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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확신과 미래 비전이 함께 합니다-2

샘밭교회(차성회 목사) 캄보디아 비전 트립


동서 길이가 20km, 남북 길이만도 10km에 이르는 거대한 사원으로 그 중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툼라이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앙코르톰과 앙코로와트가 가장 유명하다. 머리가 7개인 나가(뱀신) 두 마리를 서로 껴안은 신들이 다리 양쪽으로 쪼그리고 앉았는데 왼쪽에 54명의 선한 신(善神)이고 오른편의 54명은 악신(惡神)인 아수라 상이 있다.

앙코르와트는 수리야바르만 2세의 장례식을 위해 지어진 하나의 묘지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하여 37년 동안 하루에 동원된 인원만도 10만 명이 넘었고, 코끼리가 4만 마리나 동원됐다. 이 사원을 짓기 위하여 쓰인 사암은 여기서 60km 떨어진 톤레삽을 통하여 운반해 왔다.


우기와 건기라는 두 계절만 존재하는 열대지방으로 건기가 되면 거의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르고 건조하여 먼지가 많이 날린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4개월 가량 비가 내리지 않아서 신작로길인 마을 지붕과 나무들에는 뿌연 먼지가 쌓여 있었다. 우기에는 비가 6개월간 거의 매일 같이 오는데, 농민들은 농사 준비를 해서 8월에 모내기를 시작하고 9월이 되면 온 벌판이 푸르게 변한다. 대호수(大湖水)라는 의미의 톤레샵(Tole Sap) 호수는 지름이 100Km이고 주변 둘레가 160km나 되는 바다 같은 호수이다. 비가 내려서 수위가 올라가면 메콩강과 이어져서 흘러 내려가고, 건기 때에는 메콩강 물이 호수로 흘러 들어온다. 산이 없고 대부분 평지인 지형에서 3모작이 가능한 날씨임에도 수로 등 기반시설이 없어서 메콩강의 풍부한 물을 끌어쓰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베트남의 보급로로 캄보디아가 이용되고 있다는 정보로 미군은 대대적인 폭격을 했다. 엄청나게 많은 캄보디아 민간인이 죽음을 당했다. 1975412일 크메르루즈군이 정부를 탈취하여 캄보디아는 공산국가가 되었고, 당시 약800만 명이었던 인구 중에서 4년간 무려 약200만 명을 학살하는 일이 있었다. 프놈펜에 있는 킬링필드의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몸서리 쳐지는 그 잔인함과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슬픔이 살갗에 데이듯이 느껴졌다

 

197917일 베트남군은 크메르루즈군의 베트남 침공을 이유로 캄보디아를 점령하여 약10년 간 훈센 총리가 이끄는 허수아비 정부를 세워 캄보디아를 통치하였는데, 1989년에 미국과 유엔의 압력에 의해 베트남군은 캄보디아에서 철수를 하였다. 그렇지만 전기 생산 능력이 없는 캄보디아는 베트남과 태국에서 전기를 끌어다가 쓰고 비싼 전기료를 지불하고 있고, 씨엠릿의 앙코르와트 관광권의 많은 부분을 베트남이 가져가고 있다. 1993년 유엔군의 감시 하에 총선을 실시하여 시하눅크의 왕자인 라나리드와 훈센을 총리로 세우게 되는데 한 나라에 두 수상을 세워 긴장이 감돌다가 19977월 캄보디아의 왕자군인과 훈센군인의 치열한 내전으로 인하여 캄보디아는 대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1130일 훈센 총리의 승리로 내전은 종식되었다.


훈센 총리를 수상으로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었고 점차적으로 캄보디아는 안정을 찾았고, 폴 포트가 죽고 폴 포트군은 훈센정부에 투항하여 점차 안정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캄보디아에 대한 첫인상은 참 선한 사람들이다이었다. 잘 웃었다. 폴 포트 정권의 죽음을 피해 태국 국경을 넘어가는 피난민이 인산인해를 이룰 때 태국인인지? 캄보디아인인지를 구별하는 방법 중의 하난가 손을 비틀어서 아프다고 찡그리면 태국 사람이고, 찡그리면서도 웃으면 캄보디아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오랜 전쟁과 내전으로 국가의 기반이 취약하고 불합리한 여러 가지 여건이 존재하는 어수선한 나라이지만 복음에 대한 강한 수용성과 국가가 심하게 기독교를 통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캄보디아는 현재 영적 추수기를 맞이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불교국가이지만, 훈센 총리는 선교사들을 핍박하면 외국의 지원이 단절되기 때문에 선교사들과 NGO의 이름으로 캄보디아를 지원하고 있는 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금춘 선교사는 신학교 시절부터 캄보디아로 별명지어 불렸던 사람이다. 이번 비전트립을 하면서 우리 성도들이 참 선하고 좋은 선교사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지난번 우리교회를 방문했을 때는 테러로 아픈 머리 때문에 힘들어 했던 김인실 선교사님이 이렇게 밝은 분이었느냐고 모두 놀랬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약 37Km 떨어진 따께오 주 쩜뻑면에 위치한 빛의 자녀 성광학교는 육동승, 김진 선교사와 성광교회(유관재 목사)의 헌신으로 20107월 건축을 시작해 201129일 완공됐다. 20115월부터 이금춘, 김인실, 찬영, 유진 선교사가 이 사역을 이어받아 사역하고 있다.


