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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간은 없다.

아주 오래 전 썰렁한 유머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63빌딩에서 한 가족이 떨어졌는데 모두 다 살았다. 이런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답은 이렇다. ‘아버지는 기러기 아빠, 엄마는 새 엄마, 아들은 비행청소년, 딸은 날라리였다.’ 이게 90년대에 유행하던 썰렁개그다. 그런데 요즘은 냉소적인 유머가 판을 친다

몇 년 전, 병맛이란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병맛이란 병신 같은 맛의 준 말로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다. 당시에 인터넷에는 병맛만화가 뜨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인 이말련 시리즈에 이런 만화가 나온다.

어느 현대인이 필수품인 차가 없어 허전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차를 사러 갔다. 경차를 고르는 그에게 판매원은 안전이 중요하다며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중형차를 선택했더니 대형차가 들이받으면 위험하다고 한다. 대형차를 사더라도 트럭이 와서 충돌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한 이 사람은 결국에는 25톤 덤프트럭을 샀다. 그리고 신나게 달리다가 무궁화호 열차와 충돌한다.

이야기는 안전하고 튼튼한 대중교통 기차를 애용합시다-철도청이란 어이없는 결론으로 막을 내린다. 한 마디로 어이없음 그 자체다. 그런데 이런 만화가 왜 인기가 있을까? 한국외대 노어과 김수환 교수는 이것을 잉여스러운 자신에 대한 냉소라고 해석을 했다. 잉여스럽다는 말은 남아 돌아가는, 이 사회가 꼭 필요로 하지 않는, 없어도 그만인 존재라는 냉소다. 본인 스스로가 찌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병맛 같은 조크를 통해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요즘은 사다리가 사라진 시대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부모의 등골을 빼가면서 대학을 졸업해 봐야 좋은 직장은 유학파, 명문대 출신의 차지가 되고 남는 것은 비정규직뿐인 현실 앞에서 젊은이들이 좌절하지 않기 위해 이런 병맛 만화를 보며 그 허무한 현실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냉소적 시대다. 목회자도 별다를 바 없다. 그래도 예전에는 열심히만 하면 되는 시대였다. 그때에는 개척교회라도 사람들이 모이던 시대였는데 이제는 전혀 아니다.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하고, 있는 사람마저 믿음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목회자들은 겹벌이(two job)를 뛰기도 한다.


그러고도 나아지는 것이 없으니 죽을 맛이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젊은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미래가 불투명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자기 정체성의 회복이 아닌가 싶다. 밤마다 운전대를 잡고 대리운전을 하는 목회자의 머릿속에 수없이 찾아오는 질문,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래도 번듯한 교회지만 거기서 일하는 부사역자의 고민스러운 질문도 역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에 우리는 목회자라면 교인들을 돌보며, 설교와 교육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고, 그 일만 하기에도 벅찼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서 목회자에게도 많은 종류의 일이 주어진다.

어떤 목회자는 가르치는 일만, 어떤 목회자는 돌보는 일만, 어떤 목회자는 방송실만, 어떤 목회자는 사무행정만 담당하게 된 것이다. 분업화 내지는 전문화가 된 셈이다.

그래도 목회자는 목회자다. 우리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일을 맡기신 이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감이다. 그거면 된다. 얼마의 보수를 받고, 얼마나 큰 곳에 있는지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시선이 다르니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그날부터 사람들의 시선쯤은 아랑곳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 그냥 묵묵히 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기에 부담감은 남는다. 그래도 기억하자. 나는 목회자임을!

시열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2011년 당시 그의 나이는 생후 11개월, 가장 사랑스러워야 할 나이지만 그는 선천성 구순구개열에 심장기형, 횡격막 탈장이란 병을 한꺼번에 안고 태어났다. 그런데 그해 삼성의료원에서 시행하는 삼성 밝은 얼굴 찾아주기대상자로 선정되어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미혼모이다. 어린 시절 그녀는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모진 학대와 구타 속에서 자라야 했다. 그 폭력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학교도 그만두고 가출을 했다. 그 질곡의 삶의 살아가는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왔고 그들은 동거에 들어갔다. 둘은 힘들게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는데, 남자가 그만 사기를 당하면서 빚에 쪼들리게 되자 그들의 애정전선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남자친구의 손찌검이 시작되자 순간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 생각되어 그녀는 그날로 집을 뛰쳐나왔다. 그런데 그녀의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임신 8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이것을 몰랐던 그녀는 임신 기간 내내 약을 달고 살았던 것이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시열이다. 시열이가 태어나던 날, 그녀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죄책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간 먹었던 약이며 술이며 내뱉었던 말이며, 모두가 미안한 일 투성이었다. 그런 시열이를 치료하기 위해 연희동에서 버스를 타고 을지로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지하철로 일원역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병원 셔틀버스를 타고 삼성의료원에 도착한다. 힘들지 않느냐는 여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뇨, 전혀요.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무엇이 이 여자로 하여금 기형투성이인 시열이를 포기하지 않게 했을까? ‘사랑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없었다. 그저 사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물을 것이다. ‘당신은 왜 그토록 힘든 길을 가느냐?’.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사랑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모자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 길을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 당신은 결코 찌질이가 아니다. 하나님에게 잉여 인간은 없다. 단지 사랑받는 자가 있을 뿐!

조범준 목사 / 영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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