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면 한 번씩 이슈가 되는 기사들 중 아동학대나 배우자 학대 등과 더불어 혐오범죄가 있다.
최근에 묻지마 살인에서 시작되어 논란이 된 여성 혐오 범죄도 있고, 특정한 인종이나 집단에 대한 차별이 핵심이 된 시위들도 있다. 분노의 뿌리를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는 과정은 한 사람의 상처와 개인사에 관련이 되기도 하고, 아주 깊은 뿌리를 가진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깔려있기도 하다.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에 대한 불신과 깊은 상처가 여성에 대한 분노로 확대되기도 한다. 술에 취해 자녀를 때렸던 아버지의 기억이 남자라면 치를 떨게 하는 혐오감으로 자랄 수도 있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고생이 권위와 재력을 가진 자에 대한 반감과 분노로 뿌리내리기도 한다. 오랜 세월 노예로서 억압받고 학대받으며 살아왔던 역사적 배경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도 경계하고 미워하는 이유가 되었다.
분노라는 감정 하나의 뒤에는 수도 없이 많이 이유들이 있다. 씻어지지 않는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의 성품에 섞여있는 유전자의 영향일 지도 모른다. 우리의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가 숨어있기도 한다. 분노하는 사람들에게는 작던 크던 그 원인이 있다. 그리고 분노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우리 모두의 감정이다. 분노하는 목회자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목회자를 바라보는 성도가 열 명이면 열 개의 다른 기대가, 만 명이면 만개의 바람이 있다. 거기에는 자신들이 세워 놓은 기준과 기대에 못 미치는 목회자와 사모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따라온다. 칭찬의 대상이 될 때도 있지만 비판의 중심에 서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다.
목회자가 꿈과 소명을 가지고 추진하는 일들은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탄력을 받는 사역이 되기도 하고 그들의 무관심과 비난으로 사장되기도 한다. 말을 할 수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별 뜻 없이 던진 한마디가 말도 안 되게 확대 해석되기도 한다. 다른 생각 하느라 골똘했던 표정이 차갑고 무관심하다는 흉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허물없이 편하게 대하면 영적이지 못하고, 조심하고 조신하면 경계심이 많다고 난리다.
상담소를 찾아와서 다른 사람들이 자꾸 자기 흉을 보고 자기를 판단한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상담자를 만나러 기다리는 로비에서의 5분 사이에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봐 두려워 긴장하고 시선을 피한다. 그 5분 사이에 옷이 젖도록 땀을 흘린다. 주위의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자신의 일에 참견을 하고 뒤에서 없는 말을 만들어 낸다고 지긋지긋해한다. 그러면 그들에게 가끔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도 사모인가요? 저랑 고민이 어쩜 그리 똑같나요?” 교회 안에 어떤 성도가 저지른 잘못이나 다른 사역자들이 한 실수에 대해 책임을 추궁당하는 경우도 있다. 참다 참다가 같이 화를 내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면 목회자가 온화하지 못해서 상처받았다고 아우성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기대와 비난의 타겟이 되면서 속으로 끙끙 앓다보면 목사나 사모는 울화병이 나기 마련이다.
이 울화가 자신 안으로 스며들면 목회자와 그 가정은 병들어 간다. 이 울화병이 밖으로 향하기 시작하면 교회에 멍이 들기도 한다. 싸움이 나는 것이다. 옆에서 언뜻 보면 저 교회는 왜 저럴까, 그 목회자는 왜 그랬을까 판단하기 쉬울 수 있어도 속사정을 들어보면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화가 나는 데에도 이유가 있고, 힘들어 하는 데에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성경에서도 수없는 사람들이 분노한다. 가인도 아벨에게 화를 냈다. 이해 못할 이유가 아니다. 내가 고생해서 가져온 선물을 한쪽으로 치워놓은 채 쳐다도 보지 않던 아버지가 내 동생이 가져온 음식 한 그릇에 화색이 돈다고 하면 섭섭하고 화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에서도 야곱을 죽이겠다고 좇아갔다.
재산 때문에 형제 사이가 벌어지는 일은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사울도 다윗을 미워했다. 수천의 사람들이 다 나와 비교하며 칭찬하는데 밉지 않을 수가 없다. 엄마가 언니와 나를 비교만 해도 평생 상처라고 우는 판국이다. 모세도 화가 났다. 수많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불평이 지긋지긋할 만도 하다. 그들의 불신앙이 정말 참을 수 없을 만도 하다. 그들 모두에게는 화 낼만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성경의 시대에나 지금이나 분노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다. 화가 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분노는 에너지이다. 그런데 그 분노의 에너지가 화(禍)를 불러오기도 하고 의(義)를 불러오기도 한다. 분노의 표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어떤 분노의 표출은 비극을 불러온다. 또 다른 분노의 표현은 정의를 세우는 데에 쓰인다. C양은 평생을 방에 갇혀 지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느 날 학교의 한 동급생이 자신에게 던진 한마디, “내가 너처럼 생겼으면 자살하는 게 낫겠다”라는 싸가지 없는 한마디가 세상을 미워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고 무시했던 세상을 증오하며 산다.
그 세상을 등지고 산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까봐 늘 사나운 표정을 하고 못되게 군다. 그녀의 분노는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다른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낸다.
/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