이금춘 선교사는 극심한 가난과 오랜 내전으로 기대려고 만하고 자립과 재생산의 모델교회가 현실적으로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의 땅인 것을 확신하며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을 전략 계층으로 기술학교 교육을 통해 신앙과 기술교육의 장을 마련해 주고 리더를 양육하여 캄보디아에 자립과 재생산 교회를 신속하게 세워 나가는 것이 침례교 캄보디아 지부의 꿈이라고 했다. 2016년 현재 캄보디아 지부에는 11가정(프놈펜 주변 10가정, 시엔립1가정)이 사역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주변의 어느 국가도 기독교 선교사 visa가 허용되지 않으며 기독교란 이름조차 사용할 수 없으나 캄보디아에서는 대부분 기독교단체이며 선교사들로 이루어진 NGO의 도움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선교사의 활동에 제약이 없다. 따라서 캄보디아가 인도차이나의 전략지역이 되어야 하고 지금 시기가 최적기이며 이 땅이 기회의 땅이라고 했다. 불교 국가인 캄보디아에서 사찰 반경 2Km 이내에서는 종전의 허가 받은 교회는 예외하고, 앞으로 허가를 받기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캄보디아 현실을 고려할 때 학교 형태의 교회가 적합하다.


수도인 프놈펜과 앙코르(도시) 와트(사원)이 있는 씨엠립주 등 관광지를 제외한 모든 곳들은 전통적인 시골이다. 절대적으로 교육 시설, 의료 시설이 부족하고 보건 위생에 대한 계몽이 부족한 실정이다. 캄보디아 정부도 이것을 잘 알기에 국제NGOLocal NGO들의 활동을 환영하고 있다.

국제NGO는 법적으로 종교 활동을 할 수 없도록 명문화 되어 있지만 Local NGO는 종교(성경)까지도 과목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금춘 선교사는 캄보디아에 올 때 학교 사역을 하고자 계획했는데 학교 사역을 통해 성경을 가르치고 나아가서는 예배를 드리며 교회를 세울 수 있는 Local NGO “Children of Light(쁜르 너이 꼰)”에 가입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다. Local NGO는 캄보디아인만이 세울 수 있는 것인데, 침례교 선임 김윤근선교사는 캄보디아 시민권을 취득했기에 Local NGO를 세울 수 있었다. “빛의 자녀 성광학교“Children of Light 4가 된다.


캄보디아 여행을 하면서 보게 된 것은 오래전 힌두교 문화가 꽃피웠던 앙코르 와트에 불교가 점령을 했고, 집집마다 있는 신당에서는 관우와 장비를 모신 도교를 믿고 있었다. 거기에 에너미즘(정령사상), 그들만의 독특한 무속 신앙이 잘 혼합되어 있었다. 무엇인가를 붙들고 믿으려고 하는 불안한 캄보디아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문화가 몸에 배어 있는 장년들이 생각을 바꾸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킬링필드의 역사와 가난한 형편으로 나이든 사람이 많이 없고, 젊은 사람들과 학생들이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캄보디아는 장래에 큰 비전이 있다. 그래서 이금춘 선교사는 우선 순위를 어린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구체적인 사역 내용으로는 성경을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대학생들에게 필수적으로 가르친다. 유치원 사역 : 어린이들을 통해 부모와 대화를 시작할수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 크마에, 수학 교육유치원 졸업 후 초등학교 장학금 지급하고 있다 (매일 선생님에게 돈을 지불해야 함) 현재 그린 유치원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방과 후 수업 - 현지 공립학교 선생님을 통해 시도 예정 중고대학생들에게는 영어, 컴퓨터, 한글 교육 이 외에 태권도, 음악, 미술을 가르치고 싶은데, 청년 단기 선교사들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빛의 자녀학교의 자립을 위해 유치원, 기술-농업학교, 모링가 사업 , 그라비올라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현지 마을 주민과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하게 하여 스스로 자립을 하게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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