 졸시 ‘보호자’를 실어본다.

 

학교 다닐 때/ 보호자란에 늘/ 아버지 이름을 쓰고/ 도장을 받아갔는데/ 이제/ 수술대에 오르는/ 늙으신 아버지의 보호자란에/ 내가 서명을 한다//

아버지는 항상 어른이고/ 나의 보호자인 줄만 알았는데/ 이젠/ 먹고 입고 걷는 것마저/ 내가 보호해야만 하는/ 어린애가 되셨다//

어른은 누구이고/ 어린애는 누구일까/ 나는 언제까지 어린애고/ 부모님은 언제까지 어른일까/ 나는 언제까지 어른이고/ 나의 아들은 언제까지 어린애일까//

언제까지 혼자 설 수 없어/ 따스한 손 맞잡아야 하는/ 삐걱거리며 굴러가는/ 인생의 수레바퀴여
김효현 목사 / 늘푸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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