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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울고 눈을 맞추고 사랑하는 일상의 행복

한 달에 몇 번씩은 뒤척이는 밤이 있습니다. 특별히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가 많이 아픈 것도 아닌데 그렇게 유난을 떠는 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선배들이 말했던 나이가 들어가는 신호인가? 아님 주님이 분주한 낮에는 들을 귀가 없는 나에게 걸어오시는 말씀을 위한 시간인가’ 주저리주저리 하다가 무료한 시간을 깜찍하게 보내는 방법이 터득되어졌습니다. 바로 이전에 읽었던 책들을 읽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한 번씩 이런 시간이 오면 이제는 즐기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기쁨마저도 느끼게 됩니다.


요며칠 전 뒤척이는 밤에 손에 들려졌던 책이「꽃들에게 희망을」입니다. 이 저자인 트리나 폴러스(Trina Paulus)는 작가이자 조각가이며 여성운동단체일도 열심히 하면서 현재는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식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소규모환경센터를 아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맑은 영혼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글이라서인지 다시한번 깊은 샘의 물을 마신 기분입니다. 그래서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애벌레가 알에서 깬 다음에 한 것이라곤 잎을 먹고, 또 먹고, 자라고, 크게 자라는 게 전부였습니다. 다른 애벌레도 인생이 ‘별거 있어’ 하면서  잎을 먹고 자라는 것 말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줄무늬 애벌레가 ‘삶에는 그냥 먹고 자라나는 것 이외에도 무엇인가가 있지 않겠는가’ 그건 줄무늬 애벌레가 한 최초의 생각이었습니다.


애벌레가 한 쉬운 말을 프랑스 작가 앙드레지드(Gide Andre, 1989-1951)는 좀 더 철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가 평생을 반듯하고 픈 자아와 방황하고픈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며 인간성의 자유를 찾아 순례했던 그의 인생이 녹아나는 자전적 넋두리인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그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고 싶다. 왜 내가 살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이 글귀를 붙들고 그가 말하는 고뇌와 나의 정의되지 않는 방황을 동일시하며 가슴 두근거리며, 자유를 찾아 방황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말없는 환호를 보내곤 했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로 시작하는「좁은 문」책을 붙들고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알 듯 말듯한 심리해부학적 독백으로 가득한 싯귀를 읽어내려가다보면,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내용과 왠지 지식인이 되어가는 듯한 착각을 하는 즐거움이 있었지요.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애벌레는 먹고 자라는 삶 이상의 삶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삶이 재미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있던 곳을 떠나 넓은 곳으로 나아가지만 이상합니다. 황홀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애벌레들이 기를 쓰고 올라가려고 하는 커다란 기둥의 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기둥은 애벌레 무덤이었고, 아무도 그 끝을 알지 못하면서 올라갑니다. 저렇게도 서로 올라가려고 야단인 것을 보니 굉장히 좋은 것이 있을거라고  틀림없이 좋은 곳일거라고 믿을 뿐입니다. 그래서 다른 애벌레들을 짓밟고 정상에 다다랐을 때 들려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구나” 그 곳은 단지 다른 애벌레들이 올라오고 싶어 하는 곳일 뿐이였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다른 이들을 짓밟느라고 기를 쓰지 않아도 높이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바로 나는 것(flying)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나는 것보다 기어올라가는 방법을 택하는 이유는 자기 안에 나비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이죠. 아니면 기어오르는 일에 너무 바빠서 이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올해 세계 행복의 날에 맞추어 143개의 나라를 대상으로 했다는 행복도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15가지를 질문하는 방식으로 행복에 어떻게 점수를 매기는데 그 항목이 “잘 쉬었다는 느낌, 웃기, 기쁨, 존중받았다는 느낌, 재미있는 것을 배우기 등”이 기준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143개 나라 가운데 118위 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행복의 기준이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고 느끼면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만 우리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주관적 이유가 자기 안에 있는 나비존재를 인식하지 못해서인지, 믿지 않기 때문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인지는 이 해가 가기 전에 꼭 정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한 줄로 정리되었다면 빨간 펜으로 밑줄 쫙 긋고, 우리 모두 기를 쓰고 기어오르지 말고 사뿐히 나라 오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애벌레의 삶을 포기해야겠죠. 

/ 윤양수 목사 한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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