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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한 마디 ‘침묵’

여름의 산들바람이 부는 날, 강줄기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덧 메밀밭에 하이얀 꽃이 피어서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누군가 살고 있는 옛집을 고쳐 만든 커피집에서 목마름을 축이고 다시 걷던 길을 되돌아서 푸른 버드나무숲을 이룬 강가를 향해 다음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잃어진 침묵을 생각하며 스바냐 317절의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를 묵상해본다.


메밀밭 샛길을 걸으면서 며칠 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옛 친구의 이야기 속에 인생길을 가는동안 꼭 피해야할 본인의 삶을 전해줬다. 그것은 누구와도 특히 사모로 교인들과 싸워서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해 줬다. 그런데 그 친구의 남편 되는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기를 절대 침묵자라는 점이다.


요즈음 많은 뉴스의 홍수 속에서 말말말로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문화 예술의 생활화를 통해 삶과 문화가 일상에서 함께 이뤄가는 반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혼미시키는 사탄의 키워드도 진실인양 둔갑시켜 각종 뉴스 속에 가슴이 섬뜩하다.


세상이 온통 폭염 속에 논바닥이 갈라지고 농작물이 타들어갈 때 아버지 하나님 은혜의 단비를 주옵소서라고 교회의 성도들은 기도했다. 뜨거운 볕에 빨갛게 시들고 타들어가는 논밭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한 줄기 소나기라도 쏟아졌으면 하는 농부들의 마음을 외면하시지 않고 7월의 폭포수같은 단비는 땅의 목마름을 적셔줬고 초록의 자연으로 활기찬 에너지로 바꿔줬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언제나 함께 해주시는 은총으로 거친 바다에 한조각의 뗏목이라도 될 수 있는 희망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이 나라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의 기도탑일 것이다.


전세계 2천만의 마음을 위로한 베스트셀러 원작 오두막은 절망과 아픔을 치유하는 내용으로 영화화하 됐다. 라이프 오브 파이제작진의 눈부신 영상미와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는 고통 없는 삶은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며 오두막에서 만난 기적의 존재 파파는 주인공 맥의 부인이 평소에 부르던 하나님 아버지의 애칭이었다. 가족 여행 중 사랑하는 막내딸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긴 채 살아가는 남자 맥에게 어느 날 의문의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정체불명의 파파로부터 온 편지는 딸을 잃은 바로 그 오두막으로 그를 초대하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맥은 오두막으로 향한다.


오두막에 도착한 맥은 신비로운 세 사람과 만난 후, 오두막이 낙원으로 바뀌게 되고 파파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의 삼위일체 존재감의 현실 속에서 천국에 있는 딸 미시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유괴해서 살해당한 마음의 상처를 원수까지 용서해주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는 명장면들이 성경에서의 성부, 성자, 성령의 자연스런 역할 분담을 영화 속에 풀어내고 있다.


눈부신 기적이 시작되는 곳은 바로 오늘날에도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다. 오두막이라도 그곳이 천국과 같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려한 궁전이라도 그곳이 지옥처럼 슬픈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정치의 현실에서 봤다. 미국에 있을 때는 백악관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미국에 거주할 때 40분 거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있을 때마다 차를 몰고 백악관 앞에서 여러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자주 백악관 주변에서 그리고 포토맥 강가를 거닐곤 했다. 그리고 백악관을 두 번이나 관람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서울에 거주할 때 인터넷으로 신청해 처음 관광한 곳이 바로 청와대였다. 얼마나 가보고 싶은 1번지였던가. 그 곳에서 그때의 대통령은 뵐 수는 없었지만 나라를 위하여 전념하는 기념품 컵을 받고 기뻤다. 이제는 그렇게 멋져 보였던 청와대가 마음의 상처로 많은 슬픔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할스 스윈돌 목사는 우리가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 7가지에서 우리는 모든 사실을 다 알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 동기를 다 이해할 수 없다 완전히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상황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우리는 편견이 있으며 시야가 흐려질 수 있다 우리 자신은 불완전하며 일관성이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신념을 지키는 것은 큰 대가를 요구하지만 신념을 잃었을 때 넘게 될 선은 돌이킬 수 없다. 승리는 하더라도 상처뿐인 승리인 것이다.


우리 생활에서 우리를 돌아볼 때 우리는 너무 침묵을 하지 않고 말을 먼저 할 때가 많다. 잘못된 판단으로 편견으로 한 사람의 인생길에서 많은 상처를 주고도 본인은 잊을 수가 많다.

침묵(沈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행위로 법률 표시 행위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침묵이 표시행위가 되려면 특별한 상황이 존재해야 한다. , 당사자의 약정, 거래관행, 신의칙 등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는 침묵은 표시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단법인 사원총회에서 의장이 제안된 안에 반대하는 사원은 손을 들라고 한 경우나 계속적 거래관계의 당사자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체결되는 계약의 청약에 대한 침묵이 동의의 표시로 인정될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한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침묵은 의사표시로 될 수 없다. 침묵은 원칙적으로 긍정 부정 어느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침묵은 원칙적으로 거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나를 세우는 한마디 우리의 삶의 중심에서 내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는 지혜의 한마디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절실하고도 절박한 의문 속에 인생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줄 해답은 바로 성경에서 약속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침묵의 언어를 사용하신 분이다.


남현자 사모 / 전목산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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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2024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3500침례교회와 목회 동역자. 성도들 위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기쁨과 회복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죄인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이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직접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며 이제는 구원의 완성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몸소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주신 사실을 믿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가르치셨으며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고난 받는 자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 회복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 믿음의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 공동체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 소식이 복음의 사