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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偏見)

목회단상

편견(偏見)

언젠가 TV에서 세칭 호스트 빠를 단속했다는 뉴스가 나온 적이 있다. ‘호빠라고도 하는 호스트 빠는 남자 접대부가 여자 손님들에게 시중드는 즉 술도 따르고 때론 몸도 파는 술집이란다. 이 뉴스를 접한 어떤 사람들은 말세구만! 잘했네. 경찰이 한 건 했구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보다는 ? 그럼 여자가 술 따르고 몸 파는 술집은 왜 단속 않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었다. 대한민국에 그 수가 얼마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술집들 중 여자가 시중들고 몸 파는 술집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런 술집은 내버려 두고 호스트 빠만 단속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남자는 여자를 사도 되지만 여자는 남자를 사서는 안 되고, 여자는 몸을 팔아도 되지만 남자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둘 다 똑같은 죄이다. 현대 사회의 남녀 평등적 가치에서 볼 때도 둘 다 똑같은 문제이다. 아마 법률적으로도 둘 다 똑같은 범죄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는 이런 것을 편견이라고 한다. 편견은 사실을 왜곡하여 인식한 결과물이기에 문제의 원인분석에 오류를 낳게 되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잘못된 반응과 해결책을 초래하게 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때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종청소같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처참한 일들의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예루살렘 교회는 후세의 교회들이 감히 따라 하기 어려운 유무상통하는 교회였다. 소규모 공동체에서는 간혹 있었지만 예루살렘교회 같이 거대한 교회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 이었다. 그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하여 담대히 복음 전하고 말씀 안에서 백성들의 칭송을 받을 만큼 모범적인 교회였다. 그런 예루살렘 교회였지만 그들의 복음 증거는 유대인 밖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모든 족속에게, 만민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가졌던 이방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는 말인데 그러면 치우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그 하나는 전통적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추종하는 것 때문이다. 유교적 가치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도 관기라는 공창이 제도화 되어 있었고 영웅호색이라며 남자만이 자유로운 성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 속에 깔려있는 남존여비라는 가치를 은연 중 추종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호스트 빠 단속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일반화의 오류이다. 몇 가지 원인이 겹쳐진 것이지만 우리의 지역감정이 그에 해당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주입식 교육에 의해 비판적 토론 훈련을 받지 못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오류이다.

다른 하나는 정보의 부족이나 잘못된 정보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정보의 조작이다. 과거 독재자들이 대중매체를 장악한 것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대중매체에 의한 의식 조작을 위한 것으로 거기에 의해 조작된 의식은 편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식조작 행위를 선전, 선동, 세뇌라 하며 그 결과물은 편견에 의한 절대적 지지거나 적대적 공격이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군중들 사이에서 제사장 패거리가 한 짓도 바로 그것이다. 현재 가장 극악하게 이런 짓을 하는 집단은 북한의 김 씨 왕조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편견을 조장하는가? 그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기득권을 고수하고 이기심을 포장하기 위함이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은 비단 정치가만이 아니라 학자 예술가 종교인 등 모든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거기에 넘어가 편견에 빠지는 사람은 왜 그런가?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할수록 더 쉽게 빠질 수 있고 언덕을 구르는 수레처럼 멈추어 벗어나기도 어렵다. 일본 관동 대지진 때 한국인을 학살한 것처럼 공격성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며, 노무현 대통령 때 차만 막혀도 노통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처럼 부정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수단 즉 손쉬운 화풀이 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편견이 발생하는 또 하나의 동인은 다름에 대한 불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다른 것을 접하면 불편하다. 불편한 것은 싫은데 그 대상이 나빠야 싫어하고 공격해도 죄책감이 들지 않으므로 다른 것을 나쁜 것으로 취급해버린다. 우리나라 같이 획일성이 강한 특징을 가진 국민은 이 점에 매우 취약하다 할 수 있다.

설교가 단순히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의 삶을 사는 청중들에게 성경과 그들의 삶을 연결시켜주는 작업이라고 할 때 설교자의 세상을 보는 눈이 어떠하냐는 필경 그 설교 방향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설교자도 현실 속에 두 발을 디고 서 있기에 그 사회가 갖는 편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설교자가 편견을 갖게 되면 그 설교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편견에 관해서도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고성우 목사 / 반조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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