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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왕조국가’가 아니다

정교진 박사의 북한보기-8

일반적으로 우리가 북한에 대해 흔히 듣는 말이 김씨 왕조국가이다. 김일성부터 그의 손자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김씨 삼대부자가 세습을 통해 칠십년 가까이 독재를 하고 있으니 충분히 왕조국가라고도 부를 만하다.

왕조국가란 어떤 형태인가. 쉽게 고려왕조, 조선왕조를 떠올리면 크게 네 가지로 규정할 수 있다.


첫째, 혈통으로 계승되지만 왕으로 등극하면 선대왕과의 동일한 지위를 얻는다.

둘째, 선대왕과 관계없이 자신만의 통치를 펼칠 수 있다.

셋째, 왕의 실정에 대해 신하가 간언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었다.

넷째, 왕권중심이지만 거의 늘 당쟁, 당파싸움이 존재했다.


북한독재정권은 어떠한가. 첫 번째 경우를 비춰볼 때, 김정은이 김일성과 동일한 지위(지도적 권위)를 획득했는가. 거의 모두가 아니다 라고 답할 것이다. 북한정권은 여전히 김일성을 수령으로 떠받들면서 김일성의 영생론을 부르짖으며 그의 망령에 사로잡혀있는 하나의 종교적 정치집단과도 같다. 지난 415일 김일성의 105번째 생일 태양절을 맞아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최룡해의 보고문(축사)이 약 2130초 동안 진행되는 가운데 김일성을 약 30여회 지칭하고 김정일을 약 26회 불렀다. 김정은은 단 두 차례만 언급됐다.


그 내용을 보면, 보고문 첫 부분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장군 김정일 동지의 성스러운 혁명위업을 드팀없이 이어나갈 위대한 수령님의 후손,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들이 거룩하신 수령님들께 드리는 자랑스러운 충성의 보고입니다.”라고 했다. 말미에 가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장군 김정일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불멸의 태양계를 진두에 휘날리며 주체혁명의 새 승리를 향하여 총 매진해 나아갑시다라고 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북한은 여전히 김일성의 사상과 혁명이 지배하는 사회로 김일성의 망령이 지배하는 정치집단임을 알 수 있다.


왕조국가의 두 번째 형태인 현 임금이 자신만의 통치를 펼치는 것과는 달리, 북한정권은 유훈통치가 강력하게 작동되는 정치집단임을 최룡해의 보고문을 통해서 충분히 실감한다. 특히나 북한 최고지도자 직함의 변화에서 이점은 더욱 명백해진다. 김일성의 대표적 직함은 주석’(1972)이었다. 김정일은 그 직함을 영원한 주석’(1998)이라고 해 자신이 물려받지 않았다. 김정일 자신은 총비서’(1997)라는 직함을 가졌다. 김정은 또한 영원한 총비서’(2012)라고 하면서 그 직함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은 당위원장’(2016)이 됐다. 이러한 형태는 왕조국가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 조선의 왕들 중에 선대왕이 불렸던 주상’, ‘전하를 붙이지 못하고 다른 직함(호칭)을 사용했는가.


왕조국가의 세 번째, 네 번째 형태들도 북한정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려왕조시대는 낭사에서, 조선왕조시대는 사간원에서 왕에게 충고나 비판하는 업무를 담당했었다. 또한, 왕의 행실을 낱낱이 기록하는 사초가 있어 왕의 실정을 방지하는 동시에 왕권을 견재하는 장치가 되기도 했다. 조선 제18대 임금, 현종(1659~1674)에 대한 사초에는 왕이 언관과 벌인 극단적인 대립 상황을 기록하지 말 것을 명령했을 때 즉석에서 왕명의 부당함을 밝히고 그 명령을 둘러싼 논란까지 모두 기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초기록은 왕마저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었다. 폭군 연산군마저도 김종직이 작성한 사초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날 때 문제의 부분만 뽑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북한에는 이러한 조선왕조시대의 사간원이 있는가. 사초와 같은 것이 기록되고 있는가. 현재 김정은 정권은 최고위간부가 회의석상에서 졸았다고, 또 자세가 불량하다고 즉결 처형시키는 극악무도한 정권이다. 지구상에 유일무이한 포악한 독재정권이다. 이제 더 이상 북한정권에 왕조국가라는 명칭을 붙여주지 말자.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학계에서는 북한 독재정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현상이 있다. 한번 확인해보라. 논문들 중에 이러한 용어를 찾아보기가 힘들 것이다. 어떤 북한학자는 주장한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바로 아는 일이 중요하다고. 정말로 있는 그대로 본다면, 우리는 북한정권이 지구상에 둘도 없는 악독한 독재정권이라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